재강화동창회
장마 수해 없으시죠 감사 합니다
본문
장마 수해로 부터
회장 이상덕 선배님을 위시해
동문 여러분 그리고 강화 주민
모두 무고 하시길
간곡히 기대 합니다
강화 거주 당시 강화.강화.관청리 250번지의 집은
강화중학교 인근의 북산 자락 중턱으로
어른 아람 들이로 다섯 아람 들이 (팔 둘레)의 해나무 거목이
두 그루 있는 고지대에 수목이 우거진 쾌적한 좋은 주거 환경이었다
지대가 높아 수해는 별로 겪지 않았으나 수목이 우거져 태풍 피해는 종종 있었다
소동문 (小 東門)안은 당시 상습 침수지역으로 기억된다
철종 임금의 금위대장 (지금의 경호실장)을 역임한 금도사 인 외증조부 부터 조상 대대로 강화 집안이다
경찰서 뒤에 위치한 성공회 신부을 역임한 아버지와 함께 9 여년간 지냈고
출생은 충북 청주이고 강화국민학교 중학교만 강화에서 지냈다
생물학적 출생지 보다 더 정이 가득한 강화이며 형이 강화중학교 국어 교사이었고 (상인중 교사 역임) 조부가 사시고 계셨기에 더더욱 그렇다 인천고 성균관대학교 그리고 취업등으로 단 2차례 방문한 후 해외 거주로 이어져 지금 껏 방문이 없었다
많은 변화와 눈부신 지역 발전이 있었다는 소식은 들었다
당시 성공회 인근 소재 심도직물, 이화직물, 버드나무가 척척 느러진 아름다운 입구의 조양직물이 지역 경제의 중추적 기업이었다 성공회 초입이며 우체국 경계 담과 접한 종각도 기억이 난다 심도직물 앞 도로로 북진하면 우측이 강화국민학교 좌측이 당시 신축된 천주교 성당 가파른 언덕을 숨을 고르며 오르면 좌측에 등기소 그리고 바로 위 정면이 강화고등학교다 옛 사또가 나올 듯한 동헌인 기와 지붕의 전통 한옥 건물이다
동으로는 옥림리를 거쳐 대산리까지 펼쳐진 평야 그리고 북과 최단 인접지인 월곶리도 기억이 새롭다 당시는 휴전 후 4~5년 경과한 시점이라 다소 삼엄했음을 어린 소년기에도 직감할 수 있었다 주둔 해병대의 믿음직 함 그리고 경찰의 활동도 대단했다 당시는 좀 생면부지로 수상쩍다 싶으면 기관에 신고하는 게 다반사였다
방학기간의 귀향 방문은 즐거운 일이었다 바로 이맘 때인 여름방학 귀향은 고향의 동창들 그리고 외지 진학 동창등 모두가 모이는 게 그리 즐겁고 기다려지는 행사라 하고플 정도였다 "ㄷ"자 형으로 방 8개에 실내 목욕탕, 화장실이 있는 넓은 우리 집으로 모두 모여 희희덕 거린다 일 주일을 넘기는 희희덕 거리며 매일 모이는 우리의 모임은 결국 엄한 어머니의 제재로 중단의 종말을 맞는다 어머니도 간식 마련등 분주한 일과를 보내는 번거로움이 있으나 학업 보충 없이 소일만 하니 이를 중단 시킨다 먹거리가 변변치 않던 당시 깊은 우물 차디찬 물에 드레박 줄에 묶어 매달은 토마토, 참외 수박 (집 앞 밭에서 재배한 것을 어머니가 금방 따다 우물에 넣는다) 그리고 역시 금방 캔 감자 역시 금방 딴 옥수수의 맛은 정말 일품이다 지금도 생생한 기억한다 허나 어디서도 그 맛을 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 넓고 시원한 집을 마다하며 모교인 강화중학교 도서관으로 향한다 참고 서적이 있어 편리하고 동기 선배들과 어우러짐에 재미가 들어서 이다 휴식 시간에는 농구, 연식정구 하는 재미 또한 있기 때문이다 구장이 모두 맨 땅 흙바닥인 열악한 환경이라 슬라딩 태클은 감히 상상조차 못한다 그래도 재미가 있었다 당시 송도고 출신 선배가 있어 그가 농구를 지도 했다
겨울 방학은 산자락 중턱에 위치한 집 주위의 눈 경치가 달력 사진을 보는 듯이 멋졌다 이 기간 동안의 간식 이야기 또한 빼놀수가 없다 할아버지가 준비 공급해 준 간식 거리이다 잘 익은 연시, 밤 그리고 고구마다 서류상 본적지인 국화리 459번지 선산 소재지에 할아버지가 거주했다 관청리 250번지에서 서문안 동네를 거쳐 도보로 족히 1시간 여 소요 되는 거리다 손자 방학 임박하면 할아버지집 관리인이 먹거리를 받아 챙겨 우리 집으로 온다 이를 어머니가 깨끗히 손질해 보관 했다 내 놓는다 날 보러 놀러 오는 게 아니라 간식 때문에 방문하는 선배 동기들이 간혹 있었다 그래도 집안 분위기가 온화해도 엄한 구석이 있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2회 이상 찾아 오질 못하겠다는 그들의 설명이다
신부 직 (神父 職) 을 갖은 아버지는 지역 활동으로 경목 (警牧-경찰서에 정기적으로 가 경찰 직원 그리고 경우에 따라 재소자 교화 기도을 하는 봉사 활동) 활동 그리고 밭농사를 직접 경작했다 잠시 사족 (蛇足)을 달고자 한다 신부직은 천주교,성공회 두 종교에 있다 차이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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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덕님의 댓글
녜 잘 읽었습니다. 이번 비에 피해는 없엇고,-- 내용중의 해나무는 강화 중학교 사생대회때 그리는 단골 모델 이었고 살고 있던 성공회 옆 부터 심도 직물자리는 소도읍 가꾸기로 주차장및 몇개 건물등이 들어설 예정으로 착공식 을 한 상태 입니다. 오실때 쯤은 많은 모양 이 변할것 같군요.
劉載峻님의 댓글
수해없이 안녕 하시다는 희소식 반갑고, 선배님 답글 게재 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지역 변화가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