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랑
[仁川歷史] 남다른 향토애 '인천시인' 한상억(33회)(퍼온글)
본문
퍼온곳 : 경인일보(14. 8.14)
[책 읽는 인천, 문학속 인천을 찾다]
남다른 향토애 '인천시인' 한상억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산/그리운 만이천 봉 말은 없어도/이제야 자유 만민 옷깃 여미며/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수수만 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 지 몇몇 해/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비로봉 그 봉우리 짓밟힌 자리/흰구름 솔바람도 무심히 가나/발 아래 산해 만리 보이지 마라/우리 다 맺힌 원한 풀릴 때 까지/수수만 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 지 몇몇 해/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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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강화 출신 한상억(韓相億·1915~1992)의 시에 동향 작곡가 최영섭(1929~)이 곡을 붙인 '그리운 금강산'. 이 노래는 1961년 8월 31일 KBS 교향악단 연주로 처음 전파를 탄 뒤로 일약 남북분단의 현실을 대표하는 곡이 됐다.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때 다시 주목을 받았고, 당시 반공성격이 짙은 가사 일부가 수정되기도 했다.
1957년부터 KBS에서 '이 주일의 노래'를 만들던 작곡가 최영섭은 우리나라의 강, 산, 바다를 주제로 곡을 만들어달라는 방송국 담당자의 요청에 따라 당시 문총 인천지부장이었던 한상억에게 가사를 부탁했다.
최영섭 작곡가는 "앞서 몇차례 '남산에 올라', '한강의 노래' 등을 (한상억 선생과) 함께 만들었는데, 동요작가 한용희씨가 '왜 금강산 노래는 만들지 않느냐'고 해 아차 싶어 한상억 선생을 찾아갔더니 이미 만들어 놓았다며 서랍에서 원고지를 꺼내 주시더라"라며 "시를 읽는 동시에 멜로디가 떠올라 그날 밤 바로 곡을 썼다"고 회상했다.
한상억의 '그리운 금강산'이 고향 잃은 이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던 배경에는 그의 남다른 향토애가 있었다. 그는 고향 인천을 사랑했고, 더 나아가 조국 산천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노래했다.
한상억 작고 이후 발간된 유고시집에 실린 '그리운 금강산'은 2절뿐이지만, 사실 최영섭이 처음 받은 '그리운 금강산' 원고엔 3절까지 있었다. 당시 방송분량 때문에 2절까지만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나머지 3절로 한상억과 '그리운 금강산', 그리고 인천을 다시 추억한다.
기괴한 만물상과 묘한 총석정/풀마다 바위마다 변함 없는가/구룡폭 안개비와 명경대 물도 장안사 자고향도/예대로 인가/수수만 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 지 몇몇 해/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김민재기자
김민재 kmj@kyeongin.com
2014년 08월 14일 목요일 제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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