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중계석
연세대학교 김세훈(118회)(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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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19. 6. 5)
[대학 야구부 신입생 기획 연재 인터뷰]
연세대학교 김세훈
출생 2000년 10월 02일 출신 학교 인천 상인천중-인천고-연세대 포지션 포수(우투우타)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수많은 여자 팬들을 몰고 다닌 극 중 연세대의 에이스 투수 ‘칠봉이’(유연석 분)에서 알 수 있듯 90년대 초반, 대학 스포츠는 프로 스포츠 못지않은 선풍적 인기를 구사하였다. 그러나 2019년 현재 고교 야구 선수들은 압도적 비율로 대학 진학에 비해 프로 진출을 선호하고 있는 상황이며 대학 야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는 과거의 호시절에는 비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타오르는 열정으로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는 대학 야구부 선수가 있다. 올해 연세대학교의 선택을 받은 8명의 신입생들 중 한 명인 김세훈(20, 스포츠응용산업학과)이다. 인터뷰 중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열심히’, 그리고 ‘프로‘로 그의 단어 선택들을 통해 그가 그 누구보다 프로 진출을 향한 강한 열망을 지니고 있음이 묻어났다.
또한 그는 야구를 처음 시작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던 만큼 힘든 순간들이 와도 긍정적 시각을 견지함으써 이 위기들을 무난히 극복했다 말하였다. 건강한 멘탈의 소유자 김세훈 선수를 지금부터 만나보자.
#19학번 #신촌 새내기 생활 #즐거운 글쓰기 수업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연세대학교 스포츠응용산업학과 19학번에 재학 중인 김세훈입니다. 포지션은 포수이고 현재는 팀에서 형들의 공을 받아 내는 등의 도우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Q. 먼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현 시점(5월)에 말씀드리긴 늦은 이야기이나 청춘들의 로망이 가득 담긴 백양로를 품고 있는 연세대학교의 신입생이 된 것을 축하합니다. 대학 입학 전 연세대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속 한 장면과 같은 캠퍼스 로망들을 꿈꾸셨을 것 같아요. 그 로망들을 1학기의 절반 이상 지나간 현시점에서 어느 정도 이루셨는지 궁금합니다.
A. 일단 대학 입학 전후의 시기엔 로망이라 말할 만큼 거창한 대학 생활을 꿈꾸지는 않았어요. 야구가 제 인생 최우선의 존재인 만큼 ‘이 곳에서 실력을 더욱 갈고 닦아 프로에 꼭 도전 해보자!’라는 생각뿐이었거든요. 이렇게 야구적 측면에서 대학 로망을 규정하게 된다면 제 생각만큼 로망이 잘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야구 이외의 부분에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떠올리는 대학 로망은 재미있게 즐기고 있어요. 이 정도면 캠퍼스 로망의 반은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Q. 요즈음 사회에서 '공부하는 운동선수'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있는 만큼 대학 야구 선수들 역시 비(非)체육인 학생들만큼이나 많은 학점의 수업을 소화해야 하는데요. 현재 어떤 수업들을 수강하고 있으며 그 수업들은 들을 만한지 궁금해요.
A. 현재 글쓰기나 대학 기본 영어와 같은 수업들을 수강하고 있는데 그 중 제가 제일 재미있게 듣고 있는 수업은 글쓰기 수업입니다. 수강 신청 전에 어떤 수업을 들을까 하며 신청할 수 있는 과목들을 확인하다 글쓰기 수업을 발견하고 바로 '이 수업은 들어야겠다,' 결심했죠. 제가 원래 글 쓰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 길로 함께 수업을 들을 동기들을 모아서 (글쓰기 수업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이 수업은 ‘글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와 같은 글쓰기의 구체적 방법론적 측면을 다루고 있는 수업이에요. 글쓰기 수업 외에도 듣고 있는 수업들에 대한 과제는 모두 열심히 하고 있고요(웃음). 시험도 열심히 봤고, 이러한 과정들을 겪어가며 '대학 수업이 이런 거구나'를 느끼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그렇다면 수업을 들으며 대학 생활의 꽃, 조별 과제는 해보셨나요?) 해본 적 있어요.
