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BEING!
건강 협박하는 의사와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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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문사 한 선배가 지나가는 필자를 손짓해 불렀습니다. 무슨 일인가 갔더니 “헬스면 보기가 너무 무섭다”는 요지의 말을 했습니다. 가뜩이나 과로와 과음, 과식, 스트레스, 운동부족 때문에 불안해 하고 있는데, 매번 무슨 암이 몇 배 늘었느니, (그렇게 살면) 수명이 몇 년 단축 되느니 하는 식의 겁 주는 기사만 보이니 신문 보기가 두렵고 짜증 난 것 같았습니다. 선배는 “협박보다 대안을 제시하는 헬스면”을 부탁했습니다. 필자 역시 최근 깊이 공감하고 있던, 바로 그 문제였습니다.
건강과 생명에 관한 한, ‘협박’은 실천을 유도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고, 운동 하라고 골 백 번 말해봐야 사람들은 ‘뻔한 공자 말’로 여기고 실천하지 않습니다. 또 금연과 운동 등의 방법과 장점을 나열한 기사는 독자에게 너무 식상해 이목(耳目)을 붙잡아 두기 힘듭니다.
그래서 필자는 거꾸로 갔습니다. 예를 들어, 담배를 피우는 혈관이 얼마나 막히고 헤져 있는지, 어디선가 떨어져 나온 피 딱지가 그 혈관을 막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등을 아주 구체적인 사례와 통계를 들어가며, 때로는 조금 과장해서 ‘협박’하기를 즐겼습니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일단 기사가 ‘팩트(fact)’로 가득 차 ‘읽을 만’해졌고, 실천을 이끌어내는 파워도 훨씬 강해졌습니다. 그 ‘재미’에 빠져 어쩌면 ‘협박’의 강도도 조금씩 높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20년간 대장암이 11배 증가했고, 55세 이상 남성 100명 중 5.2명에게 ‘자신도 모르는’ 전립선암이 있을 것이란 관련 학회 조사 결과가 최근 발표돼 화제가 됐습니다. 국가중앙암등록본부는 이에 대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사 방법 상의 결함으로 통계가 다소 부풀려졌다”고 밝혔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런 사례는 예전에도 종종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목적이 정당하다고 믿었기에 지금껏 문제 삼지 않고 기사를 썼습니다. 결국 ‘과장을 통한 협박’이란 점에서 의사와 필자가 ‘공범(共犯)이었던 셈입니다.
‘협박’을 당하는 쪽 입장을 생각해 봤습니다. 시간이나 근무환경 등 여건이 닿지 않아 아예 엄두를 못 내거나, 결심을 하지만 의지가 약해서 번번이 작심삼일이 되는 사람이 기사를 읽으며 얼마나 두려움과 좌절감을 느꼈을까요? 그랬는데 그 기사가 과장된 것이라면….
협박보다 희망과 대안을 제시하는 헬스 면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충격요법’이 꼭 필요한 경우라도 과학적 사실에 기초해서 ‘협박’보다 ‘자극’으로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임호준 Health 편집장 hjl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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