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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川歷史] 재조명 필요한 인천지역 3·1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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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경인일보(19. 2.21)
[사설]재조명 필요한 인천지역 3·1운동사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이다.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일어난 3·1운동은 한국의 독립을 대대적으로 선언한 사건으로, 남녀노소는 물론 계층 구별 없이 전국적인 참여로 전개된 비폭력 저항이었다.
인천시도 3·1절 기념행사를 시민들이 100년 전 그날의 현장에서 3·1운동의 정신을 기릴 수 있도록 만세운동의 인천 발상지인 동구 창영초등학교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인천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죽산 조봉암 유족의 헌시 낭독을 포함한 기념식을 가진 뒤, 만세운동 시가행진을 비롯한 시민주도의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이번 3·1절에는 국내 유일의 임시정부였던 한성정부를 선포한 곳이 인천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이었음을 알리는 항일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발표될 예정이고, 선구적 여성이자 독립운동가인 김란사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합창극 '100년후, 꿈꾸었던 세상'도 공연될 예정이어서 다채롭다.
이처럼 인천시민들이 지난 100년의 역사를 재현하고 인천의 새로운 100년의 비전을 만들어 나간다는 인천시의 기획 의도를 평가할만하며 합창극이나 다큐멘터리와 같은 콘텐츠 제작 시도도 돋보인다. 그런데 인천지역에서 전개된 3·1운동사의 기초적 사실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인천지역의 3·1 만세운동은 창영초등학교(당시 인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동맹휴학, 만국공원 시위, 문학동 일대의 시위, 황어장터를 비롯한 부평지역 시위, 강화읍 시위 등이 대표적인 시위로 9천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인천지역의 만세운동이 창영초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으나, 이병헌의 '3·1운동비사'에는 창영초교뿐만 아니라 현 인천고(당시 인천공립상업학교) 학생들의 만세운동도 3월 6일에 전개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창영초교의 만세운동은 당시 창영초교 3학년생인 김명진(1900~1965)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 창영초교의 졸업생이었던 우현 고유섭도 태극기를 나눠주고 동네를 돌며 태극기를 게양해 주는 등의 주도적 활동을 하다가 체포 구금당했다는 구체적 증언도 있다. 창영초교의 만세운동과 인천 사회운동 조직과의 관계는 밝혀야 할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또 옹진군을 비롯한 도서지역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의 실태도 조사되어야 할 것이다.
경인일보
발행일 2019-02-21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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