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이현준(83회)[항동에서]/학교 상점(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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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24. 8. 8)
[항동에서] 학교 상점
/이현준 영화국제관광고등학교 교장
▲ 이현준 영화국제관광고등학교 교장
1980년대 초 등장한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행동을 '심리'와 '감정'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행동의 결과를 규명하려는 경제학의 한 분야다. 인간은 선택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합리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요소도 비중 있게 작용한다는 논리이다.
과거 표준화된 교육은 하나의 규정 범위 안에서 하나의 교육과정, 하나의 평가 방법을 통한 공급자 중심의 교육이었다. 학생의 심리와 감정보다 합리적인 가치를 일괄되게 적용하는 수월한 교육 방법을 선택하였다. 학교 안의 모든 사물과 문화는 줄이 잘 맞춰져 있고 같은 모양이었다. 나란히 배치된 사각형 교실 안에서 표준화된 문화에 순응하고 들어서는 학생은 좋은 학생이었던 것 같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이런 시대적 가치와 문화에 이미 익숙한 터라 표준화된 교육 문화를 최선의 가치로 인지하고 수용하는데 문화적 충돌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였다. 대량생산된 획일적 문화와 가치보다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는 시대를 맞이한 지 오래다. 하지만 학교 현장은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며 계층 간의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교권과 학생 인권이 접점을 찾지 못하며 공교육은 갈등과 불신의 아이콘이 되었다.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한 기업과 상품이 이미 과거의 화석이 되어버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고객의 감정과 심리를 아는데 기꺼이 많은 노력을 게을리하거나 간과한 대가는 기업의 생존과 상품의 생명주기를 위협하였다. 이런 세상 한복판에서도 학교는 너무 느림보였다. 학생 생활지도와 교육은 합리적인 가치가 선행되고 개인의 심리와 감정은 배제되거나 멀리 뒷순위에 위치한 공급자 중심의 학교 교육은 이미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이미 이 변화에 둔감한 학교와 교사는 힘겨운 시간을 겪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서는 수년 전 무서운 발견을 하였다. '교사의 열심'이 학생을 바보로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 발견에 우리 구성원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교사와 학교가 생각하는 가치를 열심히 생산하여 공급하지만, 학생들은 아무런 효용과 감흥이 없었던 것이다. 공급자 중심의 '교사의 열심'이 오히려 학생들을 저성장의 늪으로 빠뜨리는 학교는 상점 주인의 고단함만 있는 텅 빈 상점과 같았다.
우리 학교는 발 빠르게 학생들 세대의 감정과 심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며 “자율성장문화학교” 사업을 만들어 운영하였다. 학생들에게 권한을 대폭 이양하고 학생들 스스로 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학교 운영에 학생 세대의 감정과 심리적인 것들을 최우선에 두기 시작하면서 학교는 맛집이 되어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학교는 공교육을 수행하는 권위가 있는 기관이라는 인식과 전통적인 교사관에 머문다면 학교와 교사의 권위는 더 빠르게 붕괴할 것이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변화를 요구하며 가르치는 것이다. 변화를 가르치는 교사가 변하지 않는다면 그 교육은 죽은 교육일 것이다.
“학교는 상점이다”라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학생이 소비자라고 인정하고 소비자의 마음을 유쾌하게 파고드는 연습이 필요하다. 학생 세대의 감정과 심리적인 요소를 직관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양한 감정과 요구를 담을 수 있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행동경제학은 전통경제학의 합리적인 요소의 가치를 전면 부정한 논리가 아니다. 합리적인 요소와 감정의 요소의 균형 있는 배합을 주장하는 논리이다. 우리 한국 사회는 접점의 균형과 여러 색의 조화에 항상 서투른 것 같다. 기존의 합리적인 요소를 편향적으로 수용한 학교가 학생 세대의 감정과 심리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조화로운 접점을 잘 찾아 맛집 상점처럼 주인도 소비자도 행복한 학교가 되었으면 한다.
2024.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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