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BEING!
'바람둥이' 카사노바와 치즈
본문
그가 사랑한 '애벌레 치즈(카수 마르주·썩은 치즈)'도
쾌락을 위한 음식이었다…
"구더기가 치즈 파먹으면서 최음제 같은 액체가 생겨…
하지만 여자·자유中 고르라면 난 자유를 선택할 수밖에"
자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Casanova, 1725~1798)는 식상한 인물이다.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태어난 그의 이름은 '바람둥이'란 뜻으로 너무 많이 쓰였다. 굴과 초콜릿 얘기도 너무 많이 들었다.'호색한'이었던 그가 '복권'된 것은 인문학자들의 수십 년간의 노고 덕분이다. 그는 작가이자 외교관, 재무관, 연금술사, 여행작가이자 심지어 최초의 SF 작가(5부작 공상소설 20일 이야기)였으며, 한때 성직자를 꿈꾸기도 했고, 여러 귀족과 왕의 총애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도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그의 마지막 직업은 보헤미아에 있는 한 백작의 도서관 사서(司書)였다. 아무도 불러주는 이 없이 돈 없고, 힘 없었던 60대의 사내는 12권 분량의 프랑스어 회고록 '내 삶의 이야기(Histoire de ma vie)'를 쓰며 인생을 버텨냈다. 그와의 가상 대화 형식을 통해 이 역사적 바람둥이 얘길 들어본다.
―당신은 1785년부터 12년간 도서관에서 눈칫밥을 먹습니다. 눈치 빠른 성의 하인들은 당신을 박대했고요. 오로지 육체의 쾌락만을 추구했던 당신의 삶이 노년에 누추해지는 것을 보니 역시 '정신'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왜, 슈테판 츠바이크(오스트리아 작가로 세계 3대 전기 작가 중의 하나)가 그러던가? 그가 이렇게 썼겠지. '비축하지 않고 낭비하는 자는 파산하고, 한순간에 온기를 잃는다. 사람들은 마흔살까지의 카사노바를 은근히 시샘했지만, 그후에는 그를 동정했다'. 나는 반대로 이렇게 묻겠소. 지성은 약간의 두뇌와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갖출 수 있지만, 아름다운 입술과 단단한 근육을 마음먹는다고 가질 수 있겠는가? 츠바이크도 인정했듯 나는 마지막 휴식기를 통해 방대한 저작을 남긴 저술가로 남았네. 젊어서는 놀고, 늙어서는 공부. 최고지. 물론 '단테가 묘사하는 것을 깜빡 잊었던 지옥' 권태라는 놈이 나를 괴롭히긴 했지만."
―21세기를 잘 모르시는군요. 요즘은 외모 역시 마음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듣고 있자니 너무 윤색을 잘 하시네요. 당신은 마지막 만난 창녀에게 돈도 마음도 뺏기지만 정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후로 당신은 불능이 됩니다.
"'정복'이란 표현은 남성우월주의자들의 시각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오. 돈 후앙 아시오? 스페인의 작가 티르소 데 몰리나가 탄생시킨 가공의 인물이지. 그자는 정절을 지키는 여자를 취하고 버림으로써 만족감을 얻었지. 신부 출신인 작가가 어쩌면 그런 유치한 발상을 했는지…. 여러분들이 알듯 나는 높으나 낮으나 모든 여성을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오."
- ▲ 치즈 애호가들은‘경력’이 오랠수록 더 구리구리한 맛을 사랑하게 된다. 마치 홍어처럼. 사진은 푸른곰팡이균을 사용해 만든 블루치즈. 로크포르, 고르곤졸라 등이 블루치즈의 대표선수다. / 게티이미지
―선생에겐 사랑이 그렇게 흔했나요?
"하하. 드라마 속 상투적 대사 같군. 작가 버나드 쇼는 말했지. '사랑은 한 여자와 다른 여자의 차이를 과대 평가하는 것'.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는 마치 코카인 복용자의 뇌와 같은 반응을 보이네. 우울증 환자가 항우울제를 먹으면 세로토닌의 수치가 올라가 행복해지지만, 반대로 도파민 생성이 억제돼 성욕이 사라지네. 사랑이란 뇌의 장난질일 뿐이야. 그게 한 번일 이유가 있나."
―그렇게 쿨한 분이 굴과 초콜릿에는 그리 애착을 보였는지 궁금해지네요.
"내가 '굴과 초콜릿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던가. 여자처럼 음식 종류는 많을수록 좋지. 라구(프랑스식 스튜)에 푹 빠졌었고, 나폴리 요리사가 만들어낸 마카로니, 뉴펀들랜드 해안에서 잡은 대구, 쿰쿰한 향이 나는 야생고기, 와인식초를 넣고 끓인 푸른 송어요리…. 물론 굴이 재미있는 생물 특성을 갖고 있지. 참, 내가 어떻게 굴 하나로 속치마를 벗겨냈는지 얘기해줄까?
―그건 됐고요, 굴이 왜 흥미롭다는 것이지요?
