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랑
[仁川歷史] 조우성(65회) 사진으로 보는 인천이야기-14/택시 영업 개시(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3.11. 1)
사진으로 보는 인천이야기-14
1919년 인천거리에 승용차가 나타났다
택시 영업 개시 … 1939년 버스 포함 50대로
2012년 '자동차 100만' 시대 … 2.85명당 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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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거리에 승용차가 등장한 때는 1919년 8월이었다.
'별부자동차부(別府自動車部)'란 낯선 이름의 일본인 회사가 영업을 개시한 것이 효시이다.
처음에는 1시간에 5원(당시 일본 화폐)을 받는 시내 대절 영업만 했다.
그 뒤 전국 최대 규모의 임해유원지 월미도가 개장되자 1923년 4월부터 시내 택시 영업과 함께 월미도 왕복 버스까지 겸업했다.
이 회사는 1927년 6월 인천자동차상회에 양도됐고, 다시 1930년 인천자동차주식회사가 승계해 명맥을 유지했다.
1932년 무렵 시내를 달리던 자동차는 인천자동차주식회사의 버스 4대, 택시 2대, '스피드 자동차부'의 택시 5대, '미나토' 회사의 택시 5대 등 모두 16대였다.
택시 요금은 종래 1회 1원을 받았으나 영업이 부진하자 1930년 12월 80전으로 내렸다.
월미도 버스는 4월에서 10월까지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30분마다 정시 발착했다.
요금은 편도 어른이 13전, 어린이 7전, 왕복 어른이 25전, 어린이 13전이었다.
그러나 인천-서울 간 버스 영업은 도로가 좋지 못해 부진했다.
1929년 5월부터 경인버스주식회사가 하루 3회를 운행했는데 요금은 어른 아이 모두 편도 70전이고, 소요 시간은 2시간이었다.
기차에 비해 시간도 더디고, 요금도 비싸 8·15광복 때까지도 이용자가 적었다.
인천-수원 간 버스는 수원의 화성자동차주식회사에 의해 1930년 말 소위 '수인버스'가 매일 2회씩 운행을 시작했다.
화물 운송에 따른 트럭 운수업은 1928년 4월 인천자동차상회에 의해 경인간 영업을 시작했으나 경인버스주식회사 등 3개 사가 난립해 현상 유지도 어려운 처지였다.
1939년도 '인천부세일람'에 실린 통계를 보면, 인천 지역의 자동차는 모두 50대에 불과했다.
나머지 교통수단은 자전거 6194대, 손수레 700대, 우마차 804대, 인력거 10대 등이었다.
일본인이 독점하고 있던 인천의 자동차 운수업은 광복 후 우리 손으로 넘어왔다.
1947년 4월 지금의 중구 중앙동 소재 신흥자동차부의 사장 지은영씨가 운수부로부터 개인 경영 택시 영업면허를 얻어 영업을 한 게 출발이다.
2012년 5월 현재 인천의 자동차 대수는 100만2360대이다.
이중 승용차가 77%인 77만6000대, 화물차가 16만3900대, 기타 승합차와 특수차 등인데, 이는 인구 2.85명 당 1대의 자동차 보유를 나타내는 것이다.
1 인천의 승용차 영업
인천에서 승용차 영업이 시작된 때는 1919년이었다.
1923년 월미도가 개장되자 T형 포드 자동차가 택시로 등장했다.
값이 비싸 서민들은 이용하지 못했다.
2 1940년대 인천 시가지
일제강점기 말, 지금의 중구 관동에서 바라본 거리 풍경이다.
택시 두 대와 버스 한 대가 오가고 있다.
그 무렵 인천의 택시는 모두 합쳐 20여 대를 넘지 못했다고 한다.
3 시발 자동차의 출현
광복 후 우리 손으로 처음 만든 자동차이다.
'시발 자동차'는 1955년 8월부터 1963년 5월까지 제작됐다.
드럼통을 두드려 외형을 만들고, 미군의 중고 지프 엔진을 장착했다.
1958년 9월14일 국산품전시회에서 연 행운추첨대회 광경이다.
4 신호등 등장, 버스와 시발 자동차
1961년 중구 경동 4거리에 인천 최초의 신호등이 등장했다.
그 아래로 시발 자동차와 구형 버스, 소형 마이크로버스 등이 한가롭게 달리고 있다.
지금의 상황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5 새나라 자동차 공장
인천시 부평구는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시발지이다.
'새나라'는 비록 일본에서 부품을 들여와 조립한 것이지만,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현대식 자동차였다.
청천동 공장에서 노동자가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6 선망의 대상 '새나라'
1960년대 젊은 세대에 '자동차'는 꿈 같은 새로운 삶의 상징이었다.
지금의 파라다이스 호텔 앞에 정차해 있는 새나라 자동차 앞에서 젊은 여성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7 차량 100만 대 시대
오늘날 인천 시내 도로 상황은 늘 초만원이다.
시민들의 차량 보유 대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대변혁이지만, 대기 환경과 교통 혼잡에 도시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조우성(주필)·사진제공=인천시역사자료관, 국정홍보처, 일제강점기 사진엽서, 필자.
2013년 11월 01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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