'스포츠 사회학'이라는 이름의 과목을 수강하고 있는데 저는 저희 팀에서 자료 조사를 맡게 되어서 스포츠 브랜드 점유율에 관련한 자료들을 조사하고 정리하여 발표 역할을 맡은 형께 보냈어요. 대학에서 한 번쯤은 (조별 과제를)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그래도 조 과제에 성실히 참여하는 것은 다른 조원들과의 약속인 만큼 열심히 했고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재미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Q. 대학에 처음 입학하였을 때 1학년이 마치기 전까지 이루고 싶은 단기적 계획과 대학 졸업 즈음까지 이루고 싶은 장기적 계획에 대한 그림을 그렸을 것 같아요. 독자들에게 그 계획을 소개시켜 주신다면?
A. 일단 1학년 때엔 형들을 많이 도와드리면서 그 분들의 야구를 많이 보고 배우며 시야를 넓히고 싶어요. 그리고 4학년 졸업 즈음엔 제 꿈이 야구 선수인 만큼 꼭 프로에 지명을 받고 싶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했기에 더 즐거웠던 야구 #포수의 등번호는?
Q. 초등학교 시절 야구부에 입단한 이래 꾸준히 야구인의 길을 걸어오셨어요. 야구를 몇 살 때 처음 시작하였고 시작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야구를 처음 시작한 것은 11살이었던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야구를 시작 해야겠다 마음 먹게 된 것은 4학년에 올라가던 겨울방학 시기에 텔레비전에서 EBS(한국교육방송공사)에서 방영하고 있던 '메이저'라는 이름의 야구 만화를 본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요. 그 만화 영화를 보며 '나도 야구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어머니께 야구를 시켜 달라 끈질기게 조르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어머니의 승낙을 얻어낸 뒤 본격적으로 야구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죠. (처음 야구를 시작하고 싶다 말씀 드렸을 때 어머니의 반응은 어떠셨나요?) 처음에 어머니께선 제가 야구를 시작하는 것을 극구 반대하셨어요. 제가 어린 시절 공부를 꽤나 잘했고 부모님은 이런 제가 학업에 정진했으면 하셨거든요.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제가 어떻게든 야구를 하고 싶다며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으니 완강히 반대 입장을 표했던 어머니, 아버지도 결국엔 제가 야구를 시작하는 것을 허락 해주셨죠. 하지만 부모님을 겨우 설득 시켰다 생각한 순간 조부모님들을 설득해야한다는 또 다른 산을 넘어가야 하긴 했어요.
이렇게 여러 벽들을 넘어 야구를 시작해도 된다는 허락을 얻어냈지만, 처음엔 리틀 야구단과 초등학교 야구부 중 어느 곳에 입단을 하는 것이 좋을지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리틀 야구단 대신 초등학교 야구부에 들어가기로 결정을 하자 이젠 어느 초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좋을까라는 고민이 새롭게 시작되었고요.
그러다 숭의초 출신인 아버지께서 당신의 모교에 야구부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셨고, 그 길로 저는 숭의초 야구부에 들어가게 되었죠. (야구를 중간에 그만두고 싶다든가 다른 종목으로 전향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나요?) 저는 야구를 해 오며 특별히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야구를 해 나갈수록 실력이 늘어가는 것이 느껴질 때마다 뿌듯함이 컸고 그에 따라 또 야구 하는 것의 재미가 배로 커졌으니까요. 힘든 순간이 와도 조금만 더 잘 해내면 프로에 갈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그저 열심히 운동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Q. 고등학교 1학년 땐 등번호 44번을 달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부터 대학 입학 이후까지 22번을 달고 있어요. 이 등번호를 선택하게 된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원래 등번호는 달았던 번호를 계속 달아 왔어요. 초등학교 시절엔 10번만 계속 달아 왔고, 중학교 땐 36번만 달았었죠.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44번을 달게 되었는데 그 번호가 마음에도 안 들고 너무 달고 싶지 않은거에요. 그래서 코치님께 '등번호를 바꾸어 달고 싶은데 추천 해 주실 만한 번호가 있으십니까?' 여쭤봤죠.
