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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 치료와 침술의 大家 손수명(동진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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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따라 바뀌는 현대병 치료법도 모두 原典에 있다”
한방 名醫·名家를 찾아서 - 난치병 치료와 침술의 大家 손수명(동진한의원 원장)
김일곤 월간중앙 기자(papak@joongang.co.kr)
醫業 외길 40년을 걸어온 손수명 박사. 암병을 비롯해 당뇨·퇴행성 관절염·중풍 등 난치병 치료로 유명한 그의 진료실은 연일 몰려드는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인 병을 다스리며 한평생 仁術을 펼쳐온 손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서울 동대문 근처 창신동 초입에 있는 동진한의원의 하루는 새벽 2시부터 시작된다. 인근 패션상가들이 불을 환하게 밝히고 멋쟁이들을 유혹하는 그 시간에 문을 열고 진료를 시작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한의원 손수명(62) 원장의 진료를 먼저 받으려는 환자들이 그 시간에 나와 문을 열고 순서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해가 뜨고 아침 진료시간이 되면 꽤 널찍한 대기실은 금방 환자들로 꽉 차버린다. 20~30명씩 기다리는 통에 처음 와본 사람은 ‘약속시간이 다 됐다’며 진료를 포기하고 나가는 모습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우리 집에는 10년, 20년 다닌 단골손님들이 많아요. 멀리 인천에서 오시는 할머니도 한분 계시고…. 그러다 보니 손님들끼리도 친해져 나중에는 친구처럼 지내더군요. 그런 분들 몇몇이 새벽부터 나와 줄서기(?)를 하는 바람에 한의원 문을 그냥 열어 놓았죠. 매일같이 만나는데도 무슨 이야깃거리가 그리 많은지…. 아마 새벽 4시쯤 오면 순서가 10번쯤 될 거예요.”
손원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한밤중에도 한의원 문을 열어놓을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설명했다. 이런 환자, 저런 단골 이야기를 전해 주는 그의 목소리와 말투에는 40년간 환자를 돌봐온 의사의 자부심이 묻어 있다. 그는 침술의 대가(大家)로, 특히 각종 난치병을 잘 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터뷰도 병(病)의 변천사에서부터 풀리기 시작했다.
“지난 40년간 의업을 해오면서 느끼는 것인데 시대마다 병(病)이 다르다는 겁니다. 개업 당시(1963년)에는 중풍이 대유행이었고 소아마비가 유행한 적도 있었죠. 요즘에는 관절염 환자가 아주 많이 늘었어요. 퇴행성 관절염을 비롯해 골다공증·디스크 등 관절과 관련된 질환들이죠. 신비로운 것은, 한방은 수천년 된 의술 아니오? 그런데 이런 현대병에도 치료법을 마련해 놓고 있다는 말이거든. 특히 관절염에는 한약이 잘 듣는 편이죠.”
손원장에게 다니는 인천의 단골 할머니는 올해 여든을 넘겼다. 6년 전부터 매일같이 다니다시피 하는데 팔다리는 말할 것도 없고 목·허리·무릎 등 안아픈 데가 없다고 호소하는 환자였다. 침술로만 치료해서는 증상이 약간 호전될 뿐이어서 차도가 지지부진한 편이었다고. 그러던 어느날 인천 할머니가 “한약을 먹어보면 어떨까” 하고 상담해 왔다고 한다.
“나이 여든의 할머니가 혈압도 200이 넘었어요. 그런 몸으로 약을 먹는다고 나을까 싶었지만 지금까지 약을 먹겠다는 말을 안하던 분이라 한번 해보자고 그랬죠. 모두 20재를 작정하고 시작했는데 웬걸, 18재를 다 먹어가도 차도가 없어요. 할머니도 약 먹기에 지쳤는지 “이것만 해보고 안먹겠다”고 그러더군요. 그런데 희안한 것이 19재째 먹기 시작하면서 낫기 시작하더라고. 할머니가 욕심이 나는지 나중에 35재까지 먹었어요. 나도 놀랄 수밖에. 관절염은 치료하기가 아주 어려운 현대병인데도 한약이 잘 듣는다는 것을 알았지. 또 고혈압 같은 성인병에도 한약이 듣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손원장은 한의학이 수천년의 역사를 지닌 의학이지만 시대에 따라 유행처럼 바뀌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경외심이 들었다고 했다.
시대에 따라 병이 달라지는 것처럼 시대가 바뀌면 환자들도 많이 달라진다. 요즘에는 관절염 환자 외에도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어린이 천식 환자, 태열(아토피성 피부염), 신경쇠약 같은 병으로 찾아오는 환자들이 많다.
손원장이 이런 난치병을 잘 본다는 소문이 전국에서 환자들을 모여들게 하는 것. 실제로 그가 학위논문으로 쓴 구안와사(안면신경마비)에 대한 한방적 치료법은 지금도 인용되는 명작이라고 한다.
