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랑
[仁川歷史] 조우성(65회) 사진으로 보는 인천이야기-1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3. 7.26)
사진으로 보는 인천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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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은 '비류 2000년, 인천 정명(定名) 600년'을 기리는 뜻 깊은 해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막중한 역할을 해 온 우리 고장의 유구한 역사를 되새기고, 그 선상에 서서 창대한 내일을 준비해 가자는 것이 이 기념사업의 취지이다.
이에 맞춰 본보는 인천의 어제와 오늘을 반추하는 기획물 '사진으로 보는 인천이야기'를 매주 금요일 연재한다.
/ 조우성(주필)
▲ 영종동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
1 선사시대, 우리 고장의 여러 유적들
인천에서는 저 먼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강화군에서는 구석기시대 유물인 '다각면 원구'가 발견됐고, 중구 영종동에서는 신석기 유적인 화덕자리와 빗살무늬토기(사진) 등이 출토됐다.
청동기시대 유적도 도처에 분포돼 있다.
이는 역사시대 이전에도 '원인천인(原仁川人)'이 이 땅에 거주하고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 강화 부근리 고인돌
2 여러 곳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고인돌
강화군에는 청동기시대 유적인 고인돌 120여 기가 세워져 있다.
사적 제137호인 '강화 고인돌(위)'이 대표적인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서구 검단에서도 최근 고인돌 군이 발굴되었다.
남구 주안동, 문학동에도 고인돌이 있었다.
▲ 마니산 참성단
3 민족의 제단인 마니산 참성단
인천은 신화시대서부터 이어져 온 유구한 역사적 자취를 지니고 있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참성단이 그 상징적 예이다.
참성단은 자연석으로 기초를 둥글게 쌓고, 단은 그 위에 네모로 쌓아 전통적 우주관을 보여준다.
매년 전국체전 때 성화를 채화하는 민족의 성지이다.
국가 사적 제136호이다. 1970년대 촬영.
▲ 문학산 원경
4 '비류'가 정착한 '문학산' 원경
'삼국사기'에 의하면 비류는 고구려 시조 주몽의 첫째 아들이다.
주몽이 북부여에서 낳은 아들 유리가 고구려의 제2대 왕으로 되자, 비류는 백성들과 더불어 남쪽으로 이주해 미추홀(彌鄒忽)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것이 인천사의 출발이요, '인천 이주민 제1호'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라 하겠다.
이 사진은 현재까지 가장 오랜 '문학산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
▲ 능허대
5 중국과 물길을 튼 백제 때의 항구
능허대는 중국과의 교류를 위해 백제 사신들이 이용한 출항지로 전해지고 있다.
백제는 고구려의 육로를 대신하는 대중국 교역로가 필요했는데, 능허대가 바로 산동반도의 등주와 내주를 잇는 항로의 출발지였다.
그러나 그 운용 기간은 100여 년에 불과했다.
발선처는 '한나루(大津)'로 지금의 옥련동 축현초등학교 부근으로 추정하고 있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6 신증동국여지승람
1530년에 나온 이 지도에는 인천이 타 지역과 다름없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483년이 지난 오늘, 인천은 대한민국 제3의 도시로 성장했다.
▲ 영종도 신석기 유적 발굴터
7 영종도 유적 발굴 현장
영종도 송산과 운북·운서동 등에서는 화덕자리, 빗살무늬토기 등 신석기 시대 유물이 대량 출토됐다.
사진은 발굴 팀이 조사를 마친 뒤 현장의 모습이다.
사진제공=인천시립박물관, 인천시역사자료관, 인하대박물관
한양대학교박물관, 사진작가 이종화, 필자
2013년 07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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