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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 “김수현 드라마 보고 이런 생각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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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배우 홍석천(40)이 서강대학교 문과대가 주최한 ‘봄날 세미나’에 강사로 초빙돼 ‘다름’을 주제로 열띤 강의를 선보였다. 10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한 세미나는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날 홍석천은 커밍아웃 이후 겪었던 아픔과 성적 소수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세미나에 참석한 박윤모(23·마포구 대흥동)씨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동성애에 대한 궁금증과 오해를 풀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홍석천, 그가 말하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생각과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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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밍아웃 이후 빛의 속도로 달라진 인생
95년에 방송을 처음 시작한지 15년이 지났다. 커밍아웃을 한 지는 이제 10년이 다 되어간다. 2000년 10월쯤 커밍아웃을 했다. 나는 커밍아웃 이후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었다. 당시 출연하고 있던 5~6개의 프로그램에서 모두 하차해야 했다. 커밍아웃을 하면 내 삶이 많이 변할 것이라는 것은 예상했었지만, 막상 커밍아웃을 하고나니 인생이 바뀌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당혹스러웠다.
사회적인 외면과 온갖 악플에 시달려 한 달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 집밖으로 나가면 금방이라도 누군가 던진 돌에 맞아 죽을 것 같았다. “대한민국에서 커밍아웃을 한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커밍아웃 이후에 겪었던 괴로움과 외로움의 무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동성애는 타고나는 것일까?
나에게 동성애가 선천적인 것인지를 물어보는 이들이 많다. 나 같은 경우에 동성애적 성향을 타고난 것 같기도 하지만, 대개 많은 이들은 어린 시절 겪은 작은 경험 하나로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다가 동성애자가 된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쪽지를 보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한다. 그 사람들 가운데는 초등학생과 청소년기의 학생들이 많지만, 뒤늦게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 청년과 결혼해서 아이들을 둔 유부남까지 정말 다양하다. 한 어린 남학생은 우연히 집에 놀러온 사촌 형과 같은 방에서 자게 된 후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고 뛰었다며, 자신의 성 정체성이 혼란스럽다고 털어 놓았다.
나는 이러한 경우에 “지금 그런 사소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너의 정체성을 동성애자라고 확실하게 결정짓지 마라. 이성을 만나보고 또 동성도 만나보고 너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찾아봐라”하고 조언해 준다. 물론 자신이 정말 타고난 동성애자라고 느낀다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아마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 학급을 40명이라고 본다면 그 중 10~15명의 학생들이 동성을 보고 가슴이 뛰는 경험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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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인정하기까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중학교 시절부터 대학 시절까지 늘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특히 대학시절에는 서강대 수학과 여학생과 사귀었기 때문에 서강대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다(웃음). 남들과 똑같아지고 싶어서 적극적으로 여자친구를 사귀려고 노력했고, 어떤 경우에는 육체적 관계까지 맺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여자를 만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심장이 말하는 소리에 아무리 귀를 기울이고 있어도 가슴은 뛰지 않았다. 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라서 방황도 많이 했다. 내가 동성애자임을 스스로 받아들일 때까지의 그 시간들이 가장 힘들고 외로웠던 것 같다.
이렇게 계속 헤매기만 하다가 방위로 18개월 동안 근무하게 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군대를 다녀와서 24살이 되어서야 내가 동성애자임을 비로소 인정하게 됐다. 내가 게이임을 인지하고 깨닫는 순간 정말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동성애자를 외계인, 정신병자쯤으로 손가락질하는 이 사회가 나를 부끄러운 존재로 만들었다. 심지어 난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항상 교회에 가서 회계해야 했다.◆ 인생 최대의 터닝포인트, 커밍아웃
그러다가 스스로 자신감을 갖게 된 계기는 청춘시트콤「남자 셋, 여자 셋」에 출연하던 시절 네덜란드 남자친구를 만나면서부터다. 3년 동안 그 친구와 사귀면서 누군가에 그를 소개할 때면 룸메이트나 개인 영어선생 정도로 소개해야만 했다. 그 친구는 나에게 항상 “너의 정체성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너의 존재를 부끄러워하는 거다. 자신이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데 그 어느 누가 너를 사랑하겠느냐. 너는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때마다 나는 동성애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과 배우라는 직업을 핑계로, 언제나 그에게 배려를 요구했었다. 그러다 그의 말에 세뇌가 되었는지 언제부턴가 나 자신, 게이 홍석천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이들에게 당당히 소개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2000년 9월 그 친구와 헤어지고 정말 많은 고민들을 했다. 내 삶의 기준이 과연 돈인지 인기인지 아니면 행복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한달 뒤인 10월에 커밍아웃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커밍아웃을 하기 위해 정말 많은 고민과 준비를 했다. 난 사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커밍아웃을 절대 하지 않으려고 했었기 때문에 많이 고민했었다. 하지만 먼저 부모님부터 설득하게 됐다.
