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투표율(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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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2.11.23)
조우성의 미추홀 - 투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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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남구 문학동에 있던 '인천도호부'는 1883년 개항 때 폐지됐다. 대신 '인천감리서'가 설치되면서 인천의 중심지가 중구(中區)로 옮겨졌다. 중구에는 부두, 세관, 호텔, 우체국, 전화소, 정미소, 성냥공장 등 갖가지 신문물이 밀려왔고, 그에 따라 새 '일자리'가 생겼다.
▶전국 각처에서 인천 개항장으로 사람들이 몰려왔었다. 이는 역사상 보기 드문 '이주 현상'으로 그 무렵부터 인천은 호남, 충청, 영남인 등으로 복합적 인구 구조를 갖게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일자리를 '출신지'에 따라 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호텔 종업원은 외국어 구사 능력, 우편배달부는 한자 해독 능력, 부두 노동자는 건장한 체력, 정미소 직원은 기계기술에 대한 이해력의 소유자일 밖에 없었고, 그 같은 능력에 따른 인력의 배치가 근대적 인간관을 싹트게 했다는 점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더불어 망국적인 '지역색'이 자리 잡지 못하게 되자 인천은 '일자리가 있고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도시'로 알려져 오늘날까지 매년 인구가 느는 '이주민의 도시'가 되었다. '토박이'가 전체 인구의 30여 %도 안 되는 상황에 이르른 것이다.
▶흔히 인천을 '합중시(合衆市)'라 표현한 것은 그런 역사적 배경과 인구 현상을 잘 드러낸 비유어라 할 수 있다. 역대 시장 가운데 '토박이'가 한 명도 없었고, 축구단의 이름마저 '유나이티드'로 정했던 것은 다 인천의 '해불양수적(海不讓水的) 포용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시민 가운데는 전근대적 뿌리의식을 버리지 못한 채 '인천사람되기'에 주저하는 이들이 있는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자화상이다. 그 결과의 하나가 제 삶과 지역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인물을 선출하는 데도 상당수가 투표를 하지 않는 기현상이다.
▶결국 유권자 212만명 가운데 1백여 만 명이 투표를 안 해 줄곧 '지역 권력 창출의 의지'를 희화화시켜 왔던 것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인천의 인구는 국가를 이룰 수 있는 규모인 것이다. 그럼에도 중앙 정부나 정치권으로부터 모욕적 차별을 받아 온 것은 자업자득적 측면이 강하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투표율을 높여 그를 불식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속 뵈는 '캐스팅 보트' 역을 하자는 게 아니다. 위상을 찾자는 것이다.
/주필
2012년 11월 2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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