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랑
[仁川의 名所] <우리동네 명물-추억속의 구두수선집>
작성자 : 이동열
작성일 : 2006.02.21 15:02
조회수 : 3,022
본문
<우리동네 명물-추억속의 구두수선집>
서민의 추억 아련한 '구두수선집' | ||
묵은 세월 가득, 풍요의 시대에 낯선 풍경 | ||
<우리동네 명물 - 추억속의 구수두선집>
배다리길을 따라 송현시장 송현교회로 꺽어지는 길로 접어들어 몇 걸음 옮기면 얌전한 햇살을 받으며 오랫동안 동네를 지켜왔을 낡은 건물, 그리고 간판을 만난다. 낡은 것이 폐물이 아니라 골동품으로 대접받는 세상에 추억도 상품이라면 이곳에서 ‘아~ 저기에 있었네’를 연신 독백할 수도 있겠다. 2남 1녀를 훌쩍 키워 세상에 내놓았으나 노구의 수고는 아직 끝나지 않았나보다. 부모님의 손을 꼭잡은 아이는 임진강을 건너 고향인 평양을 떠나 이곳 동구 송현2동에 정착했다. 당시 인천은 서민이 살기에는 그만인 동네였다. 부두에 나가면 늘 일거리가 넘쳤고 일할 힘만 있다면 양식 걱정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최명식 어르신(77)은 젊은 시절 인천항 D목재에 근무하며 인천에서의 삶을 가꾸어 왔다. 정규직 일자리를 떠나 지금의 구두수선에 나선지는 37년을 헤아린다. 세월의 묵은내가 짙게 밴 지금의 자리에서만 그렇다. 구두 수선을 따로 배운 것도 아니요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른 구두 수선집을 놀러 다니며 귀동냥, 눈동냥 어깨 너머로 배웠을 뿐이다. “보니까 힘 안들이고 쉽게 돈을 벌더라니까. 그때 이 일이 좋겠다 싶어 재료상 하나를 끼고 시작했지” 최 어르신의 말이다. 그렇게 돈을 벌어 큰 신발가게를 해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근데 아이들이 생기고 그 뒤치닥거리에 장사 밑천은 고스란히 자식들이 먹어치웠다. 하긴 큰 아들이 법대를 졸업해 그쪽 일을 하고 있고 둘째도 잘 나간다는 대학을 나왔고, 딸은 간호대학을 공부시켰으니 잘한 장사일 수도 있겠다. 처음에는 남의 집 처마 밑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았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수선일을 놓지 않았다. 그러다 오래된 건물 한 귀퉁이 서너평을 임대해 ‘상호’조차 없는 구둣방으로 만들었다. 처음엔 일에 치어 살았다. 주변은 번성했고 사람들은 물결을 이루었다. 아침에 나오면 하루종일 일감이 정신없이 밀려들었다. 그날 다 못하면 다음날 새벽에 나와 마저 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교육시켰다. 힘은 들어도 재미가 좋았던 시절 이야기다. 허름한 구멍가게 처럼 오래된 주인과 좁은 가게를 옹기종기 메운 도구들과 재료들만이 그 사실을 알까? 지금은 구도심이라고 사람도 빠져나가고 경기도 나쁘다. 게다가 신발은 어찌나 흔한 물자가 되었는지 값싼 신발을 일회용처럼 신고 고쳐 신는 사람도 드물다. 그저 2~3만원 벌이가 하루의 모든 것이지만 그래도 지금의 처지에게 이만큼 짭짭한 게 또 있으랴! 최 어르신은 “돈 모은 건 없어도 사는 것 불편하지 않고 이런 직업 가지고 돈 벌어가며 소일거리하는 게 얼마나 좋아!”라며 행복해 했다. “나이가 뭔 상관이야, 그래도 해야지. 자식한테 신세 안지고. 혹시라도 애들이 늙은이에게 돈 주면 야단하고 돌려주고야 말지. 내가 능력이 없어야 받지 지금 이렇게 벌고 있는데 그럴 필요가 뭐 있어”라는 말속에 앞으로도 계속 일하겠다는 의지가 역력하다. 그게 편안할 것도 같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 진짜 고생이 뭔지 몰라”라며 세태에 대한 한 말씀도 잊지 않는다. “일제치하, 공산당 다 겪고 보니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 고생해봐야 성공, 행복 이런거 알지. 겪어봐야 사람이 돼”라는 지침이다. 나고 드는 동네사람들을 이곳에서 지켜봤을 그다. 세월과 함께 단골도 바뀌고 고맙게도 햇살 비껴가지 않는 가게에 앉아 변해가는 세상과 사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어쩌면 그는 단순히 구두수선집 주인이 아니라 인천 격동기 역사의 한 증인임이 분명하다. 현재 최 어르신은 숭의동 자택에서 구둣방으로 출퇴근한다. 근무시간, 쉬는 날은 엿장수 맘이지만 근면, 성실이 몸에 밴 탓에 ‘놀아도, 쉬어도 가게에서’가 사훈이나 마찬가지다. 신발과 가방수선을 겸하는 이집에서 제일 비싼 수선으로 남자 구두 뒷굽교환이 5천원, 여자 구두 창갈이 6천원 정도다. 아쉽게도 아무나 다 있는 전화나 컴퓨터, 그리고 인터넷 같은 건 없다. 그래서 물어서 찾아가야 한다. 지영일 편집위원 openme@incheon.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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