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지용택(56회) 칼럼/방천(防川)을 다녀와서(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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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2.10.10)
방천(防川)을 다녀와서
지용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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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 이십여일 쯤 전에 길림성 연길, 훈춘, 방천을 다녀온 느낌을 보고하겠습니다. 조선독립군의 근거지인 연길은 수년전과 달리 차가 많아져서 도로 체증현상이 자주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격세지감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나날이 생활이 향상되고 있었으며 발전하는 모습이 저절로 체감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보고 싶었던 것은 둑 방(防) 내 천(川) 방천이었습니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동해쪽 땅끝마을입니다. 방천에서 20㎞ 정도 더 동쪽으로 가면 동해입니다. 망원경으로 보면 수평선이 보일 듯합니다. 중국이 동쪽으로 뻗어나오다 이 20㎞가 모자라 그토록 갈구하던 동해에 항구가 없습니다. 러시아도 동해에 항구가 있고, 일본은 바다건너 수많은 항구가 있으며 한국도 함경북도로부터 동해안, 남해에 이르는 곳곳이 모두 항구입니다.
동해에 항구가 없다는 것은 글로벌시대에 얼마나 안타까운 지형이겠습니까? 그래서 중국은 방천 50㎞ 지점인 배후부지 훈춘에 대형물류단지를 조성하고, 훈춘에서 다시 50㎞ 거리에 있는 북한 나진항에 50년 차관으로 4부두, 5부두, 6부두를 빠른 속도로 신설하고 있습니다. 나진항에 있던 기존 1부두는 러시아의 영향 아래에 있고, 2부두는 북조선이, 3부두는 이미 중국 관리하에 있습니다. 뒤이어 4·5·6부두가 신설될 계획이기 때문에 동해에는 이미 러시아·중국·일본·한국이 동시에 경쟁하는 높은 파도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상선만 드나들고 있는 동해에 군함이 서로 교차하고 대치하면서 일어날지 모를 비극을 상상해 보아야 합니다. 1905년 5월27일 일본연합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가 러시아의 지노비 페트로비치 로제스트벤스키(Zinovy Petrovich Rozhestvensky) 제독의 발틱함대를 대한해협에서 대파한 사건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천앞바다에 이어 동해안에서 일어난 러일전쟁이며 러일전쟁이란 조선왕조 말기에 힘이 없어 주권이 바로서지 못할 때 우리 영토에서 일어난 제국주의간에 조선과 만주를 두고 벌어진 쟁탈전이었습니다.
청나라가 기울어 갈 때 이곳 관리 우따징 이 세운 토자패(土字牌, 이곳이 중국인이 사는 곳이라는 표시)를 보는데 관람료를 받습니다. 이 패 옆에는 러시아가 지팡이 높이의 경계비를 현대감각을 살려 총천연색으로 굵지 않은 막대기로 세워 놓았습니다. 가시없는 녹색철책이 서 있는데 경계비 있는 곳만으로 한정된 것 같습니다. 용호각이라는 전망대는 건물 8~9층 정도의 높이가 됩니다.
좌측으로는 러시아의 넓은 땅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우측으로는 두만강이 도문과 달리 수량도 많고 깊으며 강건너 북한땅에는 수목이 산을 덮어 푸르렀습니다. 저 멀리 조아대교(朝俄大橋)가 보이고 그 앞으로 더 나아가면 동해바다가 보일 것입니다.
삼국이 교차하는 곳이 이렇게 평화롭다니 유럽의 어느 국경지역에 온 듯합니다. 총도, 대포도, 탱크도 보이지 않습니다. 중국은 이곳을 관광단지로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중국당국이 길림성의 훈춘을 비롯해 이 지역을 중점적으로 발전시킨다는 전략을 세운 지 오래되었다는 소식도 들어 알고 있습니다.
중국은 동아시아에 대해 이렇게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의 정치적·경제적 구상은 무엇일까 생각하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용호각에서 되돌아 4㎞ 정도 오다보면 오른쪽으로 길가에 '철벽방천(鐵壁防川)'이라고 붉게 새긴 커다란 돌비석이 있고, 그 안쪽으로 볼품없는 기념관이 있습니다. 1938년 7월15일부터 약 한달간 소련군과 조선독립군이 협력해서 일본관동군과 싸워 승전한 곳입니다. 장고봉전투에서 일본군이 패전한 이후 일본은 주력군을 대륙에서 동남아로 옮기게 됩니다. 지금도 장고봉산 밑에는 조선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념관을 건설하기 위해 일손이 바빠 보입니다. 중국은 어디를 가든 좀더 깊이 있게 연구하면 우리 선조들의 독립의지가 곳곳에 배어 있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위대한 조상들의기개가 살아 전해지는데도 분단 60여년이 지나도록 통일은 고사하고 화해의 기미도 없다니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2012년 10월 10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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