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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川歷史] 역사와 함께 한 문학비평가 김동석(인상출신) 탄생 100년(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3. 9.27)
이희환 박사의 인천史 산책-8
역사와 함께 한 문학비평가 김동석 탄생 100년
인천의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재조명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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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제대 시절 김동석.
지난 25일은 인천이 배출한 뛰어난 문학비평가 김동석(金東錫)이 탄생한 지 꼭 100년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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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은 1913년에 경기도 부천군 다주면 장의리, 지금의 숭의동에서 태어났다.
상업에 종사했던 부친 김완식(金完植)의 2남 4녀 중 장남으로서 줄곧 경동 싸리재에서 성장했다.
어려서 서당교육을 받은 이후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인천창영초등학교)와 인천상업학교(현 인천고등학교)에서 수학했다.
그러나 인천상업학교 3학년에 재학 중 광주학생의거 1주년 기념식 시위를 주도해 결국 퇴학처분을 당했다.
그러나 그의 문재를 아꼈던 일본인 교장의 주선으로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전학한 이후 조선인들이 들어가기 어렵다는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법과를 선택할 수 있는 우수한 성적임에도 김동석은 본과에 진학하면서 영문학을 선택해 문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37년 '조선시의 편영(片影)'(조선일보)이라는 처녀비평으로 등단하기는 했으나, 암담한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좌절해 영문학 연구와 시와 수필의 습작을 통해 김동석은 일제 말기를 소시민으로 견뎌냈다.
김동석은 1945년 8·15 해방을 맞고 나서야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해방이 되자마자 김동석은 '상아탑' 잡지를 창간하면서 진보적인 문학운동에 나서는데, 이는 그의 독특한 문학관인 '상아탑(象牙塔) 정신'에서 기인한다. "저속한 현실에서 초연한 것이 상아탑이다!"라는 문구로 요약되는 그의 '상아탑 정신'이란 지식인의 엄격한 양심과 비판의식에 기초를 둬 현실의 저속한 이해타산에 결코 타협하지 않고 진보적 지성으로 세상에 직접 들어가는 실천적 문학정신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정치와 문화가 뒤죽박죽이었던 해방 직후 혼란기에 김동석의 '상아탑 정신'은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문학의 진보적 정신을 지키려는 문학비평 활동으로 펼쳐지는 한편, 혼탁한 당대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사회비평과 실천적 운동으로까지 폭발적으로 전개됐다.
수필집 '해변의 시'(1946)와 시집 '길'(1946)을 펴내며 예술과 생활의 조화를 꿈꾸었던 소시민 김동석의 역사적 풍모는 그의 평론집 '예술과 생활'(1947)과 '뿌르조아의 인간상'(1949)에 잘 담겨 있다. 소설가 이광수, 이태준, 유진오, 안회남, 김동리, 시인 임화, 정지용, 오장환, 김기림, 김광균 등 좌·우파 문인을 가리지 않고 비평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8·15 이후 민족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촌철살인의 비평적 감각으로 펼쳐간 그의 문학평론가로서의 풍모는 결코 가볍지 않다.
경성제국대학 영문과 대학원에서 영국의 비평가 매슈 아놀드를 연구하고 셰익스피어 희곡에 대해 치밀한 작품분석을 연마했던 문학사적 비평감각을 내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해방기 김동석 문학비평의 진경은 당시 '순수문학'을 주창하면서 실제로는 우익정치에 종사했고, 분단 이후에는 남한 국가주의 문학의 이념적 수장 역할을 했던 김동리에 대한 비평 '순수의 정체-김동리론'이었다.(졸저, '김동석과 해방기의 문학' 참조)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동석의 문학 활동은 해방 직후부터 시작돼 불과 3년을 넘어서는 더 이상 전개할 수 없었다.
1948년 남·북 분단정부가 차례로 수립되면서 그의 문학 활동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역사적 질곡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남이 아니면 북, 어느 한쪽을 양자택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많은 문인처럼 그도 1949년 초에 선택을 결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월북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연전에 한국 경제학의 기초를 닦은 경제학자로 서울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고 초대 국토통일원장관과 학술원 원장을 역임한 인천 출신의 고 신태환(申泰煥, 1912~1993) 선생이 남겨둔 유고가 세상에 공개된 적이 있었다.
"고향 인천을 생각할 때면 나는 한 사람의 인천 출신 공산청년을 항상 생각한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글의 제목은 '인천 출신 한 공산청년의 이야기'인데, 바로 신태환 선생과 초·중등학교 동급생으로 "둘도 없는 친구"였던 김동석에 대한 수상이다.
파란만장했던 생애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신태환 선생은 남북 분단으로 인해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두뇌명석했던 한 청년 김동석의 실종을 안타까워하며 분단의 역사를 새삼 성찰하게 했다.(신태환, '인천 출신 한 공산청년의 이야기', 황해문화 2012년 봄호)
때마침 오늘 인천에 한국근대문학관이 문을 연다고 한다.
동년배 김동리와 함께 인천 출신의 뛰어난 문학비평가 김동석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국근대문학관에서 김동석의 문학과 순수문학 논쟁을 현재적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2013년 09월 2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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