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태풍(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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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2. 9.19)
조우성의 미추홀 - 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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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을 간지로 따지면 을축년(乙丑年)이다. 액운이 낀 해였는지, 한 해에 4번이나 홍수가 일어나 '을축년 대홍수'란 명칭까지 생겼다. 1차는 7월7일 대만 부근에 발생한 태풍이 중부 지방에 300∼500㎜ 호우를 뿌려 한강, 금강, 만경강, 낙동강 등이 범람했다.
▶그 일주일 뒤인 14일, 똑같은 코스의 태풍이 중국을 거쳐 황해 북부 근해를 지나가며 우측에 속한 임진강, 한강 유역에 무려 650㎜의 집중 호우를 쏟아부었다. 한강 인도교의 수위가 11.6m에 달하고, 용산역의 철도청 청사와 열차가 모두 물에 잠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8월에 들어서도 중국 양자강 유역에 발생한 태풍이 관서지방을 강타했다. 대동강, 청천강, 압록강 유역이 큰 피해를 당했다.
▶4번째 태풍은 8월말 필리핀 쪽에서 발생해 9월6일 제주도, 목포, 대구를 지나 동해로 사라졌다. 역시 낙동강, 영산강, 섬진강이 범람했다. 연이어 몰아친 태풍으로 647명이 죽고 6363채의 집이 사라졌다. 하늘이 원망스러운 해였다.
▶그러나 인천지역의 피해는 타 지역과는 달리 미미해 창망한 중에도 위로가 됐었다고 전한다. 1925년 7월16일자 동아일보는 "인천 송현리의 매축 공사장이 침수돼 3명이 부상당하고, 16호가 침수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달 20일에는 "인천의 수도수원지인 노량진 수원지가 파괴돼 이를 복수할 결사대를 원정 파견"하였고21일에는 "아침부터 하천 범람으로 경인선 소사-오류동 간이 불통됐으나 복구작업에 들어가 이날 오후 한 시 반부터 개통했다"고 전했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 매년 크고 작은 태풍이 내습해 그렇지 않아도 삶이 곤고로운 국민들을 애태우게 하지만 풍수해 대책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나아진 것 같지가 않아 안타깝다.
▶다만 2003년 눈을 부릅뜨며 지나간 '매미', 문학경기장 지붕까지 뜯어간 난폭자 곤파스, 한밤에 도시의 나무와 유리창을 무섭게 흔들고 깨뜨린 '볼라벤', 비를 흩뿌리며 멀리 비켜간 '산바' 등이 크고작은 피해를 주긴 했지만 사망자를 내지 않았던 것은 천만다행이라 하겠다. 전 해군사관학교 조일도 교수가 지적한 그대로 "인천은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항구"이다. '인천'서 사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다.
/주필
2012년 09월 19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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