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각종 스포츠 언론매체는 농협의 현대 유니콘스 인수를 앞다투어 보도했다. 그간 답보상태였던 현대의 행보에 변화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야구계와 팬들은 상당히 고무적인 분위기다.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현대
서울 진입을 꿈꾸기 전까지의 현대는 그야말로 흠잡을 데 없는 명문구단이었다. 인천을 주 연고지로 한 태평양 돌핀스의 명맥을 유지한 것만으로도 팬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다. 창단 이후 지속적인 우승은 이러한 사랑을 더욱 받을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다.
문제는 SK 와이번스의 창단과 함께 이루어진 서울로의 연고 이전이었다. 야심차게 서울진입을 시도했던 현대는 SK로부터 받은 권리금을 두산 베어스나 LG 트윈스에게 재분배하는데 실패하고 만다. 모그룹의 경영난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결국 인천에서는 쫓겨나고 서울 입성은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어정쩡하게 수원으로 눌러앉은 현대는 진퇴양란의 처지를 맞이하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차 지명을 할 연고지도 없어 지명권을 행사하지 못하면서 전력약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4년 다시 우승을 차지한 현대의 기세는 참으로 놀라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 기세는 이듬해에 바로 꺾였다. 삼성 라이온즈가 당시 현대의 공수에 걸친 주축 선수였던 거포 심정수와 유격수 박진만을 영입해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2005년 7위를 한 결과가 그를 잘 말해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6년 다시 2위로 거듭난 현대를 보면 대단하다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최근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심정수보다는 공수에 걸쳐 여전히 전성기의 기량을 구가하는 박진만의 공백이 없었다면 2006 한국시리즈의 우승은 현대의 몫이 되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현대는 한화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내야 수비불안으로 수시로 위기를 자초하여 시리즈 패배를 당한 바 있다.
반발이 예상되는 농협의 프로구단 운영
농협의 현대 인수는 야구팬들 입장에선 반갑다. 그간 현대는 연고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야구의 재미를 반감시킨 주범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협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그 주축이 되는 조합원들의 반대를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농협은 농업인들의 지위향상을 위해 구성된 협동조합이다. 기업의 형식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설립 취지 자체부터 이미 독특한 조직이다.
따라서 농협이 아무리 기업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노력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들 한해 수백억원의 적자가 뚜렷한 프로 야구단의 경영에 조합원들이 열광적인 호응을 해줄 리 만무하다. 상식적으로 '야구단 운영할 돈 있으면 각 가구마다 많게는 억 단위의 빚을 가지고 있는 농민들의 살림살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먼저다'는 주장을 펼친다면 어떤 말로 반박할 것인지 궁금하다.
가까스로 조합원의 이해를 구한다고 한들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의 협조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 KBO측은 8개 구단의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며 대승적인 차원의 설득을 할 것이지만, KBO 이사회는 엄밀히 말하면 구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터라 희생에 따르는 당근을 제공하지 못할 경우 얼마든지 반대 의사를 제기할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농협이 집안 단속을 하고 나선들 외부의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그들의 행보가 첩첩산중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농협의 서울 입성으로 인한 도시 연고제의 재고
농협의 현대 인수가 확정될 경우, 얼마 전 신상우 총재가 공식 석상에서 발표한 도시 연고제와 전면 드래프트는 다소 수정되어야 할 처지다. 농협은 서울 입성과 함께 전면 드래프트를 주장하고 있으며, 그간 문제가 되어왔던 서울 연고팀들에 대한 보상과 현대 인수자금은 모두 감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럴 경우 수원에서 어정쩡하게 잔류하고 있던 현대를 위한 도시 연고제를 굳이 시행할 필요는 없게 된다. 물론 현재의 프로야구 시스템은 도시 연고제에 더욱 가깝다고 볼 수 있으나 그것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적절한 지역구도는 활력소가 되며, 미국이나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이러한 점을 부각시키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농협의 서울 입성이 가시화 될 경우 오히려 지역구도를 적극 권장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자칫 지역감정으로 비화될 우려가 있으나 엄연히 차이가 있다. 과거에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지역감정은 젊은 층들로부터 서서히 해소되어 가는 분위기로 애향심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지역구도를 유도한다면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
서울지역은 LG, 두산, 농협이 인천, 경기, 강원지역은 SK, 부산과 경남지역은 롯데 자이언츠, 대구와 경북지역은 삼성 라이온즈, 광주와 전라지역은 KIA 타이거즈로 오히려 확고한 지역구도를 세운다면 흥행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만약 도시 연고제라는 명목을 전면에 내세울 경우 해당 도시에 연고가 없는 야구팬들은 더욱 상실감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도시 연고제는 되도록 많은 팬들을 포섭할 수 있는 방안과는 거리가 있으며 현재 프로야구의 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무엇보다 현재 구단이 창단 된다고 한들 날로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는 프로야구에 새로운 팬들이 합류할 가능성은 낮으며 국내의 시장을 고려해도 8개 구단이 적은 규모는 아니다. 새로운 팀 창단을 위한 도시 연고제에 목을 메달 필요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농협 측의 요구인 전면 드래프트는 시행되어야 한다.
