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매일경제와 일본의 닛케이, 중국의 환구시보 세 매체가 최근 한중일 3국의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들 상대로 ‘불안 요인’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선 한국의 경영자들은 ‘코로나19 파장과 과도한 규제, 정치·정책 불안’을 지적했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영자들이 ‘중·미의 적대적 갈등과 분쟁 요인’을 꼽았고, 일본의 경영자들이 ‘코로나19에 따른 내수 시장 불안정과 수출 부진이 염려된다’고 했는데 비해 국내 정치·정책 불안을 꼽은 건 분명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최근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이나 이익공유제 같은 기업 옥죄기가 경영자들에게는 과도한 조처로 보인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세계 주요국 가운데 이런 규제 조항을 법에 명시하는 국가는 한국 외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미 한국에는 안전과 보건, 환경에 관한 사업주 처벌을 명시한 법률만 60여 개에 달한다고 지적한다.
기업이 낸 재원을 기반으로 하는 ‘이익공유제’는 시장자본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하는 주장도 거세다.
사실 좋은 목적에 쓰기 위해서 대기업으로부터 적정 액수를 기부받는 게 뭐가 문제냐는 인식에서 시작됐고, 여론도 동조한다고 하지만 권력자들이 ‘좋은 목적을 위해서’라는 건 그리 믿을 바가 못 된다. 박근혜 정권을 붕괴시킨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 역시 좋은 목적을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대기업으로부터 온갖 뇌물성 기부를 받지 않았던가.
조지타운대의 클라인 교수는 국력이란 국토와 인구, 경제력·군사력과 함께 국가 전략과 국민의 의지로 구성된다고 했다. 경제력이 커지면 당연히 국력이 신장한다. 세계 1·2위 기업이 활약하는 우리의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이 승승장구하고 있음에도 스위스 IMD 등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세계 20위권에 머물고 있다. 경제력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부나 정치분야 경쟁력이 뒤떨어져 국가 경쟁력을 아래쪽으로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4년 전 우리는 문재인 정부 출범에 큰 기대를 걸었다. 박근혜 정권이 대기업으로부터 뇌물을 챙기다가 붕괴했으므로 새 정권에서는 기업과 시장의 자율이 존중될 것으로 봤고, 과도한 규제 타파와 기업 옥죄기 정책의 변화가 기대됐기 때문이었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모두 국가 경쟁력을 끌어내리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분쟁과 갈등이 부추긴 경우가 훨씬 더 많고 여야 할 것 없이 날만 새면 정쟁을 일삼는 그 버릇이 여전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사회구성원 사이에 신뢰는 나날이 줄어들고 대결 구도는 증폭됐다. 국력을 구성하는 중요한 무형자산인 국가 전략과 국민 의지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건 웬만한 국민이면 알고 있다. 코로나19가 초래한 점도 많을 터이고. 그렇다고 현재 집권세력의 변명(?)만 받아들이고 있을 수는 더더구나 없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기업의 부(富)가 고용 확대와 세금 납부 증가로 선순환이 이뤄져 주52시간 근무제나 최저임금 인상 같은 정책이 연착륙해야 함에도 경쟁력 약화만 불러왔다면 이는 정책 변화를 꾀해야 마땅할 일인데 미적미적거린 부분을 어찌할 것인가?
발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동시에 좀 더 차분하고 정밀하게 정책의 실행과 효과를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어떤 방책이 더 효과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으나 분명한 건 우리 기업의 경영자들이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정치·정책 불안을 꼽았다는 점에서 재삼 숙고할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자영업자 손실보장 법제화도 당연히 좋은 뜻을 위한 접근이다. 기재부가 ‘법제화한 나라를 찾기 어렵다’고 했을 때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고 호통치는 총리의 모습은 신선했다. 그렇다고 곧 조변석개하는 기재부를 보면 어이가 없다. 흔히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들 말한다. 거의 600만 명에 달하는 자영업자마다 형편이 천양지차인데 디테일을 해결할 방안 없이 법제화부터 한다는 건 득실을 따져 득보다 실이 클 가능성이 얼마든지 높다.
아무튼 이제부터라도 정부와 여야 정치권 모두 ‘이미 수많은 소를 잃었지만 그래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는 각오로 나라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입력 2021.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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