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중계석
인천의 안방마님 김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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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의 안방마님 김동기 | |||||||||||||||||||||||||||||||||||||||||||||||||||||||||||||||||||||||||||||||||||||||||||||||||||||||||||||||||||||||||||||||||||||||||||||||||||||||||||||||||||||||||||||||||||||||||||||||||||
이름 : 김동기 포시션 : 포수 백넘버 : 35 생년월일 : 64년 3월 5일 출신교 : 인천고- 인하대 활동 : 86청보-88태평양-96현대 별명 : 백돼지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그 이름 김동기. 인천이 낳은 최고 포수 김동기선수의 이야기를 해보자. 앞에 콜라 한병만 있어도 행복했던 시절, 신흥국민학교 6학년때 (왼쪽에서 7번째)
인천고 3학년 때 제1회 세계청소년 야구대회에 국가대표로 뽑혀 우승.(맨뒷줄 왼쪽에서 네번째)
<= 대륙간배 대표로 뽑혔던 대학시절. (왼쪽 첫 번째) 자세히 보면 아는 선수 모습도 보인다.
위 사진들에서 봤듯이 일찌감치 뛰어난 재능을 보인 김동기는 기대를 받으며 인천 연고팀인 86년 청보핀토스에 입단한다. 하지만 팀에는 인천의 간판타자이자 주전포수인 김진우가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어 첫해엔 주로 백업포수와 대타자로 뛰었는데 0.248로 타율은 낮았지만 10홈런을 기록하며 녹록치 않은 장타력을 선보였다.
<= 친형인 김상기와 함께 선수생활. 왼쪽부터 김상기,동기 형제. 오른쪽은 양승관,후승 형제.
2년째가 되던 87년시즌 6월 주전포수인 김진우가 부상과 부진이 겹치자 드디어 그에게 주전의 기회가 찾아온다. 김동기는 김진우가 빠진 4번자리를 꽤차고 공수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김진우의 공백을 훌륭히 매꾼다. 하위권을 맴돌던 팀은 후반기 들어 한때 4위까지 치고 올라가는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이는 김동기의 공수에 걸친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뛰어난 투수리드로 안방을 굳게 지키면서 놀라운 힘을 바탕으로 한 장타력을 보이며 중심타선에서 한 몫했기 때문이다.
천부적으로 뛰어난 힘이 강정인 그는 빗맞은 공도 담장을 넘기는 괴력을 종종 보여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힘이 장사이고 스윙 또한 뛰어나 메이져리그급 타자란 소리도 들었다. 특히 빠른 볼을 잘 때려 상대팀 에이스와 붙게 되는 팀 사정상 없어서는 안되는 타자가 되었다. 수비 쪽에선 상대타자의 허를 찌르는 예측불허의 투수리드로 허약한 마운드를 이끌었는데 경험부족으로 인한 미숙한 경기운영과 2루송구에 문제점을 보이기도 했다.
<1989시즌을 준비하면서- 당시 주간야구 1면에 등장한 각팀의 대표선수들> 89년 팀은 김성근 감독체제로 변신되었고 마운드의 신인 3총사를 앞세워 인천팀 역사상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룬다. 마운드에 3총사가 있었다면 안방과 방망이엔 김동기가 있었다. 잦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포수로선 처음으로 전경기출장 기록을 세우며 요긴할 때 장타를 터뜨리는 등 팀타선을 이끌며 가장 큰 활약을 펼쳤다.(100안타,홈런 11개,승리타점9) 89시즌 김동기 활약의 백미는 역시 처음으로 진출한 준플레이 오프 1차전에서 연장 14회말 2사 1,3루서 삼성 김성길에게 제2구 바깥쪽 커브를 때려 시원하게 담장을 넘기는 120m짜리 대형 끝내기 홈런이었다. 이전까지 상대투수 김성길에게 유독 약한 모습(21타수 2안타)을 보여왔는데 이 한방으로 천적관계를 끊는 한방이기도 했다. <89 준플레이오프 감동의 끝내기 홈런>
*짠물생각 - 하지만 이 술 때문에 선수생활에도 안좋은 영향을 많이 미쳤다. 만일 그가 술을 자제했다면 인천만을 대표하는 포수가 아닌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매김 했을 것이다. 그의 선수시절 말년 관중석 아저씨들의 대화 "김동기 은퇴하면 뭐할까?" "술 좋아하니까 술집하면 되지.." 전년도 성공으로 전지훈련에도 참가하지 못할 정도로 구단과의 지리한 연봉싸움을 벌이며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맞이한 90시즌엔 훈련부족과 근성부족으로 잔부상에 시달리며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당시 해태 선동렬은 87년부터 태평양 킬러로 행세해왔었는데 김동기는 '선동렬 킬러'란 별명답게 선동렬이 가져오던 319.1이닝 1천1백87연속타자 무피홈런 기록을 9월25일 최종전에서 시원한 홈런으로 날려버렸다.