그러자 코치님께서 '포수는 22번을 달아야지'라 대답 해주셔서 그 길로 22번을 달게 되었어요. 22번을 달고 난 뒤 성적도 예전에 비해 좋아졌고 잔부상의 빈도도 적어지는 등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기에 괜찮은 번호라 생각되었고 그래서 대학에서도 쭉 22번을 달게 되었습니다.
#거부할 수 없는 포수의 매력 #환상의 조합, 김세훈-백승건 배터리
Q. 연세대에 포수로 입학하셨고 고3 시절 역시 20경기 전 경기를 포수로 출전하셨지만 그 이전에는 다양한 수비 포지션을 경험하셨어요. 고2 시절엔 비록 한 번이었지만 우익수로 경기에 출전하신 적도 있고, 더 이전 시기인 중학교나 초등학교 때엔 선수 등록이 중견수와 좌익수로 되어 있으셨거든요. 이렇게 다양한 수비 포지션들을 경험한 와중 에 포수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초등학생 시절에는 계속 외야수로 경기를 뛰었어요. 그렇게 중학교도 처음엔 외야수로 입학했고요. 그런데 마침 제가 중학교 입학할 당시 팀에 저희 학년의 포수가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평소 제가 송구하는 모습을 지켜보신 코치님이 '포수를 해보면 어떻겠느냐,'라는 제안을 해 주셔서 중학교 2학년 시절 처음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되었죠.
포수라는 포지션이 어깨가 좋아야 송구 능력에 강점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이 곧 좋은 수비 능력으로 이어지거든요.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포지션을 변경하고 싶다 고민하게 만든 슬럼프는 없으셨는지?) 아무래도 포수가 여타 수비 포지션에 비해 체력 소모가 더 심한 편이다 보니 포수의 길을 갓 걷기 시작했을 땐 '다시 외야수로 돌아갈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포수에게는 포수라는 수비 포지션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 있고 또 포수를 하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느낌'이란 것이 있거든요. 저는 포수로서 투수가 잘 던지지 못한 공을 잘 막아낼 때 느끼게 되는 희열이 너무 좋았고, 이러한 경험이 쌓이다 보니 포수의 매력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빠져버린 것 같아요. 슬럼프의 경우엔 수비 쪽에선 딱히 겪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Q. 포수로서 투수를 리드하는 데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신 요소는 무엇인가요?
A. 일단 투수와 포수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고 서로 마음이 통해야 한다는 것 같아요. 투수가 안 좋을 때면 그가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재빨리 파악 하는 게 포수의 일이라 생각하거든요. 이러한 점을 파악하기 위해선 둘 사이 원활한 소통은 필수 요건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요소들이 잘 맞은, 세훈 선수와 찰떡같은 케미*를 자랑한 투수를 한 분 꼽자면?)
저와 가장 찰떡궁합 케미를 자랑했던 투수로는 저와 중고교 시절 함께 야구로 함께 꿈을 키워간, 이번 2019 신인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을 받은 SK와이번스 소속 백승건이란 친구를 꼽고 싶어요. 그 친구와는 중학교 시절부터 오랜 시간 함께 야구를 해 와서 그런지 몰라도 늘 궁합이 잘 맞았어요. 물론 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일수도 있지만요.
이상하게 그 친구가 안 좋을 때 마운드에 서면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딱 보이더라고요. 승건이랑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케미: 보통 케미스트리(chemistry)를 줄여 부르는 말
#잔부상이 아쉬웠던 고교 3년 시절
Q. 고교 3학년 시절 4월 첫 경기였던 동산고와의 경기부터 8월 대구고를 상대로 한 경기까지 쭉 4번 타선으로 경기에 출전하셨어요. 그러한 기용은 물론 타격감이 좋았다는 이유 때문이었겠지만 2학년 시절 총 5경기에 출전했던 전력을 고려하면 ‘고3 진학 직전 급격한 타격의 성장세를 이루지 않았나,’하는 추측이 가능했는데요. 4번 타자로 기용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사실 타격 실력이 고3 전후로 갑자기 향상된 것은 아니에요. 조금씩 실력을 늘려가며 꾸준히 타격 연습을 해 왔었지만 2학년 시절의 경우 같은 포지션의 선배가 두 분 계셨던 만큼 기회를 많이 받지는 못했고, 출전 경기 수도 많지 않았습니다.
