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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川歷史] 소설가 이원규(65회)의 인천지명考-33/옥련동(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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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4. 3.21)
소설가 이원규의 인천 지명考-33
옥골·연꽃연못 합친 옥련동
송도역·유원지 생겨 유명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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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연수구 옥련동(玉蓮洞)에는 18세기 말 인천부 원우이면에 속해 옹암리와 묵암리 두 개 마을이 있었고, 19세기 후반에는 옹암리·묵암리·한진리·야동·옥동·대아도리·소아도리 등이 있었다고 지지(地誌)들에 실려 있다.
개항 이후인 1903년 원우이면이 서면으로 개칭되고 옹암리·묵암리·야동·한진리가 거기 속하게 됐다.
이 촌락들은 1906년 서면5리로 통합됐다.
1914년 인천과 부평 일부를 떼어내 부천군을 신설하면서 부천군 문학면에 들어가고, 그해 11월 옥련리라는 지명을 갖게 됐다.
1936년 다시 인천부에 편입됐고, 1937년 11월 인천부 정회규정에 따라 송도정(松島町)으로 바뀌었다.
1946년 1월 옥련동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1961년 정부가 관보로 발표한 <전국표준지명>에는 대암·한진·독배·옥골·청량산·아암리·송도 등이 실려 있다.
필자 선친이 1980년대에 고장 원로들의 구술을 채록해 쓰신 <인천지명고>에는 독바위말·옥골·조갯골·한진나루·야동·대암·소암 등의 지명이 실려 있다.
옥련동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필자의 인천고 동기 은수봉 전 인천남부교육지원청 관리국장 말에 의하면 독암마을 혹은 독배는 송도고교 앞쪽 옥련초교의 북쪽이다.
옥골은 이곳의 대표적 촌락으로 수인선 새 송도역에서 학익동 쪽으로 200m쯤 간 곳, 옛날 일본의 유류저장고가 있어서 하디치라고 부른 곳, 지금의 사격장 언저리이다.
조갯골은 옥련동 앞 갯벌(지금의 송도국제도시)에서 대합·상합·바지락을 무진장으로 잡아온 마을이고, 송도고 넘어 옥련여고 옆쯤이다.
한진나루는 백제시대 중국으로 가던 포구 능허대 언저리에 남은 나루였고, 조선시대 대아도리로 불렀던 대암은 송도유원지 정문과 상륙기념관 사이에 있던 마을, 소아도리로 불렀던 소암은 라마다 송도호텔 자리이다.
야동은 대장간이 있던 곳이라 그런 지명이 붙었다 하는데, 어딘지는 알 수 없다.
옥골은 옥돌이 많이 생산돼 붙인 지명이라는 설과 손이 오그라들 듯이 오그라진 지형이어서 붙은 지명이라는 설을 갖고 있다.
옥골에는 전주이씨와 덕수이씨가 대대로 살아왔다.
두 가문 어른들께 여쭈어 보았으나 옥이 생산됐다고 들은 적이 없다고 하신다.
지금의 송도초교 앞까지 바닷물이 넘실넘실 들어오는 해변이었으니 옥이 생산될 리 없었다는 것이다.
옥련의 지명 근원에 대해 <인천지명고>는 옥골과 연꽃이 있는 연못 연지(蓮池)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지명이라 기술돼 있는데, 연지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은수봉 국장은 독배 쪽에 작은 연못이 있었다는 말은 들었으나, 옥련동 지명에 끌어다 쓸 정도는 아니었던 듯하다고 말한다.
▲ 송도유원지 조성 초기 설치된 어린이 놀이시설.
옥련동 일대는 1930년대 후반 일제가 미곡 수탈을 목적으로 수인선을 개설하고 송도유원지를 만들면서 유명해졌다. 옥련리라는 이름 대신 송도정(松島町)이라는 왜식지명을 붙인 것도 그 즈음이었다.
일본식 발음은 마츠시마초다.
인천의 원로 김양수 선생 말씀에 의하면 일본은 당시 경치 좋은 곳, 주요 관광지를 마츠시마라 했으며, 송도는 일본 명승지를 대유(代喩)하는 지명이다.
그리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 연합함대 기함으로 참전했던 마츠시마함(松島艦)과도 연관이 깊다.
1905년 인천시가 송도국제신도시 지명을 붙일 때 향토사가들이 제발 송도만은 피해 달라고 요구했는데도 인천시는 그대로 밀어붙였다.
'송도국제도시'는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지명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에 송도동 편에서 자세히 살피기로 한다.
필자 기억 속의 옥련동은 중학생이던 1960년대 초반 수인선 기차를 타고 송도역에서 내려 황토길을 걸어 조갯고개를 스쳐 내려가 유원지로 갔던 곳이다.
지금 상륙작전기념관 자리에는 선암장호텔이 있었고, 인명대사라는 분이 계신 인명사라는 절이 지금의 흥륜사 자리에 있었다.
▲ 송도유원지 해수욕장 풍경. 수영복을 입은 여성 그림이 그려진 유람 기념 스탬프가 흥미롭다. /사진제공=인천시역사자료관
해수욕을 위해 서울에서 피서객들이 몰려오는 여름 한철을 빼고는 한가하고 고즈넉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송도유원지에 가다 보면 가득 잡아온 조개를 무더기로 길과 마당에 쌓아놓은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집들은 초가집이었으며 산과 들, 해변의 경치도 정겨웠다.
모두 추억 속의 옛날 일이다.
2014년 03월 21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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