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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야구의 추억 - 三美 슈퍼스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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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야구의 추억 - 三美 슈퍼스타즈
- 용지니요님
- 조회 219 2006-06-08 09:25
*인천 최초의 구단 三美 슈퍼스타즈 1) 구단 선정에서 창단까지 1981년 프로 야구 출범 준비 과정중 6개로 나뉜 각 지역의 연고 구단 선정 원칙은 "재무구조가 튼튼한 대기업중 그 기업 총수의 출신도별로 연고지를 정한다" 였다. 경기도,강원도, 이북5도를 연고로 하는 인천팀의 연고 구단으로 제일 먼저 지목을 받은 기업은 현대였다. 정주영회장이 강원도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측은 정회장이 88올림픽을 유치한 직후여서 올림픽에 전념을 다 하겠다고 야구단 창단을 거부한다. *짠물 생각 - 그때나 지금이나 정말 맘에 안들어... 두 번째 기업은 한국 화장품 이었다.당시 대한 야구협회장을 맡으며 실업팀을 운영하던 임광정회장은 연고지를 서울로 해줄 것과 기존 한국화장품 선수들을 그대고 유지시켜 줘야 한다고 우겨서 결국 실패.. 세 번째 기업 대한항공은 처음에는 호의적이었으나 유류파동으로 인한 회사의 적자를 이유로 결국 포기 하고 만다. 이때는 다른 지역의 연고 기업은 거의 확정됀 상태였는데, 충청도 지역을 맡기로 한 두산이 현대 의 불참을 알고는 대전 대신 인천으로 연고로 옮기 겠다고 요구를 한다. 하지만 대전 지역을 대신할 기업이 마땅치 않아 3년후에 서울로 연고지를 옮겨주기로 하고 대전지역을 두산에 맡긴다. 1981년 11월에는 인천을 제외하고 다른 지역은 모두 구단 선정이 완료돼, 인천만 골치덩어리로 남게된다.
결국 준비 위원들은 11월 25일에 정식 모임을 갖기로 하고 만일 그때까지 인천지역을 맡을 기업이 나타나지 않으면 인천은 빼 버리기로 한다. 그런데 인천 때문에 프로야구의 출범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소식이 나가자 삼미의 김현철 회장이란 사람이 준비위원에게 전화를 걸어와 인천 지역을 맡겠다고 한것이다. 그 시간은 25일 정식 모임 6시간전인 11시여서 더 극적인 것이였다. *영웅등장 준비 위원들도 처음엔 이름도 잘 들어 보지 못한 삼미 그룹이 참여 의사를 밝혀와 당황하기도 했다. 삼미는 서울에 있는 삼일 빌딩의 소유주로 삼미 철강,삼미 목재,삼미 해운등을 운영하는 기업이었다. 특히 인천에 자리잡고 있는 삼미해운으로 인해 인천에 연고가 있는 기업이기도 했다. 삼미는 대대적인 PR을 요구하는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이 아니였으나 김현철 회장의 뜻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오른쪽 두 번째가 김현철회장 김회장은 경기중을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 대학에 재학중일 때 MLB야구에 심취하기도 한 인물로 당시 나이가 31살밖에 안됀 젊은 회장이었다. 오죽했으면 25일 정식모임에 찾아온 김회장을 아무도 못알아봤을까...? *많은 사람들이 삼미가 인천을 자발적으로 맡고 나선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김현철 회장은 두산 박용곤 회장과 대학 선후배 사이로 두산이 인천을 맡으려다 밀리자 김회장에게 이를 권유해 일이 성사 된 것이라 한다. 이렇게 돼서 1981년 12월 11일 프로 야구 창립총회가 열려 프로야구의 출범을 알린다. *이렇게 인천 프로야구는 출발부터 우여곡절을 겪으며 시작을 알렸다.