3학년으로 올라가던 때에 떠난 동계 훈련에서 제가 마음가짐도 편하게 갖고 야구적으로도 확실히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이니 그러한 부분을 감독님께서 눈 여겨 보시지 않았나(웃음)(라는 생각이 들어요.)
Q. 고3 시절의 기록을 살펴보면 58타수 17안타 중 홈런 2개, 1루타 10개로 단타, 장타 모든 면에서 재능을 보이셨는데요. 본인은 장타에 좀 더 욕심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아니면 중장거리타를 더욱 갈고 닦고 싶은 마음인지 궁금합니다.
A. 고등학교 시절에는 단타를 쳐 내냐 장타를 쳐 내냐 보단 절대적 타율을 올리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안타나 홈런, 둘의 중요성에 차등을 두진 않았어요. 그런데 대학 입학 이후엔 현 야구계 동향을 반영하신 코치님의 지도에 따라 장타를 더 많이 생산 해내는 쪽에 포커스를 맞추어 훈련을 진행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현 야구계는 장타와 홈런을 많이 쳐내는 선수에게 더 많은 주목을 하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Q. 고교 3년 시절 공-수 양 측면에서 균형 있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셨던 만큼 프로 지명에 대한 희망도 없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실제로 아마야구 분석 리포트에서 세훈 선수를 주목하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대학 진학을 선택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 않나요?
A. 사실 고3 시절 제 머리 속에 '대학'이란 선택지는 아예 없었어요. 무조건 프로에 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죠. 그런데 막상 프로에 지명을 받지 못하니 차선책을 모색하게 되더라고요. 대학 원서의 경우 야구 명문으로 알려진 학교들에 전부 넣었는데, 연세대의 경우엔 지원 당시 붙을 거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어요.
다만 ‘후회 없게 내가 원서 써 보고 싶은 대학은 모조리 써보자!'라는 마음으로 넣은 것이 운 좋게 붙게 된 것이죠. 그리고 비록 처음엔 큰 뜻이 없었던 대학 생활이었지만 막상 와보니 괜찮더라고요. 아무래도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방출과 같은 불안 요소와 늘 함께 할 수밖에 없지만 대학에선 4년이란 시간 동안 저를 최상의 상태로 끌어올릴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대학 진학은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Q. 고등학교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이야기 해 주세요.
A. 고등학교 시절의 경우 매 경기가 너무나도 중요했고 소중했지만 그 중에서도 덕수고와 붙었던 고3 시절의 마지막 경기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경기에서 우리 팀이 질 때마다 매번 눈물을 조금씩 삭히곤 했었지만 그 경기는 끝난 뒤에 유독 많이 울었거든요. 아마 그 눈물에는 복합적 감정이 들어있었던 것 같아요.
고교 시절 마지막 경기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제가 그 경기 전부터 계속 손목이 아팠어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었거든요. 설상가상으로 덕수고와의 경기 당일 슬라이딩 도중 손목 뼈가 부러졌고 결국 7회에 교체되었어요. 제가 교체될 때만 해도 우리 팀이 이기고 있었는데 결국엔 경기 결과는 패배가 되어버려서 그 때의 아쉬운 마음은 어떻게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컸던 것 같아요. (그 때 다친 손은 괜찮으신가요?) 수술을 잘 받은 덕에 지금은 다 나은 상황입니다.
