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중국에서는 외국 영화 제목을 철저히 번역한다. 원래의 제목에 충실한 직역이 많으나 직관적으로 이해 가능한 의역도 많다. ‘어벤저스’는 ‘복수자들’,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 대장’, ‘헐크’는 ‘녹색 거인’, ‘토르’는 ‘뇌신’, ‘브레이브 하트’는 ‘용감한 마음’ 같은 식이다. ‘라이언킹’은 ‘사자왕’, ‘라푼젤’은 ‘장발 공주’다. 외래어를 사용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중국의 어문 정책이기도 하지만 정치·경제 영역에 들어가면 전혀 그렇지 않다. 왜곡되거나 굴절되는 건 다반사고 심지어는 거꾸로 헤아려야 할 때가 대부분이다. 

최근 동남아의 미얀마에서 벌어진 군부 쿠데타와 이에 저항하는 민주 시민들의 거센 도전에서 비롯된 이른바 ‘미얀마 민주화’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들은 이 문제에 관해 "양쪽의 자제를 촉구하며 대화로 문제를 풀라"는 점잖은 성명을 내놓고 있다. 속셈은 전혀 다르다. 군부 독재를 은연중 부추기며 미국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을 견제하는 카드로 사용할 뜻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외신들은 옛 수도였던 양곤에서 서북쪽으로 400㎞ 떨어진 차우크프라는 도시의 변화를 주로 보도한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인구 1만여 명의 자그마한 어촌이었던 이곳에 지금은 동남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석유·천연가스 터미널이 세워져 있다. 윈난성 쿤밍에서 이 도시까지 길이 771㎞, 1천12㎞에 달하는 송유관과 가스관이 설치돼 중국은 연간 2천200만t의 원유와 연간 120억㎥의 천연가스를 각각 운송하고 있으며 송유관과 가스관이 지나는 길에 고속도로와 철로를 건설해 이른바 ‘차이나·미얀마 경계회랑’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설과 계획들은 미얀마를 53년간 철권통치한 네윈 육군 총사령관 시절에 합의하고 완성한 것들로 민주화의 심볼인 수치 국가 고문과는 상관없이 이뤄졌다. 물론 중국은 수치가 집권한 이후에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건 사실이지만 민주화와는 별개의 일이었다. 오히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무려 83.2% 득표율을 기록하며 압승한 수치 정권에서 군부의 영향력을 최소화시키는 문민정부 시대가 예고되자 군부의 쿠데타 계획을 물밑에서 지원해 이미 획득한 정치·경제적 이득을 공고화하려 했을 것으로 보는 견해에 수긍이 간다. 

자칫 막대한 이권을 빼앗길 위험에 처한 군부와 배짱이 맞아 떨어진 셈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회가 연일 미얀마 사태에 대해 군부의 무차별 사격과 마치 적군 대하듯이 시위 시민들을 학살하는 진압 방식에 대해 엄중(?) 경고하고 있으나 실효성 있는 대책은 전혀 없는 까닭이 뭘까?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내정 간섭 운운하면서 미얀마 군부를 거들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야심찬 계획과 미·중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든 우군을 확보하려는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민주주의와 인권을 앞세우는 문민정부보다는 일사불란하게 시민을 통제하는 독재 군사 정권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건 분명하다. 당연히 속셈을 숨기고 미얀마 발(發) ‘쿠데타와 민주 시위’를 ‘대화와 타협’으로 거짓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다. 중국이란 나라는 자국 이익이 걸린 사안에 대해 무조건적이고 저돌적이다. 

우리가 사드 배치 문제로 겪은 일은 어쩌면 빙산의 일각처럼 피해를 입은 부분이 작다(?)고 할 수 있다. 하긴 국제정치하에서 이런 모습은 중국만이 아니라 강대국이란 나라의 본모습일 터. 중국 관영매체들은 작년 하반기부터 ‘동승서강(東昇西降 : 동쪽은 떠오르고 서쪽은 내려간다)이 세계적 추세’라면서 몇 년 이내에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고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된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으며 시진핑 국가주석도 올 1월 장관급 고위 간부 토론회에서 "지금 세계는 100 년 만의 큰 변화를 겪고 있으며 시(時)와 세(勢)가 우리 쪽에 있다"는 요지의 호언을 했다. 

물론 그들은 1위의 경제대국이 될지라도 미국의 군사력과 달러에 대한 도전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런저런 가능성과 한계를 잘 알고 있기에 우리는 더욱 조심해서 그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층 더 자국 위주의 막무가내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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