한편 전면 드래프트에 대한 논의는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 질 것으로 보인다. 전면 드래프트에는 역효과를 우려한 시각과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시각이 첨예한 대립을 이루고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여 본다면 전면 드래프트는 향후 한국야구가 지향해야 할 목표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일부 야구팬들은 전면 드래프트가 해당 연고지 출신 선수를 보는 재미를 반감시키고 아마야구의 활성화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하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과연 지난해 300만의 프로야구 관중 가운데 선수들의 출신지와 출신학교를 훤히 꿰고 있는 팬들은 얼마나 될까? 야구에 심취한 매니아 층이 아니라면 결코 이를 다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대다수의 야구팬들은 그들이 어느 학교를 나오고 어느 지역 출신이라 좋아하기보단 자신의 응원팀 선수이고 외모나 플레이 스타일에 더욱 매료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절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한 일부 매니아들의 호불호에 따라 야구 행정을 진행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또한 현재 아마야구의 근간은 프로팀들의 지원이 아닌 학부모들의 일방적인 희생과 함께 동문들의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프로팀들이 지원을 펼치고는 있지만, 그것은 실질적인 도움과는 거리가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높다. 그리고 지원 자체도 천차만별이어서 지역별 편차가 상당히 크다는 것도 문제다.
농협의 서울 입성은 결국 전면 드래프트의 가능성이 커짐을 의미한다. 내년부터 1차 지명권이 3장으로 확대되는 상황이라면 14개의 고등학교가 버티고 있는 서울은 무려 9명의 1차 지명자를 만들어야 한다. 그간 상당한 혜택을 입어온 두산과 LG가 당장 전면 드래프트를 지지할 확률이 다소 높아진 셈이다.
어차피 추구해야 할 전면 드래프트라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지방 팀들은 갈수록 팀 숫자가 줄고 있는 터라 향후 몇 년 뒤엔 1차 지명자 3명을 확보하기도 상당히 버거운 상황에 도달할 것이다. 또한 각팀이 가까스로 24명의 1차 지명자를 만든다고 할 경우도 2차 지명의 의미는 크게 퇴색 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1차 지명을 폐지하고 전면 드래프트를 시행할 경우 드래프트의 묘미가 급격하게 살아나게 될 것이다. 이는 드래프트 자체가 야구팬들의 관심사를 끌 수 있는 흥행카드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꼴찌 팀에게 전체 1순위의 지명권을 부여하면서 가장 뛰어난 기량의 선수를 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은 전력 평준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만년 꼴찌 팀이 생긴다는 것은 흥행에는 큰 저해요소다. 올해의 강팀이 내년의 전력을 장담할 수 없게 만들 정도로 서로를 견제해야 프로야구의 재미가 살 수 있다. 가장 큰 시장중 하나인 롯데의 부진은 프로야구의 흥행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 프로야구의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흥행을 위해 선수들의 스테로이드 사용을 방관하였다. 도의적으로 분명 문제가 있는 행위였지만,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 레이스는 파업으로 시들해진 프로야구의 인기를 반석위로 올려놓았다. 130여년 역사의 메이저리그도 흥행으로 고심하는 상황에서 국내 프로야구가 흥행을 위한 카드로 전면 드래프트를 선택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더구나 전면 드래프트는 도의적으로 비난 받을 조치도 아니다.
아마야구도 전면 드래프트가 오히려 낫다고 볼 수 있다. 연고지에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선수 본인이 뛰기에 좋은 환경과 주전을 차지하기 쉬운 학교를 찾으면 되고, 굳이 수도권을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 오직 실력순으로 픽될 것이고 지명 순번에 따라 그에 걸맞은 몸값을 요구하면 된다. 연고지가 빈약한 곳의 선수가 이익을 받지 않으며, 반대로 풍성한 연고지의 선수가 불이익을 받지 않아 공정한 경쟁을 기대할 수 있다.
프로구단의 아마야구 지원은 KBO에서 일괄적으로 하면 된다. 그간 별로 있지도 않았던 지원이라 각 학교들이 큰 타격을 받을 리 만무하다. 오히려 고교야구에서 재정에 큰 부담을 차지하고 있는 나무배트를 사용하기 보단 알루미늄 방망이로의 회귀를 통해 학부모들의 금전적인 압박을 해소시키는 등의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나무배트 사용 이후 고교무대에서 야수 기피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고, 정작 기대한 프로야구에서의 적응 효과는 턱없이 미흡해 역효과만 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의 프로야구는 변화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향후 잠재적인 팬들인 청소년과 어린이 팬을 확보하지 못한 프로야구는 뼈와 살을 깎는 개혁을 추진해야 발전 가능성이 있으며, 그래야만 인기를 다시 회복하게 될 것이다. 농협의 합류를 그 신호탄으로 하는 KBO측의 기민한 행정력을 기대한다.
기사 http://blog.spoholic.com/aprealist/4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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