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중계석
한화 윤대경(112회)의 8번째 가을(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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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경향신문(20.10. 4)
프로 8년차에 첫 1군 무대 ‘결실’…‘저 형도 하는데’ 희망 주고파
한화 윤대경의 8번째 가을
2018년 전역 앞두고 삼성서 방출
일본 독립리그 트라이아웃 도전
“KBO 복귀 꿈꾸던 마지막 1년”
굳건한 멘털로 평균자책 1.49
가을은 야구에서도 ‘결실’의 계절이다. 한 해의 노력이 기록으로 정리되고, 그에 걸맞은 각종 타이틀도 따라붙는다.
가을은 ‘상실’의 계절이 되기도 한다. 선수들이 대거 방출된다.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10 대 1이 넘는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는 선수들이 여럿 나온다. 사실 가을이 아픔의 계절로 남는 선수들이 더 많다.
한화 투수 윤대경(26·사진)도 지난 7년 동안 가을이 싫었다. 2013년 인천고 출신으로 신인 2차 7라운드 65순위로 삼성에 입단해 프로의 높은 문턱을 넘었지만 1군 무대는 남의 이야기였다. 매년 생존을 걱정하며 가을을 보냈다. 군에 입대해 맞은 6번째 가을에는 방출 통보를 받았다. 야구 선수로, 또 인생의 기로에 섰다.
윤대경은 올해 전혀 다른 가을을 보내고 있다. 프로 데뷔 8년차인 올해 1군 무대도 밟고 유의미한 성적도 냈다. 3일 현재 45경기에 나와 4승 5홀드 평균자책 1.49를 기록 중이다. 올 시즌 팀 내 가장 낮은 수치다.
윤대경은 올해 최원호 감독대행이 발굴한 원석 중 하나다. 140㎞ 중반대 빠른 공을 던지며 제구도 좋다. 직구와 슬라이더 투피치 스타일이었지만 지난해부터 장착한 커브와 체인지업이 새롭게 결정구로 정착하면서 무기도 다채로워졌다. 무엇보다 오랜 좌절의 터널을 빠져나온 굳건한 멘털이 강점이다.
윤대경은 “인천고 2학년 때까지는 투수였다. 하지만 프로 지명을 받기에 몸이 왜소해 3학년 때 유격수로 많이 뛰었다. 프로 입단도 내야수로 했지만 타격이 좀처럼 늘지 않았다. 당시 양일환 코치(현 KIA)님이 투수를 권유하셔서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1군 등판 기회는 여전히 없었다. 2017년 6월 현역으로 입대했다. 2018년 11월 방출 통보가 왔다. 전역을 3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윤대경은 “너무 막막했다. 야구를 놓고 싶지 않았다. 현역으로 입대하다 보니 당장 팀으로 가더라도 적응 시간이 필요한데 소속팀까지 없어진 상황을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지인을 통해 일본 독립리그를 추천받았고 트라이아웃에 도전하기로 했다. 한 시즌을 뛰면서 몸을 만든 다음 다시 KBO 리그에 돌아오자는 생각이었다. 정말 나에게는 마지막 1년이었다”고 말했다.
윤대경이 지난해 일본 독립리그에서 팀 동료와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윤대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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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난해 2월 전역을 하자마자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니가타 알비렉스 유니폼을 입었다. 팀에는 통역도 없었다. 한국인은 윤대경뿐이었다.
훈련을 갈 때마다 번역기로 일본인 동료들에게 사정을 설명해 차를 얻어 탔다. 낯설고 물선 일본에서의 생활은 외로웠다. 하지만 그는 낙심하지 않았다. 몸을 열심히 만들면서 한국에 자신을 홍보했다.
윤대경은 “팀에서는 매번 내 투구를 영상으로 찍어줬고 구속 등 기록지도 공유해줬다. 이 데이터를 끊임없이 한국에 있는 아는 분들에게 보냈다. 그러던 와중에 한화 김남형 코치님이 좋게 보셨던 모양이다. 한화 스카우트팀이 5월 일본으로 건너왔다. 결국 7월 입단하게 됐다”고 말했다.
절체절명의 기회, 생존을 위한 무기가 필요했다. 송진우 코치에게 장기였던 서클 체인지업을 전수받았고, 정민태 코치에게는 포크볼을 배웠다. 김해님 코치는 커브를 예리하게 다듬어줬다. 그 무기는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윤대경은 “긴 시간을 믿어주셨던 가족 특히 두 누나에게 감사한다. 얼마 전 1군 경기수당을 받고 부모님께 작게나마 용돈도 드렸는데 1군 선수는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기뻤다. 인천에 계시는 부모님은 이제 매일 내가 나오지 않을까 TV를 켜고 기다리고 계신다”며 웃었다.
이 웃음을 만들기까지 걸렸던 시간과 노력은 그 자신밖에 알 수 없다. 그는 이 시련이 본인에게만 오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는 “드래프트에서 프로 지명을 못 받은 친구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방황하고 있을 테고, 2군에서 고생하는 선수들 그리고 가을 선수단 정리를 두려워하는 선수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저 형도 2군에서 오래 있다가 던지는데 나도 할 수 있겠다’ 하는 희망을 주고 싶다.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밤하늘이 어두울수록 새벽은 가깝다. 지금의 윤대경을 만든 불굴의 시간은 올 시즌 KBO 리그가 만든 또 하나의 감동 스토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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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20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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