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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川歷史] 소설가 이원규(65회)의 인천지명考-48/심곡동(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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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4. 7.18)
소설가 이원규의 인천 지명考-48
깊은 골짜기 마을 '기피울' 한자식 이름 '심곡동'으로
▲ 심곡초등학교 옆에 자리잡은 절골공원
서구 심곡동(深谷洞)은 철마산(鐵馬山)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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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부평부 모월곶면(毛月串面) 소속으로 기피울과 양가말(梁家村)이라는 두 개의 자연취락이 자리잡고 있었다.
모월곶은 북서곶으로서 오늘날 심곡· 연희· 공촌· 경서· 시천· 백석동을 아우르는 지역이었다.
모월곶이라는 지명은 이곳의 지형이 마치 반달처럼 생겼고 작은 맥이 터럭(毛)같이 뻗어내려서'터럭이 많은 반달과 같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물이 많은 고장이라 물곶이〔水串〕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시 심곡리도 돌아가자.
1789년(정조13) 간행한 <호구총수>에 심곡리는 서구의 다른 법정동들과 달리 기록이 없다.
2005년 인천역사자료관이 1899년 관찬 <부평군읍지>를 비롯한 7권의 부평읍지를 번역 발간했는데 거기도 이름이 없다.
당시 호구 수가 적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1911년 일제가 조사간행한 <조선지자자료>에 심곡리가 등장한다.
심곡은 지금도 전해지는 우리말 지명 기피울을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가정동에서 승학현을 넘어와 연희동으로 가는 서곶로 국도 위쪽은 철마산 골짜기로 깊숙이 뻗어갔다.
그래서 기피울이라고 한 것이다.
서곶로 국도에 인접한 마을을 양가말이라 했다.
지금 극동아파트가 있는 자리이다.
양씨(梁氏)가 많이 살아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에는 고려 때부터 남원양씨(南原梁氏)가 많이 살았다고 하나 지금은 조선초기에 이주해 온 김해김씨(金海金氏), 전주이씨(全州李氏), 풍천임씨(豊川任氏) 등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서부소방서와 경찰서가 있는 새로 개설된 8차선 새 서곶로 도로 근방을 모퉁말이라 불렀다.
모퉁말에서 더 깊이 들어간 곳, 저명한 지형지물을 말하면 현재 인천시 인재개발원이 있는 부분을 절골말이라고 불렀다.
옛날에 절이 있어서 그렇게 부른 것으로 보인다.
80세가 넘은 원로들이 그 곳에 절이 있었다는 전설을 모르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오랜 지명인 셈이다.
이 절골말은 임씨(任氏)가 집성촌을 이루며 오랜 세월 살고 있어 임촌말이라고도 부른다.
절골말에서 바라보아 탁옥봉을 너머에 있던 작은 취락을 뒷말이라고 불렀다.
뒷골은 뒤에 숨듯이 자리잡은 마을이라 그렇게 불렀다.
이 곳은 이씨가 오랜 세월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어 앞의 임촌말과 호응시켜 이촌말이라 부르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지명은 히쓰미초(日進町)이었다.
러일전쟁 때 인천 앞바다에서 러시아 함대를 격파한 일본 군함 히쓰미마루(日進丸)에서 딴 것이었다.
철마산 북쪽이 심곡동에 닿아 있다.
철마산의 작은 봉우리인 탁옥봉(琢玉峯)은 마을 앞산이다.
신라시대에 어떤 도인이 정자를 세우고 수도했다는 전설을 안고 있다.
심곡천(深谷川)이 철마산과 탁옥봉 사이 골짜기에서 시작하여 샘내들을 적시고서해로 흘러갔다.
바다를 막아 샘내 벌판을 개척하게 한 방파제를 샘내방죽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심곡천과 함께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공사로 복개되어 있다.
승학현(昇鶴峴)은 가정동에서 심곡동으로 넘어오는 높고 긴 고갯길로 싱아고개라고도 부른다.
여기서 멀지 않은 연희동 용의머리 앞바다가 수백 년 전부터 두루미 도래지였으니 이 고개에서도 두루미가 날아올랐을 것이다.
그래서 붙여진 것이 승학현이고, 싱아고개는 싱아풀이 많이 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의미로 보아 둘 다 타당하나 수십 년을 서곶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거의 모두 싱아고개라고 부른다.
이 고개는 지난날 남쪽의 석곶면과 북쪽의 모월곶면을 가르는 경계였다.
이 고개 남쪽 사람들은 석남초등학교를 나오고 북쪽 사람들은 서곶초등학교를 나온 터라 유대감도 고개를 중심으로 분리된다.
구불구불 여러 개의 굽이를 가졌던 높은 고개였으나 새서곶로가 뚫리면서 통행도 뜸해졌다.
철마산 산록 바위에 말 발자국 형상이 있어 천마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아기장수전설과 함께 구비전승되고 있다.
택재고개라는 고개가 심곡동에서 곧바로 공촌동으로 넘어가는 산길에 있다.
조선 문종(文宗)의 후궁인 숙의문씨(淑義文氏)의 묘가 탁옥봉 산록에 있다.
수령 1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철마산 와지선에 있다.
이원규 webmaster@incheonilbo.com
2014년 07월 18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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