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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김무관 LG 타격코치
작성자 : 박홍규
작성일 : 2012.01.07 13:46
조회수 : 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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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 그들을 말한다] LG 김무관 타격코치 “당신이 뭘 가르쳐?”…그 말이 나를 키웠다
스포츠동아 | 입력 2012.01.07 07:11 | 수정 2012.01.07 07:15 | 네티즌 의견 보기
LG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B1%E8%B9%AB%B0%FC&nil_profile=newskwd&nil_id=v20120107071106353" target=new>김무관 코치. 사진제공|LG 트윈스 |
"스타 출신도 아닌데 누가 따르겠나?"
햇병아리 코치시절 들은 비수같은 독설
야구서적·ML비디오 독학 타격이론 정립
롯데서 신인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C0%CC%B4%EB%C8%A3&nil_profile=newskwd&nil_id=v20120107071106353" target=new>이대호 만나 최고타자로 키워
작년 시즌후 LG행…"새로운 도전 즐긴다"
2010∼2011년, 2년 연속 팀타율 1위를 기록하는 등 최근 수년에 걸쳐 8개 구단 최고의 화력을 뽐낸 롯데. 그 뒤에는 김무관(57) 타격코치의 힘이 절대적이었다는 게 구단 안팎의 공통된 평가다. 2001년 포수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C3%D6%B1%E2%B9%AE&nil_profile=newskwd&nil_id=v20120107071106353" target=new>최기문을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BD%BA%C0%A7%C4%A1%C8%F7%C5%CD&nil_profile=newskwd&nil_id=v20120107071106353" target=new>스위치히터로 변신시켜 데뷔 첫 3할 타자로 만든 김 코치는 신인 때 지도했던 이대호를 2006년에 다시 만나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시켰다. 지난 시즌 종료 후 그가 6년 동안 몸담았던 롯데를 떠나 LG 유니폼을 입자, 선수단은 물론이고 프런트에서도 아쉬움이 터져 나왔다. 2012년 새로운 줄무니 유니폼을 입고 LG의 공격력 키우기에 나선 김 코치의 현역 시절을 돌아보고 지도자로서 갖고 있는 소신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 '원조 유틸리티맨', 그러나 초라했던 프로 생활
0.636이란 고타율로 1978년 제28회 백호기 타격상을 받고 이듬해 같은 대회에서 수위타자에 오르는 등 인천고∼건국대∼한일은행(1976∼1981년) 시절, 그는 한 때 각광받는 타격의 달인이었다. "노력은 많이 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소질은 있었던 것 같다"는 게 그의 솔직한 기억.
그러나 프로 생활은 그다지 빼어나지 않았다. 1982년 원년 멤버로 삼미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뛰어든 그는 1985년까지 4년간 총 121경기에 출장, 통산 타율 0.199에 1홈런 20타점을 마크했다. 요즘 선수들에게 서른은 한창인 나이지만, 당시만해도 '환갑'이나 같은 나이였다. 김 코치 동년배가 그렇듯 '때를 잘못 만나' 프로에서 꽃을 피우지 못했다. "허리도, 무릎도 그렇고 여기 저기 아픈 데가 많았다. 젊은 후배들 쫓아가기 힘들었다"고 되돌아본 김 코치는 "원래 실업 때까지 주로 3루를 보면서 가끔 2루를 맡기도 했는데 프로에 와서는 포수와 투수 빼곤 모든 수비 포지션을 다 봤다"고 설명했다. 프로 초창기만 해도 선수층이 두껍지 않았고, 특히 삼미의 경우 재정이 열악했던 탓에 여러 포지션을 다 봤다는 설명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요즘 흔히 말하는
유틸리티맨의 원조인 셈.
김 코치는 자신의 가장 큰 스승으로 인천야구의 대부이자 '아시아의 철인'으로 불렸던 고 박현식 선생(2005년 작고)을 꼽았다. "기술적인 면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정말 큰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다.
● '당신 말을 누가 듣겠나', 비수처럼 꽂힌 한마디
그가 코치를 시작한 것은 삼미에서 청보로 팀 이름이 바뀐 1986년이었다. 첫해 3루 작전·주루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듬해부터 타격코치로 보직을 바꿨다.
'햇병아리 코치' 시절 그는 한 관계자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마디를 들었고, 뼈아팠던 그 말은 그의 야구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처럼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아닌데, 야구도 못 했던 당신이 코치를 한다고 선수들이 잘 따르겠느냐?" 한 때 나름대로 각광받던 선수였던 그에게 그 말은 비수처럼 꽂혔고, 그는 그 말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계기로 삼았다.
타격에 관한 이렇다할 서적이 없던 그 시절, 김 코치는 전지훈련이나 개인적인 일로 미국이나 일본에 가게 되면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이론서를 구입했다. 귀국하면 전문가에게 자비를 들여 번역을 부탁한 뒤, 우리말로 바뀐 이론서를 붙잡고 밤을 새며 공부했다. 비디오가 도입 됐을 때는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B8%DE%C0%CC%C0%FA%B8%AE%B1%D7&nil_profile=newskwd&nil_id=v20120107071106353" target=new>메이저리그 유명 선수들의 테이프를 구해 반복해서 보고 또 봤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현장을 지도하면서 체계적으로 자신만의 타격 이론을 정립해 나갔다.
