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사면(赦免), 그것은 法보다 높은 가치의 상징인가?(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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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24.08.19)
사면(赦免), 그것은 法보다 높은 가치의 상징인가?
/원현린 주필(主筆)
원현린 주필
정부는 광복절을 맞아 15일자로 중소기업인, 운수업 종사자 등 서민 생계형 형사범과 전 공직자, 정치인 등 1천219명에 대한 특별사면(特別赦免)을 단행했다. 이날 특사로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비롯한 다수 정치인들이 복권 조치됐다. 명분은 사면이 단행될 때마다 내세우곤 하는 국민 대통합 실현이다.
김 전 지사를 비롯한 복권이 단행된 특정 인사들을 놓고 각 정치진영에서는 이해득실에 따라 찬성과 반대로 나뉘기도 했다. 겉으로는 환영한다 하지만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들을 한다. 그 잣대는 오로지 각자가 처한 입장에서 재는 정치적 유불리다.
김 전 지사의 경우 복권되자마자 차기 대권 주자 반열에 올랐다. 그것도 여론조사상 후보군 가운데 상위군에 속하는 결과가 나왔다.
사면, 이것도 타이밍인가? 한 정치인의 복권을 놓고 정치권에 비상이 걸리다시피 했으니 하는 얘기다. 향후 대선판을 뒤흔들 것이라느니, 정계가 긴장하고 있다. 야권 내 새로운 정쟁의 씨앗이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사면 복권 대상자가 정치권의 협상물이 돼서는 안 되겠다.
성실히 법을 지키며 일상을 영위하는 선량한 시민들에게 허탈감만 안겨 주는 정치인 사면 복권이다. 오늘도 국민 통합은커녕 나라의 평온을 깨고 정치 분란 키우는 정치인에 대한 사면 복권을 제외하자는 여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면으로 풀려나 복권된 정치인들은 자성·자숙하기보다는 억울한 옥살이였다며 절규한다. 한풀이 정치를 할 날만을 기다리는 태세다. 이들에게 있어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고쳐 착하게 됨을 일컫는 개과천선(改過遷善)은 낯선 문구다.
여기서 사면 복권 대상자 중 정치사범 배제를 고려할 때가 됐다는 말이 타당성을 얻는다. 일반사범의 경우 범죄행위 당시 피해자는 상대방 한 사람이거나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한 정치인이 저지른 범죄는 그 폐해가 국민 전체에 미치기 때문이다.
사면의 시원(始原)은 오래다. 고대(古代)에 우연한 사건이 신(神)의 뜻으로 여기던 시절, 예컨대 사형수의 목을 매는 밧줄이 끊어지거나 참수하는 칼이 부러지는 경우 범인을 석방하는 경우가 그것이라 하겠다.
우리의 경우 일찍이 삼국시대에 사면제도가 시행됐던 기록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보인다. 삼국을 통일한 후 단행한 신라 문무왕의 사면령에 상세 내역이 전해진다. 전재해 본다.
"이제 두 적국이 평정되고 사방이 편안하여… 국내의 죄수를 특사하여 총장(總章) 2년 2월 21일 새벽 이전에 오역(五逆)의 죽을 죄를 범한 자를 제외하고 현재 갇혀 있는 자는 죄의 대소를 막론하고 다 놓아 주며 전번 대사령이 있은 이후 죄를 범해 관직을 박탈당한 자도 아울러 복직케 하고 도둑한 자는 그 몸만을 석방하고… 백성 가운데 집이 가난하여 남의 곡식으로 사는 자, 흉년이 든 자는 원금, 이자 다 탕감하고 풍년이 든 고장에 사는 자는 금년 추수기(秋收期)에 가서 원금만을 반환하게 하고 이자는 받지 말며, 이제부터 한 달을 한하여 소속 관원은 받들어 시행하라."
이처럼 사면제도는 고대국가에서도 행해졌다. 상기에서 보듯 ‘죄를 범해 관직을 박탈당한 자도 아울러 복직케 하고’라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에도 복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면에 대한 학자들의 이론은 많다. "사면은 특별한 성질을 가진 정법(正法)에의 수단이라 생각된다. 사면은 기본 원칙에 따라 운용되는 법적 자선(慈善)"이라는 독일의 법철학자 구스타브 라드부르흐(G.Radbruch), "사면은 법보다도 더 깊은 원천(源泉)에서 공급돼 법보다도 높은 곳에 도달하는 가치 있는 것의 상징"으로 표현한 예링(Rudolf von Jhering) 등이 그들이다.
사면을 아무리 미화(美化)한다 해도, 사법부를 무력화시키고 국민의 법감정에 거슬리는 사면은 자제돼야 마땅하다.
특사(特赦)의 경우 일반사면과 달리 국회 동의가 필요치 않아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자의적으로 언제든지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다. 때문에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아무리 고유 권한이라 하지만 법의 정신을 넘어서면 그것은 통치행위(統治行爲)라 해도 권한 남용이 된다. 추후로 단행할 사면은 조리(條理)와 경위(涇渭), 상식(常識)에 입각해서 행할 것을 거듭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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