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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수술 뒤 발기부전 온 H 씨의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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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을 운영하는 45세의 H씨. 직장암 수술 후 인공항문을 만든 남성 환자로 수술 후 2년 동안 주기적으로 통원 검사를 받고 있었다. 그는 매우 점잖은 성격으로 직장암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는지 필자와 대화할 때도 전혀 막힘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H씨로부터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필자는 직업상 환자와의 개인적인 식사를 피하는 편이라 그 날도 감사한 마음만 전하고 정중히 거절했다. 그런데 이후에도 거듭 연락이 왔다. 계속 거절하는 것도 도리에 맞지 않는 것 같아 결국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하는 내내 직장암과 인공항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런데 식사가 끝날 무렵, 한참이나 뜸을 들이던 H씨가 주뼛거리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원장님, 실은 부부생활에 문제가 좀 있습니다만……”2년 동안 정기 상담시간에 성생활에 이상이 없는지 물어도 항상 “별 문제 없다”던 그였기에 매우 의외였다. H씨는 간호사가 함께 있는 경우도 많았고 왠지 진료실에서 대답하기 쑥스러웠다고 했다.
남성의 성기로 가는 신경은 직장 바로 뒤쪽을 지나기 때문에 직장암 수술을 하는 경우엔 성신경 손상이 일어날 소지가 있다. 따라서 의사는 암세포가 신경까지 침범한 경우 외에는 수술 시 신경이 손상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H씨는 신경 손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 사례여서 필자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의아하게 생각하던 차에 그의 말이 이어졌다.
“수술 후 석 달은 조심하느라 일부러 부부관계를 피했습니다. 석 달 후에 포도주도 한 잔 하며 관계를 갖게 됐는데 이상하게 오르가슴은 느껴지는데 사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실패한 이후에는 발기도 되질 않습니다.”
처음 관계 시 문제가 없었던 점으로 보아 성신경 손상은 아닌 듯 했다. 단지 수술 도중 교감신경이 손상돼 생기는 역사정(逆射精) 현상으로 짐작됐다. 역사정 현상은 사정할 때 정액이 밖으로 배출되지 않고 거꾸로 방광 쪽으로 배출되는 부작용이다. 그러나 발기부전은 설명이 되지 않았다. 역사정의 경우도 발기와 성행위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래 대화를 해보니 H씨의 발기부전은 심리적 요인 때문인 것 같았다. 직장암 수술 후 정액이 분출되지 않는 역사정 현상을 경험하고는 수술로 인한 성기능 장애로 인식,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이다. 특히 인공항문이 아내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부부관계 중에 대변이 샐 까봐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원인이 된 것 같았다.
처음엔 2년이 넘도록 한 번도 필자에게 말하지 못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곧 저녁식사를 하자고 여러 차례 연락해 온 이유가 짐작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필자는 그 날 H씨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좀 더 세심한 배려를 했더라면 그렇게 오래 문제를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얼마 후 병원에서 H씨의 교감신경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 교감신경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일시적인 역사정 현상에 놀라 스스로 병을 키운 경우였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처럼 신체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H씨는 이후 만족스러운 성생활이 가능해졌다.
사람들은 성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고 입 밖에 내는 것을 금기시한다. 그러나 성기능 이상은 발생 즉시 전문의와 상담해야 한다. 질병으로 인한 경우든 심리적인 이유든 빨리 확인하는 것이 빨리 회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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