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랑
[仁川歷史] 조우성(65회) 사진으로 보는 인천이야기-13/국내 첫 도시계획 실시(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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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10.25)
'근대의 길' 인천에서 시작되다
사진으로 보는 인천이야기-13
국내 첫 도시계획 실시 '도로' 등장·공간구조 혁명
경인 '신작로' 1914년 이후 본격화 … 1931년 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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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사람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생겼다. 집과 집, 마을과 마을 사이를 이어주었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길은 자연이 베풀어 놓은 환경에 가급적 순응해 가면서 만들었다.
사람과 물건이 오가고, 문화와 문명을 나누기에는 불편한 면이 없지 않았다.
산 넘고, 들 건너 구불구불 이어진 길은 있었지만, 교통의 효율을 생각한 근대적인 길이 이 땅에 위에 만들어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근대적인 길을 닦은 곳은 신문물의 도입과 궤를 같이 해 온 인천이었다.
국내 최초의 도시계획을 실현하면서 길을 놓았던 것이다.
개항장 제물포 일원에 설치된 각국 조계지에는 비로소 '도로'라는 개념의 길이 생기고, 예전에는 없었던 가로등과 가로수, 하수구 등이 속속 등장했다.
도시 공간의 구조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지금의 중구 일대에는 가로 세로가 반듯하게 나누어진 포장도로가 개설됐다.
그러나 제물포와 서울을 이어주는 새로운 길 '신작로'가 뚫린 것은 그 한참 뒤의 일이다.
"인천에서 서울까지는 하루 낮이 걸린다. 네 사람의 교군(轎軍)이 가마 한 채가 지나가는데도 양쪽 인가의 처마에 걸려 애를 먹기 일쑤였다."
1894년 우리나라를 찾은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의 회고가 당시 경인(京仁)간의 길 사정을 말해 주고 있다.
그 옛날 인천에서 서울을 가자면 고려시대 이후 조선말까지 이용했던 역도(驛道)를 따라 걷거나, 말과 가마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화물을 운송하는 경우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한강에 이르기도 했으나 일반여객은 거의 없었다.
경인 간에 신작로가 본격적으로 놓인 것은 1914년 이후였다.
1917년 한강 인도교가 가설되기 전까지만 해도 육로로 서울을 가자면 겨울철 결빙기(結氷期)를 제외하고는 한강을 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그러나 당시 도로 공사는 도로 주변에 사는 민간인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세칭 '1등 도로'라고는 했지만 굽은 길이 많고, 노면도 울퉁불퉁해 불편했다.
경인 간 교통 수요가 점차 늘어가자 1931년부터 3년간 도로 개수공사가 다시 벌어졌다.
'빈민구제사업'의 하나로 벌인 공사에서 처음으로 경인간에 포장도로가 선보였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경인국도(京仁國道)의 기반이다.
당시 경인도로는 서울 광화문 네거리를 기점으로 하여 인천세관 앞의 이정표를 종점으로 삼았다.
1 해동지도
19세기에 제작된 채색 지도이다.
서울을 비롯한 인근 지역 간 거리가 잘 드러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2 인천감리서 앞길
인천 개항 직후 지금의 중구 내동에 세워진 인천감리서(현 인천시청 격) 앞쪽 작은 길과 해안가에 길게 뻗은 길이 나 있다.
인천읍내로 향하는 길로 보인다.
3 서울 가는 길
조선 말 외교관이었던 알렌이 지은 별장(지금의 도원동 축구전용구장 앞산 정상)이 보인다.
그 밑으로 산허리를 감도는 길이 뚫려 있다.
그 옛날 서울로 가자면 이 길을 이용했다.
4 말 탄 내·외국인들
1886년 4월 영국의 신문 '더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뉴스'에 소개된 경인간의 도로 풍경이다.
서양인들로 보이는 이들이 말을 타고 제물포를 떠나고 있다.
5 가마꾼들
개항 초기, 아직 기차가 부설되기 전에 서울을 가자면 걷거나 말을 타거나 가마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 무렵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은 길이 매우 불편했다고 전하고 있다.
6 인천부 문학리의 길
인천의 본향인 문학산 아랫말 문학리의 길이다.
옛 길 치고는 제법 크고 곧게 나 있다. 경기도 인근 지역과의 교통로였으리라 짐작된다.
7 개항장의 포장도로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적인 의미의 길이 뚫린 곳은 인천의 개항장이었다.
지금의 중구 관동 풍경이다.
전신주와 가로수가 늘어서 있고, 아스팔트 포장도로와 하수구가 보인다.
/조우성(주필)·사진제공=국립중앙도서관, 국사편찬위원회, 더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뉴스, 사진가 황철, 이종화 선생, 필자.
2013년 10월 2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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