#연세대 야구부 #존경하는 선배는 주장 영우형 #죽마고우와의 꿈꿔왔던 조우
Q. 시즌 전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다녀오셨어요. 아무래도 국내, 그리고 같은 아시아권 국가인 대만에서 진행했던 종전의 동계 훈련만 경험하다 아메리카 대륙의 따뜻한 공간 속에서 운동을 하는 기분은 색달랐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A. 미국은 음식부터 우리나라와는 아예 달라서 처음에는 입에 좀 안 맞나 싶었는데 계속 먹다 보니 너무 맛있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음식은 괜찮았고, 야구장의 경우도 시설이 너무 좋아서 그런지 야구를 하고 싶다는 의욕이 막 샘솟았어요. 야구 이외의 것들을 말씀 드리자면 쉬는 날에는 쇼핑도 하고 바닷가에 놀러가기도 하며 선배 그리고 동기들과의 추억을 쌓았고요,
우리나라와는 결이 다른 미국인들의 여유로운 생활 방식도 간접적으로나마 많이 느꼈습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장면을 하나만 꼽으라 하신다면 딱히 없지만 형들과 매일 밤마다 함께 라면 끓여 먹던 소소한 순간들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웃음). 미국에서 밤 시간대에 먹는 라면이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었어요. (훈련은 미국으로 떠나기 전 계획하신 만큼 잘 해내셨나요?)
동계 훈련 초반은 수술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던 만큼 많은 양의 훈련을 소화하진 못했어요. 대신 몸을 열심히 만들었고, 훈련 막바지부터 본격적으로 야구 연습을 시작했죠. 그 과정에서 제가 생각한 만큼 훈련의 결과물을 내진 못한 것 같고 '이제 시즌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는 느낌 정도만 냈던 것 같아요.
Q. 2019년 기준 연세대 야구부에 인천고 출신은 김세훈 선수뿐이세요. 그래도 동기 및 선배들을 고교 시절 때 만났던 전력이 있었을 법 한데요. '이 선수와 내가 같은 팀에 뛰게 되어 신기하다', 또는 '같은 팀이 되어 너무 반갑다'하는 선수가 있다면?
A. 연세대에 다니는 형들은 모두 원래부터 야구를 잘해오던 형들이라 전국대회에서 뵙기도 했고, 자주 들어온 익숙한 이름도 많았어요. 같은 팀이 되어 유달리 반가운 동기는 저희 학번에서 포수가 저 포함해서 2명인데 저 말고 다른 한 명인 김건웅이라는 친구에요.
그 친구는 저랑 초등학생 시절부터 야구로 인연이 닿아 알고 지낸 사이었어요. 출신지가 인천과 광주로 꽤나 거리가 있었는데도 서로의 집에 놀러가서 몇 박씩 묵기도 했었고, 오랜 시간 동안 연락이 끊기지 않고 친하게 지내왔죠. 예전부터 둘이 만날 때마다 '우리는 언제 같이 야구하냐,' 이런 얘기를 했었는데 대학 입시철에 저랑 그 친구랑 원서 쓴 곳들을 비교해보니 거의 유사한 거에요.
게다가 둘 다 연세대에 붙게 되었고요. 드디어 어린 시절의 소망이 이루어지게 되어 너무 기뻤습니다.
Q. 예전에 진행된 인터뷰에서 같은 팀에서 닮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질문에 대해 (이)길용이 형의 인간적 면모를 닮고 싶다고 답 하셨어요. 야구의 측면에서 롤 모델이 있다면 어떤 분일지 궁금합니다.
A. 일단 제가 현재 롤 모델로 삼고 있는 분은 저희 팀 주장을 맡고 계신 (김)영우형이에요. 영우 형은 평소 몸 관리도 철저히 하시고 야구에 대한 욕심이 크신 만큼 연습량도 굉장하시거든요.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해 자기 자신에 대한 채찍질을 멈추지 않는 모습이 멋있게 다가왔습니다.
형이 흘린 수많은 땀방울들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이 곧 결과로 증명될 것이라 믿고 있어요. 고등학교 시절 제 롤 모델이었던 분은 저와 같은 중,고등학교 출신인 한화 이글스 정은원 선수인데요, 은원 형도 중고교 시절부터 굉장한 노력파였거든요. 중학교 시절에 원래 우타였던 걸 좌타로 훌륭하게 바꾸어 낸 모습이 당시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Q. 그렇다면 이젠 동기로 범위를 한정해 볼게요. 동기들 중 첫인상과 실제 성격에 큰 차이가 있어 본인을 놀라게 했던 사람이 있다면?
