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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川歷史] 조우성(65회) 사진으로 보는 인천이야기-16/경인고속도로 개통 '고속성장' 시대(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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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11.15)
사진으로 보는 인천이야기-17
경인고속도로 개통 '고속성장' 시대 맞이
인천 - 서울 1시간 → 19분 … 동시간대 생활권 구현
20년만에'움직이는 주차장'전락·통행료 논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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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도로는 구획정리사업을 단행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폭이 좁고, 무질서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도시계획이 단행된 옛 개항장을 벗어나면 도로는 자연적 환경에 순응한 게 대부분이었다.
역외로 나가는 길은 그에 비하면 곧고 넓은 편이었다.
특히 경인 간에는 제1국도(세칭 산업도로)를 비롯해 제2국도(세칭 국방도로)를 뚫었고, 수원과 김포 등을 잇는 도로가 개설되기도 했지만, 산업화 성장 속도에 뒤처져 있었다.
그 같은 열악한 교통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자 계획한 게 경인고속도로이다.
인천 남구 용현동에서 서울 양천구 신월동까지 연결한 이 도로는 1967년 착공해 1968년 개통했는데, 우리나라 최초로 건설된 고속도로로서 총연장 23.89㎞이다.
처음에는 4차선이었으나 6차선 10.39㎞, 8차선 13.50㎞로 확장을 계속했다.
가좌, 서인천, 부평, 부천, 신월 등 6곳에 인터체인지가 설치돼 있으며, 29곳의 교량이 있다.
최고 제한속도는 고속버스와 승용차가 100㎞/h, 일반 버스와 화물차 80㎞/h로 인천항을 통해 급증하는 수출입 화물 수송에 대비해 건설한 것이다.
비록 길이는 짧지만 우리나라에 고속도로 시대와 고도성장 시대를 맞이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고속도로 개통의 효과는 눈부셨다.
종전에는 인천-서울 간 1시간 걸렸던 것을 불과 19분대로 단축해 경인 지역을 동시간대 생활권·공업권으로 만들었다.
1974년 5월 인천항 제2선거가 완공된 후에는 그 기능을 더욱 강화해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용 차량 대부분이 화물차였다.
그러나 건설 효과는 채 20년도 가지 않았다.
1990년대부터 승용차가 크게 늘면서 만성적인 적체 현상에 시달렸고, '움직이는 주차장'이란 비난을 듣게 됐다.
최근에는 통행료 폐지운동을 펼치고 있다.
경인고속도로 정체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게 1994년 7월에 개통한 제2경인고속도로이다.
중구 인천 인터체인지에서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삼막 인터체인지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로 총길이는 26.6㎞이다.
문학, 남동, 서창 분기점, 신천, 안현, 광명, 일직, 석수, 삼막 인터체인지를 이으면서 시내 남동, 서창동, 도림동과 경기도 안양시, 광명시, 시흥시 등을 통과한다.
이 고속도로는 영동고속도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서부간선도로, 경수산업도로, 인천대교 등과 연결된다.
기존 경인고속도로가 인천시와 서울 강북지역을 잇는 반면 제2경인고속도로는 인천시와 서울 강남지역 물동량 수송을 목표로 건설된 것이다.
이로써 인천광역시는 세계적인 하늘길로 부상한 인천국제공항과 바닷길의 모항인 인천항, 사통오달의 고속도로로 대표되는 땅길을 겸비해 사람과 물류가 눈부시게 교류되는 명실상부한 아시아 허브도시로서 부상 중이다.
1 고속도로 기공식 아치
우리나라 최초 고속도로인 경인고속도로의 기공식은 1967년 5월27일 11시 인천공설운동장에서 거행됐다.
그를 기념하는 건설부의 아치가 길거리에 세워져 있다.
2 경인고속도로 공사 현장
1967년 기공식 직후 고속도로 공사 현장이다.
트랙터 두어 대가 1차 땅고르기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4차선 대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부평 쪽에서 서울을 바라본 풍광이다.
3 공사를 끝낸 경인고속도로
1967년에 착공해 1968년 개통했다.
총연장은 23.89㎞로 초기에는 4차선이었으나 8차선으로 확장했다.
수출입 화물의 수송에 대비해 건설했는데, 현재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4 경인고속도로 개통식
1967년 7월21일, 정일권 국무총리(가운데 선글라스 낀 이)가 참석한 가운데 최종 구간 개통식을 거행했다.
'뻗어가는 고속도로, 우리 국력 증강한다'는 구호가 당시 경제사회적 소망을 잘 드러내고 있다.
5 고속버스 등장
기차와 완행버스로만 오가던 경인간에 고속버스가 등장했다.
삼화고속버스는 1970년 2월23일 동인천역 앞 버스 터미널에서 영업을 개시했다.
6 삼화고속버스 표
서울-인천 사이 고속도로를 시속 100㎞로 질주하던 삼화고속버스의 승차권이다.
요금은 부가가치세를 포함해 1인당 240원이었다.
/조우성(주필)·사진제공=인천시역사자료관, 국정홍보처, 일제강점기 사진엽서, 필자.
2013년 11월 1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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