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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거르고 이재원…9년 만에 껍질 벗나(펌)
작성자 : 봉원대
작성일 : 2014.04.25 15:28
조회수 : 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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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원의 불방망이는 결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 SK 와이번스 |
‘좌완 스페셜리스트’ 이재원(27·SK)이 9년 만에 유망주 껍질을 벗고 훨훨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이재원은 24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2014 한국 야구르트 세븐 프로야구’ NC와의 홈경기서 3타수 3안타 1홈런으로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비록 팀은 패했지만 SK 팬들은 비로소 잠재력을 터뜨린 이재원의 성장에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사실 SK 팬들에게 이재원(27)이라는 이름 석 자는 그야말로 ‘애증’이라 할 수 있다.
2006년 신인드래프트서 당당히 1차 지명을 받아 큰 기대를 모았지만 더딘 성장으로 인해 존재감이 미약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재원은 SK가 류현진(LA 다저스)을 제쳐두고 고른 옥석이었다. 그 유명한 ‘류거이’(류현진 거르고 이재원) 스토리의 탄생이다.
물론 류현진 대신 이재원을 선택한 SK도 사정이 있었다. 당시 SK는 1차 지명 선수를 세 선수로 압축했다. 인천고의 배터리 이재원과 김성훈, 그리고 동산고 류현진이었다.
류현진은 동산고 3학년이던 2005년, 청룡기에서 강호 성남고를 상대로 17탈삼진의 완봉쇼를 펼치며 스카우트의 눈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팔꿈치 수술 경력과 이듬해 안산공고의 특급 좌완 김광현을 지명할 수 있다는 이유로 1차 지명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반면, 이재원은 2004년 대통령배 대회에서 최다안타상을 수상할 정도로 타격능력을 갖춘 대형 포수 유망주였다. 여기에 박경완의 대를 이을 정상호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채 군 입대를 해버려 SK는 백업 포수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후 지난 9년간 두 선수의 행보는 알려진 그대로다. 류현진은 한국 야구 무대를 초토화 시킨 뒤 메이저리그에 진출했고, 이재원은 주전을 장담할 수 없는 대타요원에 머물고 말았다.
사실 이재원의 더딘 성장은 SK 팀 사정이라는 특수성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더욱 아쉽기만 하다. 데뷔 시즌이었던 2006년, 당시 조범현 감독은 이재원을 좌투수 상대 대타요원으로 쓰며 박경완의 백업으로도 종종 포수로 출전시켰다.
이듬해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뒤에도 이재원은 전문 대타의 굴레를 벗지 못했다. 급기야 박경완은 노쇠화는커녕 건재함을 과시했고, 군에서 제대한 정상호가 몰라볼 정도로 성장해 2옵션으로 자리 잡았다. 실전 경험이 가장 중요한 포수라는 포지션임에도 불구하고 이재원이 마스크를 쓸 일은 별로 없었다.
상무에 입대한 뒤 주전 자리를 보장받은 이재원은 타격 기술이 일취월장했다. 하지만 수비 부분에 있어서는 여전히 물음표였고, 제대 후 팀에 복귀하자 FA로 입단한 조인성까지 버티고 있었다. 따라서 포수로서의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망이는 여전히 수준급이었다. 2012년 9월, 제대하자마자 출전한 KIA전에서 4-5로 뒤지던 7회 터뜨린 역전 만루홈런은 그의 프로 경력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다.
비록 포수가 아닌 지명타자 출전이지만 이재원의 방망이는 올 시즌 매섭게 돌아가고 있다. 올 시즌 타율 0.511을 기록, 앞으로 8타석만 더 채우면 삼성 박석민(0.385)을 제치고 이 부문 1위로 올라설 수 있다. 무엇보다 장타율이 0.830에 달해 4번 타자로 기용되는 게 이상하지 않다.
▲ 2000년대 SK 1차 지명 선수들. ⓒ 데일리안 스포츠 |
한편, 2001년 창단한 SK는 지금까지 특급 유망주들에게 거액의 계약금을 안겼고, 2억원 이상 받은 1차 지명 선수들은 모두 주전급 이상으로 성장해 기대를 충족시켰다.
2001년 정상호(4억 5000만원)를 시작으로 2003년 송은범(현 KIA, 4억원), 2005년 최정(3억원), 2007년 김광현(5억원)이 그들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한 선수 이재원(2억 5000만원)이 껍질을 깨고 나오려 하고 있다.[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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