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랑
[仁川歷史] 조우성(65회) 사진으로 보는 인천이야기-15/소통의 상징 '다리'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3.11. 8)
조우성 사진으로 보는 인천이야기-15
소통의 상징 '다리' 인천 발전의 축 되다
/조우성(주필)
월미도 나무다리, 인천교 등 추억으로
영종, 인천대교 '지역 성장 핵심'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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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 섬과 뭍을 이어주던 가교(架橋)이다. 인천에는 의외로 다리가 많았다. 강이나 호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바다와 함께 살아온 항구 도시답게 개를 건너거나 뭍과 육지를 잇고 혹은 섬에서 섬을 이어가는 다리를 부지런히 놓아 왔다.
인천에서 가장 오랜 다리는 옛 포구와 본섬 영종도를 잇던 만세교(萬歲橋)다. 1663년 영종진 만호(萬戶·진에 배치된 종4품 무관) 남득화(南得華)가 주민을 동원해 두 섬을 연결시켰다고 하는데, 폭 12척, 길이 360척이나 되는 큰 다리였다.
영종도 독지가 김종현이 놓은 징검다리도 있었다. 영종도와 삼목도를 오갈 때 익사 사고도 빈발해 삼목도 주민 150세대가 1974년부터 3년간 등짐을 져 길이 1.2㎞, 폭 5m, 높이 3m의 '삼목다리'를 완성했다. 당시 규모가 큰 새마을사업으로 알려져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소개됐다.
근대의 것으로는 월미도 나무다리를 들 수 있다. 개항 당시에는 한강 하구의 모래가 밀려들어 썰물 때면 월미도에서 도심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는데, 제물포가 개항장이 되면서 선박 입출항을 위해 준설을 하자 바닷길이 된 때문이다. 그 후 이곳에 석탄창고와 급수소, 무전 송신소 등을 설치한 일본이 기차가 드나들 수 있는 나무다리를 건설했다. 일반인은 옛 세관 앞 잔교에서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1922년 약 1㎞, 2차선 규모의 둑길이 놓인 후 월미도는 일반 시민과 가까운 행락지로 부상했다.
광복 후에 놓은 다리로 관심을 모았던 것은 강화교이다. 흔히 강화대교라 불렸던 이 다리는 강화와 김포를 연결하는 길이 694m, 넓이 10m, 교각 15개 규모로 1970년 1월2일 개통됐다. 그 전만 해도 강화에서 인천으로 오자면 송림호, 갑제호 같은 선박을 이용해야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강화대교마저 교통 수요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지자 1999년 6월 인천시가 강화군 초지리와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를 잇는 초지대교를 착공해 2002년 8월 개통했다. 이밖에 동락교, 대청교, 부근교 등 크고 작은 다리가 있었고, 동구 송현동의 '송현교', 남구 숭의동 공구상가 초입의 '독갑다리', 동구 송림 4동에서 서구 '개건너'를 잇는 '인천교' 등도 추억 속의 다리로 기억되고 있다.
현대적 의미의 대교가 등장한 것은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서면서 놓은 영종대교가 효시이다. 서구 경서동에서 중구 운북동에 이르는 4.42㎞ 구간을 49개의 교각이 떠받치고 있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도로·철도 겸용인 2층 자정식 현수교로 2000년 11월 완공했는데, 시공 기술과 미관이 뛰어나 국제적인 상을 수상했다.
대교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국제공항과 신도시를 20여 분 만에 연결하는 인천대교이다. GCF, 세계은행 인천사무소 등을 유치하는 데 크게 기여한 다리이다. 6차선, 총연장 18.38㎞로 국내에서 가장 크고 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5년 7월 착공하여 4년 4개월만인 2009년 10월 완공했다. 주탑의 높이는 63빌딩보다 조금 낮은 230.5m이다. 제2경인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 등과 연결돼 인천 발전의 핵심적 인프라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밖에 영흥대교, 선재대교, 석모대교, 청라대교 등이 완공해 운영되거나 추진 중이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인천에서 놓아야 할 대굣길은 강화도에서 개성과 해주를 이어주는 '평화의 대교'가 아닐까 싶다.
1 월미도 나무다리
개항 직후 일제는 월미도에 석탄창고와 급수소, 무전 송신소 등을 설치한 후 기차가 드나들 수 있는 나무다리를 건설했다. 이 다리는 1922년 약 1㎞, 2차선 규모의 둑길로 교체되었다.
2 강화교
1965년 당시 지역 최장의 다리는 '강화교'였다. 4년7개월간의 대공사 끝에 1969년 1월26일 개통했다. 길이 694m, 넓이 10m의 2차선 규모인 이 다리는 강화군민의 가슴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었다.
3 송현교
만석동 괭이부리에서부터 들어오는 바닷물이 들고나던 수문통(水門通)에 세워진 다리이다. 지금의 화평동 파출소 부근에서 갯골을 건너기 위해 일제 강점기 때 설치되었는데 이름을 '송현교'라 했다. 지금은 표지석만 남아 있다.
4 '강화교' 표지
'강화교'의 기여도는 컸다. 후에 건립된 4차선 '강화교'는 '강화대교'라 불렸다. 강화대교와 초지대교가 태어날 수 있는 교두보 역을 감당한 은혜의 다리이다. 사진은 다리 앞쪽에 달았던 '표지판'이다.
5 강화교 개통식
1969년 개통식 당시 박정희 국가최고회의 의장과 관계자 일행이 직접 강화교를 걷고 있다. 환하게 웃고 있는 표정들에서 마침내 숙원사업을 이루었다는 성취감을 읽을 수 있다.
6 동구와 서구를 이은 인천교
1958년 1월 17일, 지금의 동구와 서구를 잇는 '인천교'가 준공됐다. 그 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은 배를 이용해 '개건너'로 가야 했다. 머리에 광주리를 얹은 아낙네와 중절모 차림의 장년 등이 다리를 건너고 있다.
7 영종대교
인천국제공항 건설에 따라 영종도와 인천시의 육지부를 연결하기 위해 건설된 다리이다. 총길이 4420m, 너비 35m이다. 1993년 12월에 착공해 2000년 11월 완공했다. 도로와 복선철로가 지나가는 2층 교량으로 '아름다운 다리 상'을 받았다.
8 인천대교
21세기 인천의 상징이다. 인천국제공항과 연수구 도심을 연결하는 총연장 18.38㎞의 다리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길다. 2005년 7월에 착공, 4년4개월 만인 2009년 10월 완공했다. 바다를 가로질러 공사 중인 초기 모습이다.
사진제공=인천시역사자료관, 강화군, 인천국제공항공사,
일제강점기 사진엽서, 필자.
2013년 11월 0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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