전년도의 부진으로 심기일전하고 맞은 91시즌. 지난 5년간 거의 혼자 마스크를 써 투수들과 호흡이 척척 맞았고, 많은 경기경험으로 상대타자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또 민첩하진 못하지만 베이스 위에 정확하게 떨어지는 2루송구가 일품이었기에 주자를 베이스에 묶어놓을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시즌 초반까진 잘나갔지만 5월 발목을 다친 뒤 허리 옆구리부상까지 당해 규정타석에도 들지 못하고 만다.
91년 말 새로 부임한 정동진 감독은 김동기를 일방적으로 팀의 주장으로 지목한다. "인천출신이니 인천야구의 재건을 내 어깨에 건다는 뜻일거다. 나혼자 잘한다고 1등을 할 수는 없다"며 후배들에게 솔선수범을 보이며 농뗑이도 치지 않고 훈련에 매진한다. 91년말엔 병역비리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무혐의로 풀려 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 92년 1월 주간야구 "장학생 포수 김동기"
전문가들은 92시즌 전 최고포수로 김동기를 뽑으며 그의 활약을 기대했다.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타격폼'이란 찬사까지 받았다. 결국 107게임에 출전해 0.294에 15홈런 58타점을 올리며 분전했지만 팀 성적이 하위권이다 보니 빛이 발하고 말았다. 93시즌엔 팀성적도 말이 아니었지만 무릎,허벅지,팔꿈치 등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부상에 시달렸다. 게다가 팀내 많은 후배들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해 팀은 최악의 상황에까지 빠진다. 주장으로 시즌 중 고비마다 선수단 미팅을 하는 등 침체된 분위기를 바꿔보려 애를 썼지만 무소득이었다. 93경기에 출전해 0.244에 3홈런으로 부진한데다 삼진(67), 병살(16)로 부끄러운 팀내 1위에 올라 주장의 체면을 완전히 구기고 말았다. 그래도 93년 인상에 남는 장면은 올스타전에서 7회 2점 홈런을 날린 것과 광주 해태전에서 4:0으로 지고 있던 9회초 마무리로 나온 선동렬에게 2사 만루에서 통쾌한 만루홈런을 뽑아낸 장면. 역시 선동렬 킬러답게 선동렬에게 유일하게 만루홈런을 뽑아낸 선수가 되었다. 전년도 성적이 저조하면 다음시즌에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 마련. 94시즌을 맞는 김동기의 각오도 남달랐다. 그 좋아하던 술을 자제하고 열심히 야구에만 매달려 후배 김경기와 함께 공포의 'KK포'라 불리며 팀을 이끌었다. 결국 팀은 시즌내내 태평양 돌풍을 일으키며 시즌 2위를 차지했고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시즌내내 팀의 안방을 지키며 0.264의 타율에 15홈런, 50타점을 올리며 최고의 포수로 이름을 날렸고 올스타전에도 팬투표로 뽑혀 출전했다. 하지만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선 우승팀 LG의 김동수에게 2표차로 정말 아쉽게 밀리고 말았다. 우승과 준우승의 차이었다. 이렇게 김동기는 최고의 기량을 자랑했지만 상복이 지지리도 없는 선수로도 유명하다. 앞선 88년도에도 후반기에 어느정도 타석에 들어가 서있기만 했어도 타격왕 타이틀은 따논 당상이었는데...
전년도 너무 힘을 썼던 탓일까 95시즌 팀의 성적도 하락했고 김동기또한 부상과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66경기에 출전해 1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부진을 면치 못했고 다음해 새롭게 바뀐 현대에선 48게임밖에 출전하지 못한 채 은퇴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그의 마지막 위업은 96년 5월31일 인천 삼성전에서 1천게임 출장 달성. 이는 프로 19번째이며 힘든 포수자리로는 이만수 이후 두 번째이다.
은퇴 후 소식이 잘알려지지 않았던 그는 안산중학교에서 지도자로 활동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리곤 또 팬들에게 그의 모습을 노출시키지 않고 있어 그의 소식을 궁금해 하는 팬들을 아쉽게 하고 있다.
*짠물생각 - 김동기 같은 인천야구의 대스타가 소리소문 없이 팬들앞에서 사라져간게 너무나 안타깝다. 그동안의 활약과 인천팬들의 정서를 생각한다면 은퇴식 정도는 해줘야 했을텐데... 인천 프로팀에서 지도자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어찌됐건 김동기는 비록 골든글러브를 탄적도, 홈런왕을 차지한적도, 3할을 친적도 없지만 인천팬들의 기억속엔 가장 훌륭한 포수, 무시무시한 강타자로 기억된다. 05.01.15 <통산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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