또, 커밍아웃 이후 2~3년 동안은 방송 일이 끊길 것이라는 것도 미리 예상했었다. 그러나 방송 일을 하면서 벌어 둔 돈으로 그 기간을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뉴욕에 가서 공부를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커밍아웃 이후에는 나를 걱정해주는 방송 관계자분들이 “지금도 늦지 않았다”며 인터뷰 보도를 취소할 수 있는 기회를 3번이나 주었다. 그런데 모두 거절했다.◆ 프랜차이즈 외식업체 6개를 운영하는 CEO가 되기까지
예상대로 커밍아웃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져갔고 내가 겪는 변화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어느정도 감안하긴 했지만 커밍아웃 이후 2년이 지나도 일이 들어오지 않아, 모아둔 돈도 점점 바닥이 났다. 그래서 집까지 팔고 시작한 사업이 레스토랑 사업이다.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생존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2002년 어렵게 시작한 레스토랑 사업이 번창하여, 지금은 이태원에 5개, 홍대에 1개의 프랜차이즈를 두고 있다.
◆ 성적 소수자를 배척하는 사람들, 왜일까?
아마 많은 남자들이 게이를 배타적으로 대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게이가 남성성을 해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래 대한민국에서 성적인 대상이 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여성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성매매 관련 법안은 성매매의 주체가 여성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게이의 등장은 ‘그동안 구축되어온 남성성을 해치고 남성도 성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또, 에이즈(HIV) 문제도 동성애자들을 배척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에이즈는 동성애자만 골라서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자들은 에이즈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안전한 성생활을 위해 콘돔을 사용하며 조심한다. 나는 3~4개월에 한 번씩 꼭 에이즈 검사를 받는다.
◆ 홍석천과 함께 한 질의응답 시간에 오간 질문들
질의응답 시간이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많은 학생들이 여기저기에서 손을 들고 질문들을 쏟아냈다. 동성애자에 대한 궁금증을 비롯하여 배우 홍석천 대한 질문, 그리고 질문자 개인이 겪고 있는 고민까지 다양한 질문이 끝도 없이 이어져, 세미나가 50분이나 연장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Q1. 드라마 속 게이들의 일상과 실제 게이들과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차이가 있다. 드라마 작가가 실제로 성적 소수자가 아닌 이상, 현실과 똑같은 게이들의 삶을 그릴 수는 없다. 게이들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 게이 중에서는 착한 게이, 사악한 게이, 바람둥이 게이, 질투가 많은 게이, 사기꾼 게이 등 다양하다. 그러나 나는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의 동성애를 보면서 나와 비슷한 점을 많이 발견한다.
Q 2-1. 동성애를 할 때, 남성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고 여성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홍석천씨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궁금하다
그렇다. 동성애자 중에서도 좀 더 남성적인 사람을 'Top', 여성적인 사람은 ‘Bottom’, 그리고 이런 성 역할에 구애받지 않는 동성애자를 ‘All’이라 부른다. 나는 남성적인 면이 더 강한 것 같다.
Q 2-2. 여성성이 강한 게이를 좋아한다면, 차라리 더 여성적인 여자를 좋아하지 않고 왜 굳이 여성적인 남자를 좋아하는가?
무엇보다도 여성과 남성의 가장 큰 차이는 생식기의 구조에 있는 것 같다. 게이는 여성의 생식구조보다도 남성의 생식구조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 또 이성애자가 똑같은 여자를 좋아하더라도 털털하고 보이쉬한 여자와 소프트한 여자 중 누구를 더 좋아하는 지는 개인의 취양 차이라는 논리와 마찬가지다.
Q3. 동성애자에게도 자식을 같고 싶은 핏줄본능 같은 것이 있을 것 같다
물론 게이들도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갖고 싶고, 아이도 입양해서 기르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는 앞으로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 나가야할 숙제다.
Q4. 드라마「개인의 취향」이나 미드「Sex and the City」처럼, 여자들이 게이 친구를 갖고 싶어하는 것이 요즘 트렌드인 것 같다
그렇다. 게이 친구를 사귀게 되면, 남편이나 남자친구들에게 할 수 없는 얘기를 게이 친구에겐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 특별한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게이 친구’라는 호칭이 썩 편하지만은 않다. 동성애자도 먼저 게이나 레즈비언이기 이전에 평범한 인간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이성애자 친구’라고 소개하면 무엇인가 어색하듯이, 나는 동성애자 배우 홍석천이기보다 그냥 홍석천이고 싶다. 언어로서 상대방을 분류하고 규정짓는 것은 어쩌면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5. 성적 소수자들이 받는 사회적인 편견과 부당한 대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보나?
동성애는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의 문제, 더 나아가 사회의 문제이다.「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주인공 태섭이 커밍아웃을 하자 가족들이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각 개개인들이 조금씩만 더 변화했으면 좋겠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아가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나와 조금 다른 친구들을 만났다고 해서 오직 그 ‘다름’을 이유로 그들을 차별하거나 멸시하지 않았으면 한다.
Q6. 앞으로의 계획은?
성적 소수자인 게이와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그리고 트랜스젠더들은 많은 사회적인 편견과 오해에 부딪히고 있다. 그리고 그 벽을 넘기 위해 싸우고 있다. 특히나 트랜스젠더의 경우에는 불합리한 대우와 차별, 성적인 모욕과 폭행 등 심각한 문제들이 많이 있다.
커밍아웃 이후 지금까지의 10년은 사회적으로 무너져버린 나를 다시 일으키는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로의 10년은 차별받고, 배척받는 성적 소수자들의 삶을 위해 보내고 싶다. 그리고 힘이 닿는다면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서도 무엇인가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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