마스코트는 악의 무리에게서 지구를 지키는 "슈퍼맨" - 이 얼마나 대단 하고 웅대한가? 더욱 더 놀라운 것은 다른 팀과 달리 여자 마스코트도 있었다는 것. 바로 "원더 우먼" 일명 원더 빤스로도 불리곤 했다. '슈퍼스타즈'란 팀명은 김현철 회장이 미국 유학시절 미식축구에 심취해 있었는데 거기서 '슈퍼스타즈'란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그럼 삼미의 원년 멤버들을 알아 보자. *구단주:김현철 *단장:이혁근 *감독 :박현식 *코치:이선덕.이춘근
*투수:인호봉.이동주.박경호.김동철.이하룡.한상연.김재현.감사용.오문현 *포수:금광옥.김진철.최영환 *내야수:김구길.김경남.이철성.송경섭.조흥운.장정기.허운.이찬선.한인철.김무관 *외야수:양승관.문주모.김호인.이경수.박준영 *짠물 생각 -이중에서 생각나는 선수 누가 있나요? 전 양승관.금광옥.조흥운선수 정도밖에 생강이 안나네요. 허운.김호인씨는 심판됐고 양승관.금광옥.김무관씨는 코치가 됐네요.
허운 인호봉 조흥운 장정기 김호인 김재현
금광옥 김무관 감사용 오문현 양승관 2) 매각 1985.5.1삼미는 청보 그룹에 팀 매각을 발표한다. 매각의 원인은 84년 6월부터 삼미그룹의 주력회사인 삼미 해운의 적자 누적등 경영난과 성적부진 때문 이었다. 1차로 삼미 해운을 처리한 삼미그룹은 84년 그룹의 상징이었던 삼일빌딩을 상업은행에 290억에 매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82~84년 동안에 45억1천만원의 적자를 낸 야구단을 유지 할 수는 없었다. 많은 홍보를 필요로 하는 소비재 분야의 계열사가 전혀 없는 삼미 그룹의 성격상 야구단이 창출하는 효과를 전혀 누리지 못한데다 85시즌 개막과 함께 이어진 연패에 넌덜머리가 나 매각을 서두르게 된다. 이때 세운 기록이 18연패로 불멸의 최다연패기록이 된다.
*짠물 생각-내가 기억하는데 그시절 TV광고에 삼미 그룹의 이미지 광고가 계속 나왔다. 삼미철강.해운등과 함께 슈퍼스타즈의 경기 모습도 들어 있었다. 타자가 공을 치는 모습이었는데 선수는 금광옥이었다. 어릴쩍 나는 그 광고를 보면서 맨날 꼴찌만 하는 야구팀이 광고에 나오는게 디게 웃끼다고 생각 했다. 84년말부터 김현철 회장은 원매자를 알아 본다. 럭키금성(현 LG).한국화약(현 한화).한국화장품.농심등 그동안 프로야구에 관심을 보인 구단에 의향을 타진 했으나 70~80억원을 요구한 삼미에 반해 삼미의 어려운 사정을 아는 기업들은 40~50억원의 헐값을 요구해 계약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당시 제7구단 창단권을 따낸뒤 가입금 30억원을 놓고 KBO와 실랑이를 벌이던 한국화약은 차라리 인천팀을 인수해 버리고 대전 지역 창단을 포기 할 것도 검토 했으나 그 역시 가격차이를 좁히지 못해 실패. 청보로 낙찰 되기전 가장 근사치로 접근한 곳은 럭키금성이었다.4월 중순 까지만 해도 양측은 거의 합의점에 이르렀으나 럭키금성이 다시 감가상각비의 명목을 들어 4억원을 더 깍자고 제의해 삼미의 감정을 건드려 무산 됐다.*LG 숭악시런 놈들... 그러다 청보가 갑자기 등장한 것은 두기업 오너의 학연이 크게 작용했다. 청보 김정우회장과 삼미 김현철회장은 경기고 선후배 사이로 평소 가까이 지내다 김현철의 사정을 알고 선뜻 구단을 인수 하기로 한 것이다. 매각 조건은 70억원 이었으나 현금이 아니라 삼미의 부채를 청보가 떠 맡는 것 이었다. *매각 대금은 70억원으로 발표 됐으나 실제로는 60억원 이었다고 한다.
*매각 협상을 끝 마치고 난 뒤 삼미의 김현철 회장(사진)은 하염없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고 한다. 얼마나 아쉬웠으면... 이렇게 삼미는 1982년 2월 5일 구단을 설립한지 1,233일만에 역사의 저 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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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일님의 댓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음편이 궁금하네요...^^
궁금이님의 댓글
캐쳐 보았던 김진우(76회) 선수는 창단멤버가 아니 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