환자들은 병을 완치시키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닥터쇼핑’을 하는 ‘건강증 환자’들이 많이 늘어난 것도 그 때문이다. 한의사로서 이런 현상을 보노라면 시대에 따라 이런 건강증 환자들의 닥터쇼핑에도 미묘한 변화가 있다.
과거에는 한의원에 다니다 병이 낫지 않으면 병원을 찾아갔다. 그러나 요즘은 이 현상이 역전되어 양방 치료를 받다 낫지 않으면 한의원으로 온다는 것. 한약은 건강보험 적용이 안되기 때문에 약값이 비싸게 먹히는 것도 양방(洋方)을 먼저 찾는 이유 중 하나다.
“환자에게 도움되는 韓·洋方 협진 필요”
“한의사도 처음부터 약을 쓰기는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손원장은 의사로서 안타까운 점이 하나 둘이 아니었던 듯 말문이 터지자 한방과 양방의 협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모든 병이 양방으로 다 치료되지는 않습니다. 현대의학은 병을 원인부터 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 근치(根治)시키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한방은 환자를 보고 증상부터 치료해 나가면서 병의 근본까지 다스리게 되죠. 그런데 한방으로 환자를 대할 때는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가령 암환자의 경우 초기에 오면 솔직히 한약을 권하지 못합니다. ‘암은 수술로 치료한다’는 양방적 치료법이 공식적으로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죠. “한약을 복용하느라 수술 시기를 놓쳤다”는 말을 듣게 되면 곧바로 책임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병원에서 하다하다 안돼 포기한 환자들만 보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환자 중 한방치료로 효과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양방치료가 아니라 처음부터 한방을 했더라도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암 말고도 당뇨·고혈압·동맥경화 같은 병에도 마찬가지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양방과 한방이 협진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중풍·당뇨·고혈압·디스크 등 성인병에는 더더욱 필요합니다. 고혈압은 현대의학으로도 그 원인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는 양방과 한방을 같이 쓰라고 환자에게 권합니다. 양방 처치로 우선 급한 혈압을 낮추고 한방으로는 병의 뿌리를 다스리는 식으로 말이죠. 경험 많은 한의사라면 병원 약을 환자에게 권합니다. 환자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한방과 양방이 벽을 쌓고 있을 이유가 없어요. 환자들은 이미 이쪽 저쪽 다 찾아다니며 병을 낫게 해달라고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최근 손원장은 ‘임상류곡’(臨床流曲)이라는 한방 건강에세이집을 냈다. 이 책에서 그는 그동안 경험한 바를 남김없이 발표하여 동료·후배 한의사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동양의학은 수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고도로 철학적이어서 그대로 현실에 적용하기가 어렵다. 실제 임상에서는 자신이 경험한 바를 토대로 처음부터 재정립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한의학에서는 ‘경험’을 으뜸으로 꼽는다. ‘평생공부’는 한의사의 숙명이다.
호호백발 노인이 된 한의사라도 실력이 뛰어난 젊은 명의의 강의에 참석해 배우는 것이 한의사의 세계인 것이다. 따라서 선생과 제자 사이에도 처방이 다를 수 있으며 부자지간에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손원장은 이 책에서 암병을 비롯해 당뇨·퇴행성 관절염·중풍 등 난치병을 완치시킨 경험을 실제 치료처방을 중심으로 상세하게 공개하고 있다. 그의 뛰어난 침술이 효과를 발휘한 사례도 곳곳에 나온다. 책 속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동양의학에서는 경험을 으뜸으로 꼽는다. 그런데도 실제로 이론서는 많으나 ‘경험’을 다룬 책은 드물다. 이런 것에 초점을 두어 자서전을 쓰듯 나의 경험한 바를 남김없이 발표하여 배우는 학생이나 실제 임상가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아무리 좋은 처방이라 할지라도 필자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제외하고 필자가 써서 효과를 보고 경험한 것만 쓰기로 한다.’
“경험이 쌓일수록 병과 사람에 대해 느끼는 것이 달라집니다. 옛날 선배님들이 한의사 10년과 20년, 30년이 다 다르다고 했는데 그 충고를 지금 새삼 느낍니다. 우리집(한의원)을 거쳐간 부원장만 해도 지금까지 20명은 족히 될 것입니다. 한의대를 갓 졸업하고 부임한 사람도 있었는데 아들 같고 제자 같은 사람들이죠. 젊은 사람들의 열의는 정말 대단합니다. 환자를 진찰하면서 여러 가지로 애를 쓰는데 가끔 지켜보면 흐뭇한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내 방으로 건너와 의논하는데 그게 아냐. 나는 잠깐 환자의 얼굴과 거동만 봤지만 척하니 병을 알 수 있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한방은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한 것이죠. 그래서 내 경험을 전수하기 위해 책을 쓴 것이고요.”
