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랑
[仁川歷史] 조우성(65회) 사진으로 보는 인천이야기-18/개항장 제물포에 몰려든 서양상인들(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3.)
사진으로 보는 인천 이야기-18
개항장 제물포에 몰려든 서양상인들
국내 최대 무역상사 세창양행 등 사업 활발
담배·바늘 등 생활용품 비롯 무기 수입까지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개항장 제물포를 제일 먼저 찾아온 서양 상인은 영국인 스코츠 위리엄 자딘과 제임스 매디슨이다.
1832년 동인도회사 소속 무역선 선장이었던 이들은 중국 광동성 광저우에서 이화양행(Jardine Matheson & Co.)을 설립하고, 홍차와 아편 무역에 주력했다.
회사 창립 2년 후 동인도회사의 대중국 무역 독점이 폐지되자, 상해·홍콩 등지에 진출했고, 1859년에는 일본 요코하마에도 지점을 냈다.
1883년 6월에 인천 제물포에 지사를 설치하고 화물 우송, 우피 무역, 광산 개발 등에 나섰으나 사업 부진으로 1884년 11월 영업을 중단했다.
그 뒤를 이은 서양 상인은 독일인 마이어(H. E. Meyer)였다.
그는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본사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무역에 뛰어들어 1884년 제물포에 세창양행을 설립했다.
선박 운송, 광산 개발, 기술 제공, 차관 제공, 무역 등 다각적인 사업을 벌여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응봉산 정상(현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자리)에 세운 사택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기록되고 있다.
초기에 수입해 팔았던 것은 주로 염료, 면포, 바늘, 금계랍 등 생활용품이었다.
그 중 바늘은 중국제와는 달리 쉬 부러지지 않아 부녀자들에게 인기가 높았고, 원래 학질약이었던 금계랍은 간난 아기의 젖을 떼는 데 널리 사용됐다.
그 후 수입품 다변화를 꾀해 강철, 약품, 기계, 무기 등을 중계무역해 큰 수익을 얻었다.
미국인으로 첫 발을 내디딘 이는 타운센드(Townsend)였다.
그는 1884년부터 모오스(Morse)가 운영하는 미국 무역상사의 인천 대리점을 운영하는 형태여서 회사 이름을 '모오스·타운센드상회'라 했는데, 1895년 모오스 권리를 매수해 '타운센드상회'라 개칭해 1930년까지 회사를 이끌었다.
타운센드는 1885년 초, 인천의 순신창상회를 인수해 서상집을 대리인 사장으로 앉혀 미곡 무역을 하는 한편 한국인 객주와 상인들에게 자본금을 대여하기도 했다.
그와 함께 무기를 구입해 조선 정부에 납품했고, 왕실 관련 사치품, 전기 관련 용품, 식료품, 식기류, 의약품, 의류, 침구류, 문방구류, 실내 장식용품 등을 인천의 외국인에게 판매했다.
특히 1892년부터 증기력을 응용한 근대식 정미공장을 만들었는데, 이 '타운센드 정미소'는 근대식 정미소의 효시이다.
타운센드는 또 1897년 미국의 거대 석유기업인 스탠다드석유회사와 계약을 맺어 조선에서의 석유 판매 독점권을 획득했다.
1896년에는 월미도에 약 60만통의 석유를 저장할 수 잇는 창고를 지었고, 1900년에는 율도에 폭약창고를 건설해 세창양행과 함께 이를 공급했다.
홈링거상회(Homle Ringer & Co.)는 영국계 가운데 비교적 활발하게 활동한 회사였다.
일본 나가사키에 근거지를 둔 이 회사가 인천에 출장소를 둔 때는 1896년이다.
밀가루, 설탕, 총포, 면직물을 수입했다가 러시아계 동보기선회사의 대리점을 맡고는 한국산 미곡의 블라디보스톡 수출에 주력했다.
영국계의 광창양행(Bennet & Co.)도 있었다.
원래 이 회사는 1902년 영국인 네베트와 일본인 에바라 슈이치로가 합자한 '일영(日英)무역회사'였는데, 후에 베네트 개인 경영의 회사로 되면서 이름을 바꿨다.
상해에 수입된 영국제 면직물을 인천에 재수입해 팔았으나 영업 실적은 좋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 독일 무역상사 세창양행
세창양행은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외국 무역상사로 광복 직후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초기 이 회사 사옥이다.
2 세창양행 사택
지금의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자리에 있었던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도 유명했다.
6·25전쟁 때 소실됐다.
멀리 인천각이 보인다.
3 홈링거상회 인천지점
영국계인 무역상사인 홈링거상회는 1896년부터 활발하게 사업을 벌였다.
지금의 중구청 뒤에 있던 흰색 2층 양관으로 1910년까지 존속했다.
4 세창양행의 물감 상표
세창양행은 서양의 물감, 바늘, 석유, 약품, 화약 등을 수입해 팔았다.
사진은 초레상을 배경으로 한 물감 상표로 당시 보기 드문 천연색으로 제작됐다.
5 영상(英商) '홈링거상회' 광고
영국계 무역상사 '홈링거상회'의 인천지점 선전 광고이다.
모직물, 이집트 담배, 난로 등 여러 판매 품목과 전화번호 등을 수록했다.
6 광창양행 담배 광고
인천 광창양행의 담배 광고이다.
'토이고지권연초(土耳古紙卷煙草)'란 문구가 이색적이다.
'터키산' 옛 종이로 말아놓은 담배란 뜻이겠다.
경성, 인천, 부산, 원산에 위치한 판매점도 알리고 있다.
/조우성(주필) ·사진제공=인천시 역사자료관, 인천시립박물관, 일제강점기 사진엽서, 인천부사(仁川府史), 필자.
2013년 11월 29일 (금)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