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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축구·야구 인천이 최초"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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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6. 1.13)
"우리나라 축구·야구 인천이 최초"
인천시 '가치재창조' 정책 맞춰 관련자료 공개
▲ 경인기차통학생친목회 회원을 주축으로 결성된 한용단 야구팀. 한용단은 1920년대 인천에서 활동했다. 1924년 한용단과 일본인 야구팀 미신팀과의 경기 도중 편파 판정으로 한용단이 패하자 관중들이 충돌했고, 이후 2년간 인천에서 야구 금지령이 내려진 사건이 있었다. /사진제공=인천시
강화학당축구 정식보급 앞서 1901년 활동
야구, '선교사 전파' 이전인 1899년에 경기
인천시가 우리나라 축구와 야구가 인천에서 시작됐다는 내용을 담은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시는 앞으로 가치 재창조 정책에 따라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을 차례대로 공개할 예정이다.
시는 우리나라 첫 축구경기가 1882년(고종 19년) 제물포항에서 열렸다고 12일 밝혔다. 당시 영국 군함 플라잉 피쉬(Flying Fish)호에 소속된 수병들은 인천에 잠시 상륙해 축구 시합을 벌였다. 당시 수병들은 오랜 항해의 피로를 풀기 위해 부둣가에서 공을 찼지만, 관가의 허락 없이 상륙했다가 우리 군에 쫓겨 배로 돌아갔다. 이때 버려진 공을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 시작하면서 축구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시는 1901년 활동했던 강화학당 축구팀이 첫 근대 축구팀이라고 밝혔다. 당시 시드니 J. 파커는 영국 성공회 발행 잡지 '모닝 컴(Morning Calm)' 편집자에게 편지를 보내 "강화학당 축구팀이 G.A 브라이들 목사에게 훈련받았으며 선수 기량이 좋다"고 전했다. 이는 근대 축구가 정식으로 보급됐다고 알려진 1904년보다 3년 앞선 기록이다.
야구도 인천에서 가장 먼저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통설로는 한국 야구의 기원으로 1904년을 지목한다. 당시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Philip. L. Gilet)가 야구 장비를 들여와 황성기독청년회(YMCA) 회원에게 타구(打球) 또는 격구(擊球)라는 이름으로 야구를 가르치기 시작한 때다.
하지만 시는 인천영어야학회(인천고등학교)에 재학한 일본인 후지야마 후지후사가 1899년 2월3일 작성한 일기를 근거로 이미 야구경기가 인천에서 벌어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그는 "베이스볼이란 서양공치기를 시작하고 5시경에 돌아와서 목욕탕에 갔다"고 남겼다. 선교사가 야구를 가르치기 이전부터 인천에서 야구 경기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시는 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인천이 한국 야구의 시발지라고 강조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인기스포츠인 축구와 야구가 인천에서 시작됐으며 이를 이해하고 경기를 즐기는 것도 또 다른 흥밋거리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진영 기자 erhist@incheonilbo.com
2016년 01월 13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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