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국민(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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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2.11.12)
조우성의 미추홀 -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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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강점기에 일본어 사용을 강제했다. 학교에서는 칼 찬 교사들이, 일상에서는 경찰과 헌병이 윽박질렀다. 그보다 앞서 어용학자들이 조작해 낸 '일한 동조론(日韓同祖論)'을 내세워 '궁성요배'를 하게 했고, '황국신민의 서사'를 온 백성이 암송토록 했다.
▶조선백성들은 그들에 의해 '신민(臣民)'으로 불렸다. 국민정신총동원 인천부연맹이 발행한 '황국신민의 서사(誓詞)' 선전지는 "우리는 황국신민이다. 충성으로서 군국(君國)에 보답하련다." 등 세가지 조목으로 되어 있다.
▶일제는 간특하게도 '아동용 서사'를 따로 마련해 소리높여 외치게 했다. 광복 후에야 그 앵무새 소리를 듣지 않게됐는데, 1949년에 그와 유사한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딸"로 시작하는 '우리의 맹세'가 등장했다. '신민'이 '대한민국의 아들딸'로 바뀌었지만, 아직 '국민(國民)'은 보이지 않았다. '국가의 아들딸'이 있을 뿐이었다.
▶당시 출판사들은 모든 책말미에 그를 실어야 했다. 거부할 경우, 판매취소 또는 입건되기도 했다. 자나깨나 '대한민국의 아들딸'로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소설가 김동리 선생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나는 이것을 볼 때마다 일제시대 소위 '황국신민의 서사'라는 것이 연상된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딸' 하고 시작하는 구기(口氣)나 1, 2, 3 세 조목으로 나누어진 조직규모나그 내용에 있어서까지 여간 비슷하지 않다."(1959년 4월1일 경향신문)/'우리의 맹세'는 결국 1960년9월 문교부에 의해 폐지됐다. 그 8년후에는 '국민교육헌장'이 제정, 공포되었다. 거기에 비로소 '국민(國民)'이 등장했다. '신민'에서 '아들딸'을 거쳐 '국민'이 됐으니 크게 발전한 것처럼 보였으나 '서사'처럼 학교에서 통째로 외어야 했다.
▶'국민에 대한 국가 우위'나 일제의 '교육칙어'를 본떴다는 비판에 직면해 그 역시 1993년에 자취를 감췄다. 이 과정에서 보면, 이 땅의 백성들이 '국민'으로 칭해진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최근에야 '국민'이 황송한 대접을 받고 있다. '국민'을 간판으로 내세우는 대선후보에 의해서 비롯된 현상이다. 그러나 역대 대선후보 치고 '국민의 뜻'을 받들지 않겠다는 이가 없었던 정치현실도 더불어 떠오른다. 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또 누구일까.
/주필
2012년 11월 12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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