팀 타선 재건이란 막중한 임무와 함께 큰 기대를 받으며 LG 유니폼을 입은 김무관 타격코치(왼쪽). 6년간 몸담았던 롯데를 떠나 새 유니폼을 입은 그에게 2012년은 새로운 도전의 시기다. 사진제공|LG 트윈스 |
현대에서 2군 감독(1996∼1997년)을 맡기도 했던 그는 1986년 코치 생활을 시작한 뒤 올해로 27년째를 맞는다. 서른한살부터 코치를 해 현재에 이르렀으니 '장수코치'라고도 할 만하다. 세월이 긴 만큼, 제법 여러 팀을 옮겨 다녔다. 청보∼롯데∼태평양∼현대를 거쳤고, 2006년 롯데에 세 번째 부임한 이후 6년간 부산 생활을 하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적극적으로
영입에 나선 LG의 '모셔오기'에 따라 팀을 옮겼다.
1995년 1년간 스카우트로 활동하기도 했던 김 코치는
2004년부터 2년 동안 프로에서 '쫓겨나', 모교인 인천고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등 야인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돌이켜보면 앞만 보고 달려오던 시간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아마추어 선수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기본기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깨닫는 시간이었다"며 2년간의 외도가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또다른 큰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 강점으로 약점을 커버한다
'타격코치 김무관'의 가치를 논할 때, 가장 큰 논거가 되는 게 바로 이대호다. 이대호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컴퓨터 같은 분"이라며 김 코치를 아버지처럼 따르고 흠모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김 코치는 "이대호를 만난 건 나로선 행운"이라며 "대호는 무엇인가를 가르치면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영리한 선수다. 유연성이나 맞히는 능력을 타고난 것도 있지만, 그것도 충실한
기본기를 바탕삼아 꽃 피울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김 코치가 선수들을 지도하며 제1의 원칙으로 삼는 것은 소통이다. 젊은 선수들과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B0%B3%B1%D7%C4%DC%BC%AD%C6%AE&nil_profile=newskwd&nil_id=v20120107071106353" target=new>개그콘서트'를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것도 그래서다. 김 코치는 "코치와 선수간에도 신뢰는 기본"이라고 했다.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는 기본 생각을 갖고 선수들에게 다가간다. 약점을 지적하기보다는 강점을 극대화시키면서 약점을 커버하는 게 낫다는 지론도 갖고 있다. 아울러 선수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표현대로 '짧은 영어'로 항상 모자 안쪽에 'Watch your tongue(말 조심하자)'라고 써 놓는 것도 그래서다.
● 지도자로서의 꿈과 희망
6년간 정들었던 롯데를 떠나 LG에 새 둥지를 튼 것은 그에게 있어 새로운 도전이다. "LG는 팬들의 큰 사랑을 받는다는 점에서 롯데와 비슷하다"는 그는 "롯데에서 우승을 한번 하지 못하고 온 것이 못내 아쉽다. LG가 좀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데 미력하나마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도전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롯데에서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BE%E7%BD%C2%C8%A3&nil_profile=newskwd&nil_id=v20120107071106353" target=new>양승호 감독과 함께 할 때도 그랬지만, LG로 옮긴 올해도 그는 후배인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B1%E8%B1%E2%C5%C2&nil_profile=newskwd&nil_id=v20120107071106353" target=new>김기태(43) 감독을 '모신다'. "조직이니까 당연히 코치로서 감독을 잘 모셔야 한다"는 그는 "경험 많은 늙은 말이 가끔 할 일이 있듯, 감독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 주는 것도 코치의 할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양 감독이 김 코치의 LG 이적에 대해 아쉬워한 것도 김 코치의 이런 점 때문이다.
야구 인생을 놓고 볼 때 그는 자신의 현 위치를 "3루를 돌아 홈플레이트로 가는 중"이라고 표현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마지막까지 운동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땀을 흘릴 수 있으면 그게 보람이 될 것"이라고 했다. '3루를 돌아 홈플레이트로 뛰어가는 중'이라는 표현에서 김 코치가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김 코치 말대로 그의 야구인생이 3루를 지나쳤다면, 홈런을 친 타자가 세리머니를 하며 천천히 홈으로 달려가듯 그의 야구인생도 앞으로 그런 길을 걸을 것이다.
● 김무관 코치?
▲ 생년월일 =
1954년 11월 29일
▲ 출신교 = 인천고∼건국대
▲ 키·몸무게 = 173cm·82kg(우투우타)
▲ 프로 경력
- 1982년 삼미 입단
- 1985년 은퇴
- 1986년 청보 코치
- 1990년∼1991년 롯데 코치
- 1992∼1994년 태평양 코치
- 1995년 태평양 스카우트
- 1996∼1999년 현대 코치
- 2000∼2003년·2006∼2011년 롯데 코치
- 2012년 LG 코치
▲ 프로 통산 성적 = 121경기 326타수 65안타(타율 0.199) 1홈런 20타점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트위터 @kimdoh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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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달님의 댓글
올해 인천고야구도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