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중계석
인하대 양승관(76회) 야구부 감독(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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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 원년멤버 인하대 양승관 야구부 감독
20세기 '아이언 맨', '인천의 슈퍼 영웅'
프로야구 원년 멤버인 양승관(50) 인하대 야구부 감독은 지천명을 넘어선 나이지만 여전히 인천팬들에겐 삼미 슈퍼스타즈의 영원한 슈퍼 영웅으로 자리잡고 있다.
개막 원년인 1982년, 인천을 연고로 한 삼미 슈퍼스타즈가 18연패의 늪에 빠져 시즌 골찌를 기록했을 때도 팀에서 유일하게 양 감독만이 '베스트 9'에 선정돼 '구도 인천'의 자존심을 세워 주었기때문이다.
당시 도원야구장의 중원을 지킨 중견수로 활약한 그는 '아이언 맨'이란 닉네임답게 철의 어깨를 자랑하며 '외야 땅볼 아웃'이라는 유행어를 히트시킨 장본인. 1983년에는 3할대 타율로 '타격 10걸'에 포함되자 슈퍼스타즈에 스타는 양승관 밖에 없다는 시샘 섞인 찬사도 받았다.
숭의초교 4학년때 야구공을 잡았으니 올해로 야구인생 40년을 맞은 양 감독. 그는 프로야구 원년 얘기를 꺼내자 당시 에피소드로 추억을 열었다.
"당시는 신용카드가 보편화되기 전이니 팀 매니저들이 007가방에 돈을 싸들고 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죠. 물론 선수들의 경비인데, 이를 지키느라 매니저들이 정작 제 할 일을 못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또 "이동수단도 변변치 않아 지방 원정을 가다보면 밤새 버스에서 자고, 아침에 도착해 몸만 풀고 곧바로 경기에 나서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지금 프로야구 선수들과 비교하면 엄청난 격세지감이지만 양 감독은 "프로는 여건보다 경기로 보여지는 만큼 사실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특유의 굵은 미소로 말끝을 흐렸다.
개막원년을 시작으로 1988년 프로야구 선수를 은퇴하기까지 사실 양감독은 인천을 떠나지 않은 유일한 선수로 기록되고 있다. 그런 만큼 삼미에서 청보로 팀이 넘어갔을 때도 팀의 주장이자 맏형 역할을 해야 했던 그는 LG트윈스와 SK 와이번스에서 타격코치를 거쳐 20년만에 모교인 인하대로 돌아왔다.
몇 년 전 개봉된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의 양승관을 묻자 그는 대뜸 "영화에서 내 역할로 나오는 배역은 절대 나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친다. "아이들이 '아빠 그렇게 나쁜 사람이었어?'라고 물어 정말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봤는데…"라며 역시 특유의 웃음을 짓는다. 영화에서 양승관이 5년 선배인 주인공 감사용을 무시하는 후배로 묘사된데 따른 해명이다.
고교야구 스타에서 인하대 야구부 창단 멤버로, 다시 프로야구 원년 멤버로 국내에서 야구 잘하는 9명에 늘 선정됐던 양 감독. 야구인생에서 후회보다 영광이 더 크지 않았는냐는 질문에 그는 "이젠 무턱대고 야구를 사랑해달고 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면서 "메이저리그처럼 이젠 우리 프로야구도 지역연고 팬들과 함께 웃고 우는 긴 호흡의 야구가 필요할 때"라고 말문을 닫았다.
글=이주영기자 (블로그)leejy96
종이신문 : 20080717일자 2판 31면 게재
인터넷출고 : 2008-07-16 오후 9: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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