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대합창 (大合唱)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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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2. 9.14)
조우성의 미추홀 - 대합창 (大合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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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하늘에 찬송가가 처음 울려 퍼진 것은 1885년이었다. 그해 7월7일,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가 일본에서 주문한 풍금이 도착하자 오늘날의 내리교회 인근 거처에서 '만복 근원의 주 하나님!'이란 찬송가를 봉헌했던 것이다.
▶이날의 연주는 한국교회사에서뿐만 아니라 현대음악사 측면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보인다. 이를 시작으로 인천의 각 지역으로 퍼져나간 예배당에서 찬송가가 불려 졌는데 이는 시쳇말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종래의 노래에 병창(竝唱)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아설순치후(牙舌脣齒喉) 5음계를 뛰어넘어 수백여명이 함께 7음계의 들판으로 나가 화음의 꽃을 피웠던 것은 전혀 다른 음악적 체험이었던 것이다.
▶그 후 교세가 번창해 교회안에서 찬양하던 대원들이 민간에 나가 활동하면서 합창문화를 일구어 낸 것은 지역문화 발전사의 중요한 대목이다. 호산나합창단 등 연조가 오랜 합창단이 건재해 온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교회는 인적 자원을 꾸준히 배출했다. 가령 인천내리교회는 6·25전쟁 직후인 1954년 우리나라 음악사상 최초로 헨델의 메시아를 전곡 연주해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메시아를 지휘했던 작곡가 최영섭 선생은 후에 국민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해 인천 음악문화의 명예를 드높였는가 하면, 그같은 분위기 속에서 내리교회를 다녔던 윤학원 감독은 현재 한국합창계의 대부로서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인천의 '합창문화'를 보면 진정한 의미의 지역문화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동(洞) 단위 합창단을 만들고, 그를 토대로 해 2014년 아시안게임 올림픽 개막식 프로그램으로 2014명이 출연하는 '대합창(大合唱)'을 정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개·폐회식 행사 자체를 외지업체에 다 맡기겠다는 아시안게임조직위의 안은 단견으로 보인다. 설혹 능력이 부족하다 해도 지역업체를 참여시켜 경험을 쌓게 해야 훗날의 큰 무대를 인천의 힘으로꾸며 갈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잠깐 빛나 보이려고 총감독, 기획자, 출연자 등을 외지에서 두루 꾸어올 수는 없다. 인천은 서울 문화예술의 식민지가 아니다.
/주필
2012년 09월 1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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