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사면(赦免)(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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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21. 1.12)
우리나라 사면(赦免)의 역사는 오래됐다. 고대 중국의 제도에서 도입된 것이지만 문헌에 ‘용서한다’는 뜻의 ‘사(赦)’자가 보이는 것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기록을 보면 세 나라가 공히 사면제도를 시행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삼국의 사면 사례를 보면 신라의 경우, 선덕왕(善德王) 2년 봄 정월 친히 신궁에 제사하고 대사령을 내렸다. 모든 주·군의 1년간 잡세를 면제했다.
고구려는, 산상왕(山上王) 2년 여름 4월 국내의 두 가지 죄 이하 죄수를 특사했다. 백제의 경우도 다루왕(多婁王) 28년 봄·여름 가물었다. 죄수를 사하여 죽을 죄도 용서해 주었다. 특히 삼국을 통일한 신라 문무왕이 단행한 사면령이 돋보인다.
"오역(五逆)의 죽을 죄를 범한 자를 제외하고 현재 갇혀 있는 자는 죄의 대소를 막론하고 다 놓아 주며 전번 대사령이 있은 이후 죄를 범해 관직을 박탈당한 자도 아울러 복직케 하고…"라는 상세 기록이 보인다. 이처럼 사면제도는 고대국가에서도 행해졌었다.
사면, 그것은 현행법상 대통령의 권한이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국가원수로서 권한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사면이란 형사소송법 또는 그 밖의 법률 규정에 의하지 않고 범죄자에 대한 형벌권의 일부 또는 전부를 포기하거나 형벌에서 발생하는 법률상 효과를 면제하는 작용을 말한다. 따라서 대통령의 이 권한은 엄격한 의미에서 행정에 관한 권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司法)에 관한 권한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이 헌법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독일의 대표적 법철학자 구스타브 라드부르흐(G.Radbruch)는 ‘사면’을 논하면서, 사면은 독일의 법 격언인 ‘사면 없는 법은 불법’이라든가 ‘사면은 법에 조력(助力)한다’고 하는 의미에서 하나의 법제도, 즉 ‘특별한 성질을 가진 정법(正法)에의 수단’으로서 표현된다고 생각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면은 예링(Jhering)의 말을 빌리면, "법의 안전판(Sicherheitsventi des Rechts)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세계에 있어서 법보다도 더 깊은 원천에서 공급돼 법보다도 높은 곳에 도달하는 가치 있는 것의 상징인 것이다"라고 정의를 내렸다.
우리 헌법은 제79조에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 일반사면을 명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사면·감형 및 복권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라고 명문화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법률이 바로 사면법(赦免法)이다. 동법에 의하면 특별사면 대상은 ‘형의 선고를 받은 자’이다(제3조). 특별사면의 효과로는 형의 집행이 면제된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에는 이후 형 선고의 효력을 상실하게 할 수 있다(동법 제5조).
연초부터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두고 찬반 양론이 갈리고 있다. 사면법에 의하면 특별사면 대상이 ‘형의 선고를 받은 자’이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면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그의 재상고심 선고가 예정된 오는 14일을 기다려야 한다.
사면은 역대 어느 정부에서나 국민 대통합이라는 등 명목하에 행해왔다. 이번에 특별사면 대상자로 거론되고 있는 두 전직 대통령도 재직시에 사면을 단행했었다. 지금 영어(囹圄)의 몸 상태에 있는 전직 두 대통령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한때 사면권자에서 이제는 사면 대상자 신세에 놓여 있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 사면 단행과 관련, ‘사면(赦免), 그것은 은사(恩赦)가 아니다’라는 제하(題下)의 글에서 "통치자의 은총, 은혜의 의미를 지니던 과거 왕조시대 사면과는 다르다. 사면, 그것은 좋은 제도이다. 하지만 남용돼선 안 된다. 법치국가이다. 오직 법에 의한 사면만이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었다.
이번에도 국민정서 운운하지만 언제는 국민감정이 기준이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다가올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의식한 사면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법에 의한 사면보다는 치밀한 정치적 이해득실 관계를 따진 계산하에 나온 것이라면 곤란하다. 아무리 제도가 훌륭하다 해도 그 제도를 농단하거나 남용한다면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
기호일보, KIHOILBO
202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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