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중계석
동대문 운동장을 둘러싼 미묘한 난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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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후 동대문 운동장에 선수협 소속의 선수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동대문 운동장 철거 반대를 위한 촛불 시위를 하기 위함이었다. 동대문을 둘러싼 갈등의 문제는 이미 충분히 야기되어 왔던 문제이며, 야구계의 대응은 너무 늦은 듯한 느낌까지 주고 있다. 그들이 왜 그 자리에 있었을까?
철거와 유지간 첨예한 쟁점의 대립
시초는 서울특별시장 후보였던 오세훈 후보가 강북 부활 프로젝트를 내걸면서부터 였다. 공교롭게도 새로운 구도심 개발계획 중 한군데로 동대문 운동장이 포함되어 있었던게 시발점이 되었다. 이를테면 경제 논리와 스포츠 역사, 노점상의 생존권 문제와의 예고된 정면충돌이었던 셈이다.
이는 오세훈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되고, 취임하면서 더욱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제 오세훈 시장은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동대문 운동장을 철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점은 동대문 야구장을 쓰는 야구인들과 동대문 축구장으로 쫓겨난 노점상 들과의 충분한 협의가 있지 않은 공약이었다. 당연히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실제로 동대문 운동장은 현대화된 건축물 속에서 도시 한복판 어울리지 않는 낙후된 인상을 주다 보니 미관을 해치거나 성격에 안맞는 건물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동대문 운동장을 해체하고 공원을 조성하게 되면 시민들의 복지향상에 크게 이바지 할 것임은 자명하다. 이는 철거쪽에 무조건적인 반대를 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간과해선 안될 사실이 있다. 둘 간의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동대문 운동장의 야구장은 한국 야구 역사의 산실이며 사실상 가장 활용도가 큰 구장이다. 쉽게 다른 곳으로 대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축구장에 있는 상인들은 청계천 복원으로 이미 한번 생업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기에 대번에 그들의 생계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 시민들의 복지가 아무리 중요하단들 그들의 눈에 또 다시 눈물을 맺히게 하는 것이 정당화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미흡한 대안으로 더욱 야기되는 문제들
사실 동대문 운동장은 당장에라도 없앨 기세지만 대안이 매우 미흡한 수준이다. 일단 서울시는 2009년 상반기까지 구의 정수장 부근에 2만석 규모의 야구장을 건립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야구장은 결코 주민들이 환영할 만한 시설이 아니다.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각종 교통체증, 야간에도 환한 라이트 등으로 인한 생활에 미치는 악영향은 주변 주민들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미 구의동 주민들로부터 님비 현상의 시작이 발견되고 있는데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납득이 가고도 남는다.
이렇게 부지선정과 건립부터 삐그덕 거리고 있는데다 당장 동대문 운동장을 대체할 만한 야구장도 딱히 없다는게 큰 문제다. 바꿔 말하면 동대문 운동장이 국내 아마야구에서 담당하고 있는 비중이 그만큼 막대하다는 것이다. 당장 목동 야구장이나 잠실 야구장까지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대회운영에는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며, 2009년에 완공 예정이라지만 예정은 예정일뿐 당장 부지선정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 완성된다는 보장은 더욱 할 수 없는 상태다. 이는 파행운영이 장기간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좀 다른 성격의 주제이긴 하나 노점상 들의 생존권 문제는 대안도 제대로 내놓지 못했을뿐더러 쉽게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이미 청계천 복원으로 동대문으로 쫓겨난 상인들이다. 시의 행정이 다수를 위해서라는 핑계로 약자인 그들을 외면하는 것이 당연시될 경우에 벌어질 문제는 사뭇 심각하다. 나중에 그 약자 중에 자기 자신이 자연스럽게 포함되지 말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동대문 운동장, 왜 중요한가?
앞서 언급했지만 동대문 운동장은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보더라도 활용도가 가장 높은 구장 중 하나이다.
고교야구에서는 4대 메이저 대회인 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를 비롯해 서울 연고팀의 1차 지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춘계리그와 내년을 바라볼 수 있는 추계리그 등 비중이 큰 대회만 6가지나 된다. 시설이 그리 좋지도 않은 구장인 곳에서 예선인 1, 2회전에는 하루에 4경기를 할 정도로 활용이 매우 집약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숱한 연습경기와 함께 중학야구의 중요한 대회 중 하나인 선수권 대회도 열리게 되어 있다.
대학야구에서도 동대문 운동장의 사용은 예외가 아니다. 춘계리그가 열릴 뿐 아니라 프로 2군과의 경기가 이루어지는 축구로 치면 FA컵과 비슷한 성격인 종합 선수권 대회까지 동대문에서 열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인 야구 및 연예인 팀들의 야구 시합까지 포함하면 실로 엄청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공간이 하루아침에 없어진다면 이는 한국야구의 발전에 심각한 저해요소가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최근의 대륙간 컵과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나타났듯 한국야구의 위상은 땅에 떨어진 상태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저변에 무척이나 소홀했기에 수준의 저하가 일어났고, 이제는 그 소홀한 저변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한 작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잘 말해주고 있다.
선수협, 그들의 움직임을 지지한다.
선수협 측에서는 애초에 동대문 운동장 철거에 대한 반대성명을 낸 상태였고, 집회를 기획한 상태였다. 매우 잘한 것이다. 대다수의 야구인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거나 방관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행동은 용기가 있었고 소신이 있었다. 프로선수들이야 당장에 동대문 운동장이 없어진다고 한들 전혀 피해를 보는 입장에 서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한 목소리를 내면서 동대문 운동장 철거 반대를 외쳤다.
바로 그것은 당장 그들의 후배들이 야구를 할 곳이 없어진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동대문 운동장이 가진 의미를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들이 땀흘려 본 공간이며 그 어느 것과 바꾸기 어려울 야구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 중 하나였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무시해선 곤란하다. 그간 야구에 대한 각종 역사의 산실이 바로 동대문 운동장이었음을 잊어선 안된다. 프로야구가 이루어 지기 전 성황을 이뤘던 야구 역사의 살아있는 현장이며, 그 자체로 전통이 될 수 있는 동대문 운동장을 철거하는 것은 단순히 건물을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야구를 뿌리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따라서 가급적 동대문 운동장의 철거라는 극단적인 상황은 막을 수 있도록 야구계가 발벗고 나서기를 바라고, 그게 여의치 않을 최악의 경우엔 아마야구가 파행운영되지 않도록 치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위기의 한국야구계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야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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