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중계석
♡인천야구 이야기<한국프로야구 이야기>삼미 슈퍼스타즈
본문
구단 매각
삼미 슈퍼스타즈가 블랙홀 같은 연패의 늪에 빠졌다가 최계훈을 내세워 간신히 18연패를 끊던 1985년 4월30일. 선수들은 감격과 서러움이 응어리진 눈물을 흘렸다. 바로 그날 김현철 구단주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애써 만들어 낸 야구단을 팔아넘겨야 하는 아픔을 삭여야 했기 때문이다.
매스컴에 발표된 매각금액은 70억원(그러나 실제 매각대금은 60억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인수기업은 청보식품. 너무나 극비리에 진행된 매각작업. 너무나 알려지지 않은 기업의 등장. 모두가 충격을 증폭시키는 일들이었다.
5월1일. 긴장된 표정으로 KBO 사무국에 나타난 김현철은 서종철 총재와 면담하면서 그룹 경영상 구단 매각이 불가피함을 설명하고 승인을 요청했다. 김현철 회장은 서 총재의 아들과 친구 사이였기 때문에 서 총재가 주재하는 구단주회의에 참석할 때는 매우 조심스럽고 쑥스러운 표정을 짓곤 했다. 서 총재는 절차상의 문제로 한동안 난감해하다가 김창웅 홍보실장을 통해 그날 저녁 즉시 긴급 임시구단주총회를 소집했다.
바로 그날 신라호텔에서는 6개구단 구단주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삼미를 위한 '최후의 만찬' 이 펼쳐졌다. 프로야구 창설 당시 공지로 남을 뻔한 지역을 맡아 애면글면했던 김현철 회장은 불가피하게 구단을 팔게 된 불가피한 사정을 목메어 설명하고 총총 자리를 떴다.
사실 삼미의 매각 움직임은 1984년 6월부터 감지되고 있었다. 주력기업의 하나인 삼미해운의 적자가 누적되면서 주거래은행인 상업은행으로부터 적자기업을 처분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1차로 삼미해운을 처분한 삼미그룹은 1984년에 그룹의 간판이었던 3 · 1빌딩을 290억원에 매각하는 아픔을 맛보았다. 이런 판국에 1982~4년 사이 45억1000만원의 적자를 기록한 슈퍼스타즈를 그대로 꿰차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룹 전체의 적자폭을 놓고 볼 때 굳이 야구단을 팔아야 할 정도는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소비재업체를 갖고 있지 않은 그룹의 성격상 야구단이 창출하는 홍보효과를 이용할 데가 없는 데다가 1985 시즌을 열자마자 피를 말리는 연패행진을 벌이니 넌덜머리가 나 매각을 더욱 서두르게 됐던 것이다.
1984년 말부터 증권가에서 삼미 구단이 팔리리라는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김현철 구단주는 은밀히 원매자를 물색했다. 럭키금성, 한국화약, 한국화장품, 농심 등 그동안 프로야구 창설에 호의적이던 기업들에 인수의사를 타진했으나 가격이 맞지 않아 쉽사리 성사되지 않았다. 삼미측은 70억~80억원을 요구했으나 상대편은 삼미가 경영 악화에 따라 구단매각을 서두른다는 약점을 노려 40억~50억원의 헐값으로 후려쳤다.
당시 제7구단 창단권을 따낸 뒤 가입금 30억원을 놓고 기존 구단들과 신경전을 벌이던 한국화약그룹도 차라리 인천 팀을 인수해버리고 대전지역 창단을 포기할 것을 고려하다가 역시 가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통에 결렬되고 말았다.
청보로 최종 낙착되기 전까지 가장 근사치로 매각 교섭이 접근됐던 기업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럭키금성그룹이었다. 4월 중순까지만 해도 양측은 거의 합의선에 도달했으나 럭키금성측이 다시 감가상각비 명목으로 4억원을 깎자고 제의하는 바람에 삼미의 감정이 상해 흥정이 깨지고 말았다.
김현철 회장과 청보 김정우 회장의 거래가 이뤄지기까지는 경기고 선후배라는 동창관계가 작용했다. 김정우는 59회 졸업생(1963년)이고 김현철은 경기고 재학 도중 미국유학을 떠나 63회 동문대우를 받고 있다. 야구광이긴 마찬가지인 김정우 회장은 재정난에 허덕이는 후배의 짐을 덜어주려고 주판알을 제대로 퉁겨보지도 않고 선배로서 두터운 정을 보여준 것이었다. 당시 매각대금은 70억원으로 발표됐으나 실제금액은 60억원인 것으로 밝혀졌고, 이 대금도 직접 현금이 오간 것이 아니라 삼미가 은행에 잡혀 있던 담보물을 빼주고 풍한이 대신 담보물을 제공하는 것으로 대체됐다.
김현철은 삼미그룹이 부도로 파탄을 맞고 나서 요즘은 사업과 전혀 무관하게 멕시코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보도록 하자.
1. 애당초 현대가 인천의 주인이 되었더라면 야구계 판도는?
2. 두산이 인천으로 본거지를 바꾸겠다는 요청이 받아들여졌더라면?
3. 럭키금성이 삼미 슈퍼스타즈를 인수했더라면?
우리는 일어날 뻔했다가 슬그머니 없었던 일로 돼버린 일들에 현실보다 더 진한 호기심과 흥미를 때때로 느끼곤 한다.
|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