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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川歷史] 조우성(65회) 사진으로 보는 인천이야기-4/강화, 프랑스군 침략에 맞서다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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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 8.16)
사진으로 보는 인천이야기-4
강화, 프랑스군 침략에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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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 역사의 전면에 서서히 떠오른 시기는 서구 근대자본주의 발흥과 연계선상에 있었다.
산업혁명에 따른 상품 경제의 발흥은 새로운 시장 개척을 하기에 이르렀고, 그들의 시선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은둔의 왕국 조선'에 모아졌다.
그들은 통상과 수교를 요구했으나 조선은 그에 불응했고, 도성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인 제물포 일원에서 그들은 소위 '포함 외교'를 시도했다.
1866년(고종 3년)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침범한 병인양요가 그 첫 사건이다.
흥선대원군의 천주교도 학살 사건을 핑계 삼아 그 해 9월18일 로즈 제독이 있는 프랑스 군함 3척이 인천 앞바다에 나타났고, 10월에는 순양 전함 게리에르호 등 군함 7척과 600여 명의 해병대가 작약도 해상에 들이닥쳤다.
10월14일에는 갑곶진 인근 고지를 점령했으며, 16일 전군이 강화를 점령하면서 살육과 방화를 자행하고, 외규장각의 도서와 은괴 등을 약탈해 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속셈은 무력으로 조선의 문호를 개방하고, 불평등한 통상조약을 맺는 데 있었다.
이때 조선 정부는 수복 작전에 돌입했다.
문수산성에서 패했던 조선군은 10월1일 밤 양헌수 지휘 아래 549명의 군사를 정족산성에 잠복하게 해 3일 산성을 공격하는 프랑스군을 물리쳤다.
프랑스군은 6명의 전사자와 60여 명의 사상자를 냈으나, 조선군은 전사자 1명, 부상자 4명뿐이었다.
정족산성에서의 승리는 프랑스 군이 물러가게 하는 동인이었다.
10월5일, 1개월이 넘는 원정으로 인한 병사들의 피로와 사기 저하 등으로 프랑스 군은 강화도에서 철수했다.
그 후 조선 정부는 쇄국정책을 더욱 강화하는 길을 걸었다.
병인양요 당시 사진은 로즈 제독과 게리에르호 정도를 발굴하고, 전투 상황은 모두 동판화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에 소개한 동판화 중 프랑스 잡지 '르 루트 뒤 몽드'의 것은 '격동의 구한말 역사의 현장'에서 전재했다.
나머지 사진과 동판화는 사진 관계 전문 '눈빛 출판사'의 이규상 사장이 본지에 제공한 것이다.
1 프랑스 군의 강화 침입
1866년 9월 16일, 프랑스는 군함 3척, 포함 4척, 병사 1000여명을 동원해 강화를 점령하고 조선 정부를 협박했다.
이들은 살육과 방화를 저지르고, 외규장각도서 등을 약탈했다.
프랑스 군의 강화 침입 광경.
2 강화 유수부 동헌
강화 유수부(留守府)의 동헌(東軒)으로 소개된 건물이다.
병인양요 당시 거의 모든 건물이 불에 타 오늘날에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1873년 르 투르 뒤 몽드 전재.
3 강화도 전경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 유수부 전경이다.
오른쪽 중간에 보이는 성문은 강화읍성 동문으로 추정되고, 큰 느티나무는 지금의 강화읍 신문리 잠두교회 옆에 있던 것으로 일제강점기 때 공출로 베어졌다고 한다.
1873년 르 투르 뒤 몽드 전재.
4 병인양요 당시 강화부
흥선대원군의 천주교도 학살과 탄압에 대항하기 위해 1866년 프랑스 함대가 강화에 침입한 사건을 병인양요라 한다. 종군 화가 주베르는 당시 전황을 생생히 그려 남겼다.
프랑스 군이 강화부를 침입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 산허리의 포연이 흰색으로 묘사돼 있다.
5 프리깃 함 게리에르 호
강화성을 공략해 점령하고 외규장각의 여러 서적과 은괴, 군물 등을 약탈했던 프랑스 해군의 핵심 군함이다.
1866년 음력 10월16일 7척의 군함과 일본 요코하마 주둔 해병 300여 명 등 도합 800여 명 전원이 강화성을 공략했다.
일본 사가사키 항에 정박 중인 모습이다.
6 병인양요 당시 침략의 주역들
해군 제독 피에르 구스타브 로즈(맨 가운데)가 함선 위에서 수병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었다.
로즈는 병인양요 때 조선 공격을 주도한 인물이다. 이들에 의해 궁전과 외규장각 도서가 불에 타 없어지는 피해를 당했다. /조우성(주필)
※병인양요=1866년 프랑스 함대가 강화를 침범, 선진국을 자처하며 인천 문화를 짓밟고 외규장각도서 등 약탈과 방화를 자행한 사건.
2013년 08월 1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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