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정명(定名) 600년(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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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2. 9. 5)
조우성의 미추홀 - 정명(定名) 6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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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 '인천'이 오늘과 같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조선 제2대 임금이었던 태종에 의해서였다. 그때의 지명 '인주(仁州)'를 '인천(仁川)'이라 개명한 것이 태종 13년, 서기로 1413년이니까 내년이면 만600년이 된다.
▶더불어 인천이 항구로서 문을 연 1883년을 기점으로 보면, 내년이 개항 130년이 된다. 근대 서구자본주의의 변방에 편입되면서 인천은 도성의 개항장으로서 우리나라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철도, 우편, 전화, 무선통신, 등대, 기상관측, 호텔, 정미소, 서양식 건물, 무역회사, 세관 등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제도와 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왔고, 그에 따라 타 시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자리가 창출되었던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일자리에 사람이 몰려들자 '인천러쉬'가 시작됐다. 인천이주민의 원조를 저 고구려의 왕자 비류라고 한다면, 개화기에 제 삶을 개척하기 위해 인천을 찾은 이들은 이주 다변화의 제1세대라고 하겠다.
▶그렇게 인천은 포용성, 다양성, 역동성을 지니면서 이주민의 도시, 신문화의 도시, 항구도시로서 성장을 거듭하였고, 6·25전쟁 직후에는 피란민이 대거 옮겨와 살아 '팔도합중시(八道合衆市)'가 되었다.
▶이는 인천의 정체성을 읽을 수 있는 키워드이다. 출신지에 따라 사람을 가르는 망국적 지역색을 조장하기에는 인구구조가 다양했고, 새로운 일자리들은 '지역'보다는 '능력'을 상위가치로 인식하게 했다. 그에 따라 인천은 지역색 없는 도시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지금껏 이주를 용이하게 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한가지 실례로 인천은 출신지에 관계없이 그때마다 능력에 따라 선출직을 뽑아 왔던 것이다. 말뚝만 박아도 당선된다는 식의 '민주주의 낙제생'들과는 거리가 먼 역동적 정치경험을 자산으로 알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인천국제공항, 인천항, 인천경제자유구역을 축으로 하는 21세기의 비상을 약속받은 땅이요, 아득한 때 이미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성지요, 지진과 태풍까지 비켜가는 낙토인 것이다. 지난 세월 대한민국 제3의 대도시로 성장한 우리 고장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그를 함께 경축하며 내일을 꿈꾸는 자리가 '정명600년' 잔치이다. 뜻깊은 행사라 생각한다.
/주필
2012년 09월 0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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