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랑
[仁川歷史] 소설가 이원규(65회)의 인천지명考-34/송도동(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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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4. 3.28)
소설가 이원규의 인천 지명考-34
청일·러일전쟁 참전 군함 송도
버렸던 日 이름 붙인 국제도시
옛지명 무관 … 식민통치 이념 담겨
지금이라도 부끄러운 간판 고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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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 자랑하는 송도국제도시는 법정동으로는 연수구 송도동이다.
20년 전만 해도 썰물 뒤에 소달구지를 타고 까마득히 멀리 갯벌을 가로질러 조개잡이를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던 곳이다.
옥련동·동춘동 등을 아우르는 송도지역 앞바다를 매립해 건설한 신도시이므로 송도라는 명칭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송도'를 넣은 것은 피동적인 한국 근대사를 이해하지 못한 소치이다.
송도는 구한말 우리나라를 침탈하는 데 앞장섰던 일본의 군함 이름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명명한 전국의 많은 신설지명 중 가장 부끄럽다고 할 수 있다.
인천인들이 모두 개탄해야 할 일이다.
송도는 인천의 옛 지명과는 무관한, 일본인들의 식민통치 이념을 담은 지명이다.
지난 번 연재에서 살핀 바처럼 지금의 송도지역은 조선시대 후기 인천도호부 원우이면에 속했다.
19세기 후반까지 옹암리, 묵암리, 한진리, 야동, 옥동, 대아도리, 소아도리 등이 있었음을 조선후기에 나온 지지(地誌)들을 통해 알 수 있다.
개항 이후인 1903년 원우이면이 서면으로 개칭되고, 1914년 인천과 부평 일부를 떼어내 부천군을 신설하면서 부천군 문학면에 들어가게 되고, 그해 11월 옥련리라는 지명을 갖게 됐다.
1936년 다시 인천부에 편입됐고, 1937년 11월 인천부 정회규정에 따라 송도정(松島町)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1936년까지 송도라는 지명은 인천에 없었던 것이다.
일제가 인천부의 동네명을 자기네 식 정명(町名)으로 바꾸기 시작한 것은 강제합병 전이었다.
1890년대 후반 개항장의 일본지계 내 5개 동네를 바꾼 것을 시작으로 1920년대에는 조선인 취락지역으로 넓혀 갔다.
그러다가 1930년 중반에는 전국으로 확대했고, 옥련리도 포함돼 송도정으로 명명한 것이다.
일본인들은 식민지로서의 조선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제국주의적 기념비로서 지명들을 쇠말뚝처럼 박아 버렸다.
그 방식은 소화정(昭和町-부평동) 같은 왕호(王號)의 차용, 화방정(花房町-북성동) 같은 자기네 공신 이름의 차용, 대도정(大島町-십정동) 같은 장군 이름의 차용, 산수정(山手町-송학동) 같은 일본 유명 지명의 차용, 그리고 송도정(松島町-옥련동) 같은 일본 군함 이름의 차용이었다.
군함 이름은 송도정 외에도 운양정(雲揚町-백석동), 부도정(敷島町-선화동), 춘일정(春日町-시천동), 대화정(大和町-숭의동), 삼립정(三笠町-삼산동) 등 14곳에 이른다.
2005년 송도동으로 명명할 때 앞장서 반대했던 조우성 현 인천일보 주필의 글에 의하면, 특히 군함명 차용의 경우 소위 '운요호 사건'을 일으킨 '운양호(雲揚號)'를 위시해 청일·러일전쟁에 참전해 승리한 전함을 망라한다.
일본이 자랑해온 '삼경함(三景艦)'도 포함돼 있다.
'삼경(三景)'이란 미야기 현의 마츠시마(松島), 교토의 하시다테(橋立), 히로시마의 이츠쿠시마(嚴島)다.
일본은 이들 명승지를 딴 순양함 3척을 건조했고, 그 중 마츠시마함은 배수 4217t, 길이 89.9m, 폭 15.6m, 수병 370명 탑승, 32cm 주포를 포함해 20기의 포로 무장했던 막강한 군함이었다.
동학농민운동 이후 인천항을 수시로 드나들며 조선 조정을 협박했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주력함으로 참전하며 우리나라를 강점하는 데 혁혁하게 기여했다.
마츠시마함의 경우 1908년 타이완(臺灣) 근해에서 화약고 폭발로 침몰해 수병 207명이 수장됐다.
일제는 이 군함과 수병들을 기념하며 1936년 옥련리를 송도정이라 바꿨고, 그 무렵 이곳에 조성된 해수욕장도 송도유원지로 명명했다.
1945년 광복될 무렵 송도유원지는 인천을 대표하는 명소였다.
1946년 1월 지명위원들은 그걸 용납할 수 없어 송도를 버리고 옥련동으로 회복했다.
그런데 60년이 지나 그 앞바다를 매립해 만든 신도시에 그 이름을 끌어다 붙인 것이다.
2005년 인천시와 연수구는 송도신도시 주민들에게 지명 호감도를 묻는 여론조사도 하고, 지명위원들이 토론을 한 뒤 대표성을 중시해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조사하고 토론했으니, 일본인들이 비웃으며 손뼉을 칠 모양으로 됐다.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
인천의 자랑인 국제도시 뉴타운에 언제까지 마츠시마라는 부끄러운 간판을 달아 둘 것인가.
2014년 03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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