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랑
[仁川歷史] 앨범 속 그 곳, 그 이야기④ 극장(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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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긋 : 인천in(18. 7.30)
기획/칼럼 | 앨범 속 그 곳, 그 이야기
앨범 속 그 곳, 그 이야기
가지 못하게 하니 더 가고 싶었던 그 곳
④ 극장 - 유동현 / 전 굿모닝인천 편집장
낡은 고교 앨범은 추억 저장소이다. 까까머리와 단발머리를 한 그대가 있고 분식집 문턱을 함께 넘나들던 그리운 친구들도 있다. 3년간 발자욱을 남긴 모교의 운동장과 교실의 모습도 아련하다. 빛바랜 사진첩에는 ‘인천’도 있다. 교정에 머무르지 않고 과감히 교문을 나서서 사진사 앞에서 졸업앨범 포즈를 취했던 그대들 덕분에 그때의 인천을 ‘추억’할 수 있다.
예전에는 영화관을 ‘극장’이라고 일컬었다. 극장은 학생들에게 출입이 금지된 장소였다. 당시에는 명확한 ‘영화 등급’도 없었다. 죄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였다. 학교는 극장 출입 자체를 제한했다. 어두운 극장 안을 무조건 어둡게 보았다.
선생님들의 교외지도 단속의 첫 번째 장소는 극장이었다. 극장 안 양쪽 끝 구석에 ‘임검석(臨檢席)’이란 특별한 공간이 있었다. 경찰관, 교사 등 지도단속을 하는 사람들이 앉는 전용석이다. 그들은 그곳에 앉아 주로 몰래 들어 온 학생들을 색출하거나 풍기 문란한 관객들을 감시했다. (비어 있을 때 간혹 술 취한 관객이 그곳에 소변을 보기도 했다. 변소 간 사이에 중요한 장면을 놓칠까봐?)
여름 휴가철이 영화 흥행 시즌이지만 예전에는 명절과 시험 끝난 날이 극장가는 날이었다. 학생들은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 시험이 끝난 날 ‘단체 관람’을 통해 영화를 보곤 했다. 졸업 앨범에는 극장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장면이 적지 않다. 그만큼 학생들은 극장 출입에 간절했다. 졸업 후 가장 먼저 달려 간 곳이 시내 극장이었다.
1962년도 인천기계공고 앨범(애관극장)
예전에는 학생들이 영화 한 편을 보려면 극장에 걸린 프로 제목처럼 ‘비밀통로’를 찾아야 했다. 애관극장은 최고의 영화관이었다. 1895년 신식 공연장 협률사(協律舍)로 시작해 축항사, 애관극장으로 이어진 이곳은 우리나라 극장 문화사의 획을 그을 뿐만 아니라 인천 시민의 애환이 깃든 특별한 공간이다. 미스유니버스 후보 선발, 종두 접종, 취업설명회 등을 비롯해 무용가 최승희 공연과 세계적인 음악가 번스타인 연주회가 열리기도 했다.
1956년 동산고 앨범(애관극장)
1957년도 인천고 앨범(애관극장)
극장 안에 어떻게 그런 공간이 나올 수 있을까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애관은 특설링을 설치해 권투 경기와 레슬링 대회까지 치렀다. 한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스크린을 가진 이 극장 무대에 당대 스타였던 신성일과 엄앵란이 섰던 날 싸리재 일대 교통이 마비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1958년도 무선고(현 재능고) 앨범(동방극장)
동방극장은 1946년 이전에 개관한 것으로 추정된다. 외화 개봉관으로 유명했는데 당시의 일반 극장 보다 규모가 작은 영화관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아주 좁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객석은 보통 극장의 절반 정도였고 검은 커튼 뒤에 있던 변소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솔솔 풍겨 나왔다.
무엇보다 영화관이 작아서 3층 영사실과 1층 스크린의 거리가 가까웠다. 간혹 화면 전체가 나오지 않아 스크린 밖으로 넘쳐 나갈 정도였다. 고육지책으로 스크린 자체를 비스듬히 뉘어 놓기도 했다.
극장 폐관 후 유흥업소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가 몇 년 전 극장 건물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후 주차장이 되었다가 얼마 전 ‘눈꽃마을’이라는 생뚱맞은 컨셉의 청년몰이 생겼다.
1965년도 대건고 앨범(인천극장)
인천극장 앞길은 화수동 시절 대건고 학생들의 통학 길이었다. ‘소돔과 고모라’를 단체 관람하기 위해 대건고 학생들이 줄지어 있다. 인천극장은 대건고 아니었으면 이렇게 사진 찍히기 어려운 극장이었다. 동인천 가까이에 있었지만 재개봉관으로 ‘삼류’ 취급을 받았다. 시설도 별로였지만 무엇보다 불량배가 많기로 소문난 극장이었다. 돈을 뜯기거나 이유 없이 맞기 때문에 학생들의 발걸음이 뜸한 편이었다.
1955년 3월 원래 ‘연극’ 전문극장으로 개관하였는데 이듬해 1956년 4월 24일 화재로 모두 불탔다. 1960년대 시민극장에서 인천극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영업을 해오다 2001년 9월에 문을 닫았다. 현재는 작은 마트가 자리 잡고 있는데 외형도 많이 바뀌었다.
1960년도 박문여고 앨범(시민관).
현재 인성여고 다목적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생각나는 대로 인천 지역에 있었던 극장을 열거해 본다. 신포시장 뒤 외환은행 자리 ‘키네마극장’ 그 뒤 골목에 ‘동방극장’ 현재 경동에 있는 ‘애관극장’ 배다리 헌책방골목 근처 ‘문화극장(후에 피카디리)’ 중앙시장 주변에 있던 ‘미림극장’ 그 옆 양키시장 초입에 ‘오성극장’ 동인천 쪽에 ‘인영극장’과 후에 동인천길병원 앞에 생긴 ‘인형극장’ 공설운동장 옆 ‘도원극장’ 인근 숭의동 ‘장안극장’ 신흥로터리에서 연안부두 나가는 길 좌측에 ‘세계극장’ 그 인근에 ‘자유극장’ 용현시장 쪽에 있던 ‘용현극장’(한일극장) 화평철교 부근 화수시장 맞은편에 ‘인천극장’ 송림동 로터리 옆 ‘현대극장’ 주안4거리 못미처 ‘중앙극장’ 부평역전에 ‘대한극장’과 부평시장 쪽에 ‘부평극장’ 백마장에 "백마극장"이 있었다. ‘서부극장’도 있었다는데 그 존재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유동현 / 전, 굿모닝인천 편집장
18-07-30 04:18ㅣ 유동현 (dhyou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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