A. 동기 중 충훈고 출신의 조강희라는 친구가 있는데요, 그 친구 첫인상이 굉장히 조용해서 초반엔 말을 걸기가 힘들었어요. 그러다 저희가 신입생 환영회 전에 장기자랑을 연습하며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이 있었거든요. 그 때 이 친구가 되게 밝고 재미있는 친구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야구도 굉장히 열심히 하고요.
#주체할 수 없는 끼 #정기 연고전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Q. 연세대 교내 스포츠 잡지인 시스붐바(sis-boom-bah)에서 진행한 연세대 야구부 신입생 자기 소개 영상에서 단체 및 프로필 사진도 찍으시고 춤과 같은 장기들도 뽐낼 기회를 가지셨어요. 끼가 철철 넘치시는 것 같은데 평소에도 그렇게 흥이 넘치시나요?
A. 저요?(웃음) 일상생활에서는 흥이 많은 편은 아니에요. 하지만 저의 흥이 필요한 자리가 있다면 절대 빼지 않고 열심히 분위기를 띄우는 스타일입니다.
Q. 연세대 야구부를 논할 때에 정기 연고전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올해 인생 최대 인원의 관중 앞에서 본인의 야구 실력을 뽐낼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연고전에 임하는 포부를 이 자리에서 미리 들어 볼게요.
A. 잠실 야구장이라는 넓은 공간을 무대로 많은 관중들이 모여 있는 상황 속에 제가 야구를 한다니 상상만으로도 긴장되고 떨리고요, 설레기도 합니다. 하지만 막상 시합에 들어가면 경기에 집중하느라 긴장보단 재미를 더 크게 느낄 것 같아요. (그러면 평소엔 경기 중 또는 전에 긴장되면 어떤 방법으로 해소 하시나요?) 저만의 긴장 푸는 법이 따로 있진 않아서 제가 코치님께 배운 방법을 소개해드릴게요.
코치님께서 전신에 힘을 5초 정도 빡 준 뒤 힘을 쫙 빼면 긴장이 풀린다고 알려주셨어요. 하지만 저는 처음 야구를 시작했던 시점부터 경기 전이나 도중에 긴장을 많이 하는 타입은 아니었어요. 대신 야구 이외의 것들에서 긴장하는 경우는 종종 있죠. (예를 들면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춤 출 때?(웃음) 약간 긴장되긴 하지만 또 그 상황에 몰입하면 이내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야구를 하며 긴장을 많이 하시지 않는 타입이면 갖고 계신 징크스도 딱히 없을 것 같은데) 징크스는 있어요.
양말이나 보호 장비 등을 매 시합 마다 똑같은 걸로 착용해야한다는 징크스인데요. 특히 고등학교 때는 (징크스에) 매우 예민해서 매 경기마다 전에 입었던 옷을 입지 않으면 불안감이 들곤 했어요. 장갑의 경우에도 늘 끼던 것만 끼고 싶어서 똑같은 걸로 10개씩 사 놓아두기도 했었고요. 옷도 이틀 연속으로 시합이 있는 날에는 첫 경기가 끝난 날 밤에 무조건 빨아서 다음 날에 입고 경기에 임했어요.
Q. 선수 본인이 생각하는 내가 야구인으로써 갖고 있는 장단점은요?
A. 사실 고등학교 시절엔 항상 자신감이 넘쳤던 터라 제 단점에 대해 잘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대학에 오니 신입생이라 어쩔 수 없이 위축되는 부분도 있었고, 이런저런 과정을 겪으며 제 약점에 대해 잘 알게 된 것 같아요. 전부터 제가 잔부상이 좀 많은 편이었거든요. 또 대학 오니 타격감도 예전 같지 않고요. 이 두 가지를 현재 제가 극복해야 하는 단점으로 꼽고 싶습니다. 장점은 수비 실력, 그리고 매끄러운 투수 리드를 통해 경기를 잘 풀어나가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세훈 선수의 꿈을 독자들께 공표해주세요.
A. 매 경기에 항상 화이팅과 열정이 넘치는 자세로 임하며, 제가 나오는 경기를 보시는 많은 분들께 다채로운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 제 꿈이고요. 그리고 FA에서 두 번 정도 대박을 터뜨리고 싶습니다(웃음).
[KUSF=글, 사진 김혜진 기자]
201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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