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중계석
"외면당한 인천체육사 체계적 정립 필요"(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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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 8. 3)
"외면당한 인천체육사 체계적 정립 필요"
인터뷰 / 조준호 체육학 박사
제물포서 플라잉 피쉬호 수병들 축구·인천영어야학교 학생 야구 최초시행 기록 밝혀
"인천은 대한민국의 '체육 수도'입니다. 축구와 야구 등 수많은 운동 종목이 인천을 통해 들어왔고 인천에서 성장·발전해 퍼져나갔으니까요."
"그런 만큼 인천체육은 대한민국 체육 역사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죠. 하지만 그 역할과 의미는 지금까지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인천체육사는 오랫동안 외면당했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난해 펴 낸 '인천체육사 연구'라는 저서를 통해 '최초'로 인천체육의 발자취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조준호(43·사진) 체육학 박사는 "인천은 대한민국 체육의 뿌리와도 같다.
우리나라 체육 역사는 결코 인천을 빼고 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선 "인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체육을 수용한 최초의 수용지로 그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고 주장했다.
조 박사는 이 책에서 현재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축구와 야구가 인천에서 처음 행해졌다는 것을 밝혀냈다.
"영국 군한 '플라잉 피쉬'호의 수병들이 임오군란 직후인 1882년 8월 인천 제물포에 상륙한 뒤 무료함을 달래고자 인천항에서 축구를 했는데 이 경기가 정식 축구시합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벌어진 최초의 축구시합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들은 이후 축구공을 인천에 놓고 돌아갔다. 이런 내용은 대한축구협회가 발간한 '한국축구 100년사'에도 기록돼 있다."
"또 야구는 '인고백년사'에 따르면 전신인 인천영어야학교 1학년이었던 후지야마후지사와 군의 1899년 2월 3일자 일기에 '4시경부터 베이스볼이라는 서양 공치기를 시작하고 5시 경에 돌아와서 목욕탕에 갔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는 우리나라 야구 전래시점에 관한 정설로 알려진 1905년부터 약 6년을 앞서는 놀라운 기록이다."
두번째로 조 박사는 인천은 전국 최초의 공설운동장인 '웃터골'(현 제물포고 부지)이 존재했던 도시임을 지적했다.
"웃터골공설운동장은 인천체육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당시 웃터골은 외국에서 유행했던 체육종목들이 개항과 함께 인천을 통해 처음으로 국내에 들어와 소개된 곳이었다."
아울러 인천은 최초의 세계대회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계대회 금메달을 따낸 장창선(73·1966년 세계레슬링선수권)은 인천에서 태어나 동산중을 나와 동산고를 다니다 서울 인창고로 레슬링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이처럼 인천은 우리나라 체육에 있어 인큐베이터와 같은 역할을 했던 곳"이라는 게 조 박사의 생각이지만 "여전히 인천체육은 그 위상과 역할, 의미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솔직한 진단이다.
"인천시사에 나온 인천체육 관련된 기록 일부는 오류가 있다. 웃터골 재확장 시기나 도산정으로의 이동 시기 등은 사실과 다르다. 이런 오류는 아무래도 체육사가 아닌 일반 역사학자 및 향토사학자 등이 체육분야까지 다루다 보니 생긴 현상일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감히 대한민국의 체육 수도라고 자부할 수 있는 역사적 역할과 의미를 지닌 인천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인천시 차원에서 인천체육사를 체계적으로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이종만 기자 malema@incheonilbo.com
2015년 08월 03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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