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중계석
인천야구의 대부"김진영"
작성자 : 이동열
작성일 : 2007.10.18 15:01
조회수 :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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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장’으로 잘 알려진 김진영(70·사진)은 인천 야구의 대부로 불린다. SK 김경기 코치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인천 앞바다에 위치한 승봉도 출신인 김진영은 동산중·인천고를 나와 한국전쟁 이후 전인천(1955년)과 육군(56∼59년), 교통부(60∼62년), 철도청(63∼64년)에서 주로 유격수로 활약했다.
고교시절부터 각종 대회 미기상을 휩쓸 정도로 유격수 수비가 발군이었고 타격과 홈런상을 수상하는 등 타자로서도 빼어난 활약을 보였다. 그는 인천고가 54년 고교야구 2관왕에 오르며 명성을 날릴 때의 주역이다.
59년 제3회 아시아선수권대회 등에서 태극마크를 달았던 김진영은 지도자로서도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해병대(67∼69년)에서 처음 감독을 맡은 그는 68년 팀을 전국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이끌며 지도자로서 성공시대를 열었다. 중앙대(72∼79년)와 인하대 감독(81∼82년)을 역임한 그는 83년 프로야구 삼미 사령탑을 맡아 돌풍을 일으켰다. 팀을 재창단한다는 의미에서 백넘버까지 83번으로 달고 ‘악바리’란 별명대로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선수들을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다그친 결과다. 불 같은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83년 6월1일 잠실 MBC(LG 전신)전에서 심판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이 장면을 TV로 지켜보며 “저러면 안 되는데…”라고 한마디를 했다는 후문이다.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 감독은 즉각 구속됐다. 이후 열흘 만에 벌금 100만원을 내고 풀려났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삼미의 요청으로 시즌 종료까지 팀에 복귀하지 못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85년까지 삼미를 인수한 청보 감독을 지내는 등 인천야구의 간판으로 활약하던 김진영은 아들 김경기가 태평양에 입단한 90년 롯데 사령탑을 맡아 부자지간 대결을 벌이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으나 그 해 6위에 머물면서 결국 옷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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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종님의 댓글
오나가나 두환이가 문제여~~~에구 속상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