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BEING!
'조준' 못하는 남편,
작성자 : 최영창
작성일 : 2009.12.16 04:40
조회수 : 1,577
본문
집집마다 크게 작게 남자의 화장실 조준 자세를 두고 전쟁이 벌어진다. 화장실이 사격장도 아닌데 '서서 쏴'와 '앉아 쏴'의 용어가 등장한다. 설문 결과를 보니, 80% 정도의 여성이 남성도 앉아서 소변을 봤으면 하고, 실제 47%의 남성이 (주로 집에서) 그렇게 한다고 한다. 절반의 그러지 않는 남자들은 남성의 생리구조적 특성과 의학적 이유 그리고 자존심 등을 내세우며 청결과 위생을 외치는 안주인과 팽팽히 맞선다. 이 부분에서 남자의 논리는 빈약하고, 여자의 주장은 현실적이다. 서든, 눕든, 물구나무를 서든 가가호호 부부 쌍방이 합의할 문제겠지만, 뒤처리는 뿌린 자의 몫이라는 상식은 남녀 불문 예외없이 적용될 성질이다.
아울러 이 날선 대립각 속에서 여성이 끝내 남성을 조신하게 변기에 앉히고 싶다면 손자의 그 유명한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내 남편이 달라졌어요' 병법을 알아둘 필요도 있겠다. 그것은 바로 소변을 바라보는 남성의 문화심리적 자세를 역지사지하는 것이다. 말이 어렵다. 쉽게 가자.
남자 아이들은 친구들과 오줌 놀이를 하면서 큰다. 어린 화랑들은 동네 담벼락을 형이상학적 무늬로 도배하며 누가 더 길고 오래 오줌을 누는지를 경합한다. 이 놀이는 사춘기 소년들에게 성적 판타지로 계승되어 승자에게 우월한 남성이라는 영광의 월계관을 씌워 주기도 한다. 성인이 돼서도 '오줌발은 정력!'이라는 믿음은 더 공고하게 굳혀져 화장실은 단지 배설의 공간이 아닌 자기 힘의 검증장이요, 공공 화장실은 그 힘의 경연장이다. 특히 공공 화장실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규칙은 '선(先) 발사자, 선(先) 퇴장'이다. 먼저 볼일을 보고 있던 옆 사람보다 빨리 지퍼를 올릴 수 없다며 꼬리뼈가 탈골되고 요추 3, 4번이 휘어질 때까지 최후의 한 방울을 짜내는 후발자의 심리는 남자라는 생물체가 가진 본성적 승부사 기질이다.
친구가 가장 미울 때는 단체 미팅 술자리에서 잠깐 화장실을 다녀왔더니 이런 망발을 날릴 때이다. "아따, 그 자식 빨리도 다녀온다. 그렇게 짧아서야 원." 이후 그 남자는 방광이 터질 때까지 오줌을 참으며 친구가 두 번 갈 때 한번 가는 것에 목숨을 건다. 조금 더 소심한 남자라면 그렇게 참다 간 화장실에서 볼일을 다 보고서도 몇 분 동안은 더 화장실에 머무르며 외부를 향해 자기 정력을 과장한다. 파트너의 머릿속에 째깍째깍 자기의 남성적 능력을 계산하는 시계가 들어있다는 망상에서 허우적대며.
이렇게 오줌 하나를 두고 수십 년을 좌절과 환희의 롤러코스터를 탔던 남자였으니 아침이면 쫙쫙 뻗는 요압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뒤통수에다 청결과 위생을 외쳐봐야 쇠귀에 경 읽기다. 고로 이제부터 시행할 처방적 화술은 이거다. "어머머머, 나는 자기가 일을 볼 때면 변기가 깨질까 봐 겁나 죽겠어. 이러다 우리 집 살림이 남아나겠어? 자긴 앉아서 일봐야 해. 그러게 누가 변강쇠로 태어나래?".
아울러 이 날선 대립각 속에서 여성이 끝내 남성을 조신하게 변기에 앉히고 싶다면 손자의 그 유명한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내 남편이 달라졌어요' 병법을 알아둘 필요도 있겠다. 그것은 바로 소변을 바라보는 남성의 문화심리적 자세를 역지사지하는 것이다. 말이 어렵다. 쉽게 가자.
남자 아이들은 친구들과 오줌 놀이를 하면서 큰다. 어린 화랑들은 동네 담벼락을 형이상학적 무늬로 도배하며 누가 더 길고 오래 오줌을 누는지를 경합한다. 이 놀이는 사춘기 소년들에게 성적 판타지로 계승되어 승자에게 우월한 남성이라는 영광의 월계관을 씌워 주기도 한다. 성인이 돼서도 '오줌발은 정력!'이라는 믿음은 더 공고하게 굳혀져 화장실은 단지 배설의 공간이 아닌 자기 힘의 검증장이요, 공공 화장실은 그 힘의 경연장이다. 특히 공공 화장실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규칙은 '선(先) 발사자, 선(先) 퇴장'이다. 먼저 볼일을 보고 있던 옆 사람보다 빨리 지퍼를 올릴 수 없다며 꼬리뼈가 탈골되고 요추 3, 4번이 휘어질 때까지 최후의 한 방울을 짜내는 후발자의 심리는 남자라는 생물체가 가진 본성적 승부사 기질이다.
친구가 가장 미울 때는 단체 미팅 술자리에서 잠깐 화장실을 다녀왔더니 이런 망발을 날릴 때이다. "아따, 그 자식 빨리도 다녀온다. 그렇게 짧아서야 원." 이후 그 남자는 방광이 터질 때까지 오줌을 참으며 친구가 두 번 갈 때 한번 가는 것에 목숨을 건다. 조금 더 소심한 남자라면 그렇게 참다 간 화장실에서 볼일을 다 보고서도 몇 분 동안은 더 화장실에 머무르며 외부를 향해 자기 정력을 과장한다. 파트너의 머릿속에 째깍째깍 자기의 남성적 능력을 계산하는 시계가 들어있다는 망상에서 허우적대며.
이렇게 오줌 하나를 두고 수십 년을 좌절과 환희의 롤러코스터를 탔던 남자였으니 아침이면 쫙쫙 뻗는 요압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뒤통수에다 청결과 위생을 외쳐봐야 쇠귀에 경 읽기다. 고로 이제부터 시행할 처방적 화술은 이거다. "어머머머, 나는 자기가 일을 볼 때면 변기가 깨질까 봐 겁나 죽겠어. 이러다 우리 집 살림이 남아나겠어? 자긴 앉아서 일봐야 해. 그러게 누가 변강쇠로 태어나래?".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