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인하대 신 캠퍼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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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2.11.21)
조우성의 미추홀 - 인하대 신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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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의 교명은 '인천'의 '인(仁)'과 '하와이'의 '하(荷)' 자에서 따온 것이다. 교명에 학교설립의 배경을 확실히 밝힌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설립의지와 한인학교 부지를 팔아 기금의 일부를 댄 하와이 동포들의 애틋한 조국애가 씨앗이 돼 맺어진 교육적 열매였다.
▶시와 시민들도 지역 초유의 대학 설립에 적극 동참했다. 시는 현재의 부지를 내놓았고, 시민들은 성금으로써 벽돌 한장, 한장을 쌓아올렸으며, 역외의 많은 국민들도 그에 동참했다. '미국의 MIT에 버금가는 공대를 만들어 나라를 부강케 하자는 꿈을 실현시킨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때의 민족대학이 '고려대'라면, 광복 후의 민족대학은 '인하대'였다고 필자가 주장해 온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온 국민이 나라의 내일을 생각해 함께 세운 대학은 사실상 '인하공과대학'이 유일했던 것이다, 이를 부정할 이는 없으리라 믿는다.
▶그렇게 출발한 인하공대가 종합대로 성장해 오늘날 국내 10위권의 '인하대학교'가 됐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급속한 발전에 따른 '성장통(成長痛)' 또한 적지 않았다. 애초의 창학(創學)의 뜻에서 본다면 '꿈을 잃고 안주했던 표류기간'도 없지 않았다.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도 부족했다. 개교 60년을 앞두고 내린 신도시 캠퍼스 이전에 대한 대응들은의사결정 과정의 부실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런 연유로 지역적 기득권을 잃은 채 허둥지둥 외지 대학의 뒤를 쫓아다니다가 겨우겨우 얻어낸 것이 '송도 5공구의 부지 6만8000평'이었다.
▶그같은 결과를 빚어낸 대학이나 인천시나 모두 '인하대'의 역사적 설립과정과 그 존재이유를 자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인하대가 어떻게 세워진 대학인데, 인천서 이 정도의 대접밖에 받지 못하는가' 하는 자괴감에 많은 이들이 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판국에 '엠코 테크놀로지' 건이 터졌다. 이에 총동창회를 비롯해 교수회의, 총학생회 등은 '11-9 공구' 이전을 극력 반대하고 나서는 한편 총장, 재단이사장에게 재원조달 계획의 공개를 촉구했다. 인하대가 경제청의 의도대로 간다면 '송도캠퍼스'는 빨라야 2020년에나 개교한다는 게 일반적인 판단들이다. 문제해결에 귀추가 주목된다.
/주필
2012년 11월 2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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