"굴은 사랑의 미네랄이라 불리는 아연이 많이 들기도 했지만, 참굴 같은 것들은 웅성선숙(雄性先熟)을 한다네. 즉 첫해는 모두 수놈이었다가 2~3년 자라면 모두 암컷이 되어 새끼를 낳는거지. 수컷에서 진화한 암컷, 재미있지 않나."
―구더기가 든 치즈에 애착을 보였다는 사실도 놀랍네요. 먹을 수 있나요?
"먹을 만한(edible)이란 단어의 정의가 뭔가? 러시아 과학자 이반 파블로프(Pavlov)는 '먹을 수 있는 것이란 타액의 분비를 촉진해 식도를 거쳐 위장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은 뭐든지'라고 말했네. 번데기를 먹으면서 전갈튀김은 끔찍하다 하는 건 우스운 일이지."
―그 치즈의 어떤 부분이 선생을 사로잡은 건가요?
"사실 난 '치즈사전(Dictionary of Cheeses)'을 쓰려고 했다 포기했어. 루소가 '식물 사전'을 쓰려고 했다가 능력이 닿지 않아 포기했던 것처럼. '목동이 우유를 잊고 놔뒀다 보니 치즈가 되어 있었다'는 얘기가 가장 흔히 알려졌지만 좀 심심하지. 그런데 '구더기 치즈' '애벌레 치즈'로 불리는 카수 마르주(Casu marzu·썩은 치즈)는 아주 재미있어. 이탈리아 사르디니아의 특산품인 이 치즈는 치즈 파리가 치즈에 알을 낳도록 유도해 구더기를 만들어. 이놈이 치즈를 파먹으면 지방이 분해되면서 '눈물'이란 액체가 나와. 최음제 역할을 하지. 더 재미있는 것은 이 구더기가 살아있을 때 먹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독성이 생긴다는 거야. 최적의 맛을 보려면 구더기까지 먹어야 한다는 것, 재미있지 않나?."
―마치 당신 같은 사람이 지순한 사랑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과 비슷하네요. 왜 그리 방황하며 살았습니까.
"여자들을 미친 듯이 사랑했지만, 여자와 자유 중 하나를 고르라면 자유를 택할 수밖에 없는 게 나였소. 내 생애에 내가 했던 일은 그것이 선하든 악하든 무엇보다 나의 자유 의지로 행해졌소. 나는 내 안에서 자유로웠다고 독자들에게 고백하오."
―그건 자유였습니까, 도피였습니까.
"그 답을 택하는 것 역시 당신의 자유요."
●유럽 각국 대표 치즈는
'치즈 다음엔 아무것도 안 나온다(After cheese comes nothing)'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레스토랑에서는 때로 애피타이저로 나오지만 엄밀하게는 후식에 해당한다. 정찬을 먹은 후 후식으로 나온 치즈를 너무 많이 먹으면 식사가 부실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치즈는 프랑스에서는 프로마주(fromage), 이탈리아에서는 포르마지오(formaggio)로 불린다. 요즘 웬만한 레스토랑에선 '치즈 피자' 대신 '포르마지오 피자'라 쓰여 있다. '프랑스에는 365가지의 치즈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치즈는 각 나라에서 거기에 맞게 발전해왔다. 유럽 각국의 대표적인 치즈는 다음과 같다.
▨마스카포네(Mascarpone)―이탈리아 디저트 티라미수의 핵심 재료로 크림 상태. 스페인 왕이 먹고 나서 'Mas que bueno'(More than good)라고 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는 설.
▨페타(Feta)―그리스의 목동들이 남은 우유로 만들었다는 치즈. 원래는 양유나 염소유로 만들었다. 잘 부서져 올리브유에 담근 병조림으로 판매된다.
▨모차렐라(Mozzarella)―이탈리아 캄파니아 지방이 원산지로 피자의 필수재료. 원래는 물소젖으로 만들었다.▨카망베르(Camenbert)― 부드러운 속살을 가진 치즈로 버섯향과 곰팡이향이 어우러진 느낌이 난다. 프랑스 노르망디 카망베르 지방이 원산지. 무게 300g 내외로 작게 만든다.
▨브리(Brie)― 파리 북동부 브리가 원산지로 은은한 나무향, 버섯향이 특징. 이 역시 부드럽다. 원반형으로 크게 만들며 카망베르와는 발효균이 다르다.
▨고다(gouda)―로테르담 근처 동명의 마을이 원산지인 네덜란드의 대표 치즈. 노란색 왁스로 속을 감쌌고, 18개월 이상 숙성되면 검은색 왁스를 쓴다.
▨에멘탈(Emmental)―베른지방의 에멘탈이 원산지인 스위스 대표 치즈. 하드치즈로 고소한 호두 맛이 난다. 구멍이 뻥뻥 뚫려 있다.
▨파마산(Parmesan)―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에서 만든 것만이 파마산 피즈로 불릴 수 있다. 그레이터(강판)에 갈아 파스타, 샐러드 등에 뿌려 먹는다.
▨체다(Cheddar)―영국 서머셋 지방에서 만든 치즈로 식빵에 넣어 먹는 가장 흔한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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