父子가 함께 진료
한의원에 도착해 원장실로 들어오기 전 잠깐 환자 대기실을 둘러볼 시간이 있었다. 각종 위촉장, 감사장이 가득한 진열장에서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고급스러운 문양으로 장식된 감사장이었는데 그 내용이 특이했다. 결혼후 10년간 자식이 없었는데 손원장의 치료를 받고 득남(得男)했다는 부산의 어떤 사람이 만들어준 감사장이었다. 1969년의 일이었으니 지금쯤 그 아이도 중년이 되었을 터다. 손원장의 경륜을 미루어 짐작케 하는 감사장이었다.
부원장 손승현(32)씨는 손원장의 아들이다. 부자지간에 같은 한의원에서 함께 진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원장실로 청해 자리를 함께했다. 잠시 흐뭇하게 지켜보던 손원장이 ‘부원장’을 소개했다.
“부원장은 어려서부터 한의원 일을 봐왔기 때문에 스스로 알아서 배우는 편이지요. 몸에 뱄으니까. 굳이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내 비방을 다 배운 것 같아(웃음). 처음에 ‘젊은 사람’이 한의사의 업을 이어받아 하겠다고 의욕을 보여 무척 기뻤습니다. 그리고 내가 요즘 현대병에 열중하고 있는데 이 사람은 중풍이나 디스크 같은 병을 잘 봅니다. 나이로 보면 이 사람이 현대병을 하고 내가 옛날 병을 해야 하는데 뒤바뀐 것 같기는 하지만….”
손원장 연배의 고참 한의사들 사이에서는 ‘젊은 사람들’(손원장은 아들 세대를 지칭할 때 꼭 이 표현을 썼다)이 의업을 잇지 않겠다고 해서 더러 분란이 있기도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손원장은 더욱 보람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열성을 보이고, 나이 많은 나는 또 그럭저럭 실력있다고 소문이 나 있으니 우리집에 찾아오는 환자들도 다 자기들 나름대로 의사를 판단해 택하는 것 같아요. 요즘 들어 부쩍 나 말고 부원장 찾는 사람이 많더라니까.”
“아버지와 함께 진료하는 것이 제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아버지보다 더 잘해야 된다는 부담감도 있죠. 환자들이 아버지만 찾으면 스트레스(?)받거든요. 공부하는 자세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은 미래지향적이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들어 한의학의 과학화, 현대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부원장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한의학의 과학화, 한방의 현대화를 추구한다 하더라도 근본을 해쳐서는 안됩니다. 한의학이라는 전통적인 틀을 중심에 두고 모든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죠. 지금 우리 한의원에도 컴퓨터를 들여놓기는 했지만 이것은 처방전 발급 등 한의원 운영시스템에 국한된 것입니다. 한방은 ‘경험’이 중요한 의학입니다. 다양한 진단 기기가 나와 있고 실제로 진료에 이용하는 분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사람의 ‘손’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손으로 직접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한의학의 철학적 원리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손원장에게는 두가지 원대한 계획이 있다. 그 하나는 현재의 동진한의원을 한방병원(종합병원)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노인환자들을 위한 한방요양병원을 건립하는 것이다.
그는 현재 경기도 양평군 수종면에 30만평 규모의 사슴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직접 사슴을 사육해 거둬들인 녹용과 야산에 재배한 약초를 한의원에서 약재로 사용해온 것. 앞으로 본격적인 노령화 시대를 맞아 노인보건복지시설이 절실하다는 생각에서 이곳에 병상 100개 규모의 요양병원을 건립할 계획이다. 주로 치매 등 노인성 질환으로 투병하는 노인들을 돌보는 시설이다.
양평에 한방요양병원 설립 계획
“요양병원은 우리 사회의 노령화 추세에 적합한 개념의 시설로 빠른 시일 내에 준비를 갖춰야 합니다. 요즘 집안에서 노인을 돌보는 것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큰 부담이지만 당사자인 노인들에게도 고역입니다. 게다가 몸이라도 아프면 서로 불편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노인성 질환에 뛰어난 한의학의 강점을 살려 요양시설을 갖춘 한방병원으로 통합한다는 구상이지요. 요즘 실버타운이 유행하고 있는데 그것은 건강한 노인들에게 필요한 시설이고, 병들고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는 요양병원이 가장 적합한 시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이런 대책을 세우기에는 아직 벅찬 것 같습니다. 민간부문에서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시설을 확보해 나가야 합니다.”
손원장은 요즘 환경오염과 식생활의 변화로 현대병이 급증했다고 보고 이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한방차를 연구하고 있다. 특히 운동부족으로 인한 비만은 장기(臟器)에 부담을 주고 근골격계에도 무리를 초래한다. 마치 손수레에 실을 짐을 어깨 위에 떠메고 가는 격이다. 이 짐을 덜어주는 방법이 곧 치료법이다.
“차는 현대인들이 즐기는 기호품입니다. 자기 몸에 필요한 차를 마시면 건강도 지키고 기호도 만족시킬 수 있죠. 옛 선인들도 차를 마시면 마음이 편해지고 기운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우리 전통차는 이미 선인들이 효과를 입증해 놓은 것들이므로 잘 살펴 마신다면 값비싼 약을 복용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여생 을 한방차 연구에 정진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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