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시계(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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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2. 9.21)
조우성의 미추홀 -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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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하이테크 국가였다. 거금 569년 전, 인류문화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과학성, 철학성, 실용성을 갖춘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명성은 길이 빛난다. 알파벳과 함께 컴퓨터 운용에 가장 적합한 문자라는 사실에 이르러서는 새삼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조선시대에 만든 시계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정밀성, 뛰어난 제작술, 창조적 디자인은 한국 과학기술사의 한 장면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그 중 세종 때의 '앙부일구'가 대표적인데, 이 해시계는 시각이 정확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대부분의 해시계가 시반(時盤)에 꽂은 수직 시표(時標)의 그림자를 보고 시간을 아는 것인 데 비해, '앙부일구'는 시반이 오목한 반구형으로서 계절까지 나타내는 동시에 저잣거리에 설치한 최첨단 공중(公衆) 시계였던 것이다.
▶중국유학을 다녀온 장영실에 이르면 시계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을 갖게 된다. 1434년에 발명한 '자격루(自擊漏)'는 "15세기까지의 모든 기계기술을 집약한 최고의 자동 시보 시계"였다는 게 후세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평가이다.
▶그러나 그같은 기술적 성과가 금속식 기계시계에까지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서양식 자명종이 이 땅에 첫 선을 보인 것은 1631년 조선 인조때이다.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 온 정두원이 가져 왔다고 하는데 반상 가릴 것 없이 큰 충격을 받았으리라 여겨진다.
▶자명종이 소형시계로 바뀐 것은 그 한참 뒤의 일이다. 개화기 신문물의 총아로서 시계는 선풍적 인기를 누렸지만, 예나 지금이나 고가였다. 자랑도 대단했다. 일부러 머리가 아픈 척 팔로 이마를 짚어 시계자랑을 했다는 에피소드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겉은 도금이 뻔지르르 한 유명브랜드인데 알맹이가 싸구려 가짜인 '덴뿌라 시계'가 나돌았고 광복 후에는 미군용 '항공시계'가 시간도 잘맞고 앙증맞아 인기가 높았다.
▶그나저나 시계는 시각을 정확히 가리키면 만점이다. 값비싼 금시계를 찼다고 인생이 하루아침에 황금빛을 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신문마다 '광고'인지, '기사'인지 구별 안가는 고가의 낯선 시계선전이 연일 요란하다. 밥술이나 좀 먹게 됐다고 부리는 어쭙잖은 사치다.
/주필
2012년 09월 21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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