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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川歷史] 조우성(65회) 사진으로 보는 인천이야기-5/역사는 돌고 도는 법인가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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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 8.23)
사진으로 보는 인천이야기-5
역사는 돌고 도는 법인가
신미양요=1866년 프랑스 군이 강화를 유린한 지 5년 뒤, 이번에는 미국의 아시아함대 소속 군함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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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가 종교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신미양요는 제너럴 셔먼 호 사건을 핑계 삼아 통상을 강요하고자 한 데서 시작된 침략이었다.
미군은 조선 정부의 불법 침범 경고에도 불구하고 광성진에 접근했고, 경고 사격을 하자 오히려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다.
이에 불응하자 미군을 준비된 공격을 시작했다.
1871년 6월10일, 군함 2척과 병사 644명을 동원한 사령관 로저스는 초지진을 점령했다.
그 뒤 덕진진, 광성진을 차례로 점령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 미군은 소기의 목적을 이뤘다고 여겨 25일 작약도 정박지로 철수했다.
그러나 조선 정부가 타협을 하지 않자 5월16일 제풀에 지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체푸(현 산동성 연대시)로 되돌아갔다.
이 전투에서 어재연 장군 휘하 조선군 350여 명은 장렬한 최후를 마친 반면, 근대적 무기로 무장한 미군은 맥키 중위 등 3명의 전사자와 10여 명의 부상자만을 냈다.
이에 대해 김원모 전 단국대 교수는 '근대한미교섭사'에서 "조선군은 그들의 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용맹스럽게 싸우다가 모두 전사했다. 아마도 우리는 가족과 국가를 위하여 그토록 장렬하게 싸우다가 죽은 병사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고 기술한 바 있다.
신미양요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광성보 전투에서 '호국의 상징물'인 수자기(帥字旗)마저 약탈당한 조선 정부는 국제적 정세 판단이나 반성 없이 기세를 올려가며 전국 각처에 '척화비'를 세우는 등 쇄국정책을 강화했다.
조선과 미국의 조우는 제너럴 셔먼 호 사건과 신미양요에서 보듯 불행한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됐던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돌고 도는 법.
1871년 인천 주둔 조선군에게 진 '피의 빚'은 79년 뒤 '인천상륙작전'으로 되갚아지고, '수자기'도 정식으로 되돌려 받아 현재 강화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1 미국 함대의 기함 콜로라도 호
1800년대 인천 앞바다에는 이양선이라 불리는 강대국들의 배가 수시로 출몰했다.
신미양요 당시 인천을 침공한 미 군함은 기함 콜로라도 호를 위시해 알래스카 호, 베네시아 호, 모노카시 호, 팔로스 호 등 5척이었다.
1871년 영국인 종군 작가 플렉스 비아토가 찍은 사진이다.
2 초지진을 공격하는 미국 수병들
미국 아시아함대 소속 수병들이 초지진에 상륙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상상화이다.
웃통을 벗은 병사와 정복 차림의 병사가 갯벌에 빠진 야포를 끌어당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 잡지 '밀리터리 히스토리'에서 전재했다.
3 강화 초지진에 상륙한 미군들
1871년 6월 10일, 미국 군함 모노카시 호의 포격으로 소개된 초지진에 미군들이 상륙한 모습이다.
초지진을 점거한 미군은 군사 시설물을 파괴하고, 다음날 중앙 요새인 덕진진을 공격했다.
4 혈전을 벌인 광성진
6월 11일, 조선군과 미군은 광성진에서 혈전을 벌였다.
당시 이곳에는 어재연(魚在淵)이 지휘하는 350여 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반면에 미군측은 전사 3명, 부상자 10여 명을 내는 가벼운 손실을 입는 데 그쳤다.
이때 빼앗긴 '수자기(帥字旗)'는 2007년 반환돼 강화역사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하퍼즈 위클리(1871. 9. 9.)' 전재
5 덕진 돈대를 점령한 미 수병
우세한 무기를 앞세워 덕진 돈대를 점령한 수병들이 성조기를 맨땅 위에 세우고 있는 광경을 동판화로 그려 나타낸 것이다.
미국 시사 주간지 '하퍼즈 위클리'에 수록된 것이다.
6 선상 위의 조선군 포로들
포로로 붙잡혀 콜로라도 호에 머물던 조선군 포로들. 포로 송환 협의차 승선한 관리(삿갓을 쓴 이)와 대면하고 있다.
이들 중 몇 명은 몸이 불편해 미국인 의사의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코리아 캍 인 타임(1997. 영국)' 전재
7 약탈을 당해 미 군함에 내걸린 '수자기'
조선군은 광성진 전투 때 장군의 지휘권을 상징한 '수자기(帥字旗)'까지 약탈을 당하는 오욕을 감내해야 했다.
미 해군사관학교박물관에 보관돼 있던 '수자기'는 2007년 반환돼 현재 강화역사박물관에 '호국 의지의 상징'으로서 전시되고 있다.
당시 미 함상에 내걸린 수자기와 경계를 서고 있는 수병 모습이다.
/조우성(주필)·사진제공=강화군, 눈빛출판사, 하퍼즈 위클리, 밀리터리 히스토리, 코리아 컷 인 타임
2013년 08월 2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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