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열 사람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퍼온글)
본문
퍼온곳 : 기호일보(20.12.21)
파우스트가 열쇠 한 꾸러미와 등불을 들고 감옥의 철문을 열면서 안으로 들어간다.
파우스트 ; 여기 이런 습기 찬 담 벽 뒤에 그녀가 살다니. / 마르가레테 ; (그 자리에서 몸을 숨기면서) 아아! 이걸 어쩌나! 사람들이 오는구나, 나는 참혹한 죽음을 당하는구나! / 파우스트 ; (나지막이) 조용히! 조용히! 내가 왔어요, 그대를 살리러 왔어요! / 마르가레테 ; (그의 앞에서 뒹굴면서) "당신도 인간이라면 저의 고통을 생각해 주세요! / 파우스트 ;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간수가 잠을 깨리다! / 마르가레테 ; (파우스트를 사형집행인이 온 것으로 착각하고 무릎을 꿇으며) 당신에게 나를 죽일 권리를 누가 주었나요? 불쌍히 여기시고 나를 살려주세요! 제 탄원을 헛되지 않게 해 주세요, 여태까지 당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잖아요!
괴테의 「파우스트」 비극 제1부 중 마르가레테가 옥중에서 ‘누가 당신에게 나의 생명을 빼앗을 권한을 주었느냐!’ 며 울부짖는 대목이다. 필자가 언젠가 한 번 사형존폐론(死刑存廢論)을 다루면서 언급한 기억이 나는 장면이기도하다.
"수사기관의 부실 수사를 비롯해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결국 잘못된 판결이 선고됐고, 이로 인해 20년 동안 옥고를 치른 피고인에게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사과드린다. 오늘의 판결이 피고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피고인의 명예 회복에 보탬이 되기를 기원한다." 지난 17일 수원지법 형사법정에서 열린 희대의 연쇄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0년 동안이나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며 덧붙인 말이다.
재판부는 이날 "피고인의 경찰 자백진술은 불법체포 및 감금상태에서 가혹행위로 얻어져 증거능력이 없다. 피고인의 자백내용 역시 다른 증거들과 모순되고 객관적 합리성이 없어 신빙성이 없다. 경찰 및 검찰 검증조서도 다른 증거들과 모순돼 믿기 어렵고,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거나 증명할 증거가 없는 등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이 없어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라고 했다. 경찰청도 이날 "무고한 청년에게 살인범이라는 낙인을 찍어 20년간 옥살이를 겪게 해 큰 상처를 드린 점을 깊이 반성하며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라고 반성했다 한다.
억울한 옥살이는 왕왕(往往) 있어 왔다. 그때마다 검찰과 사법당국은 깊이 반성하고 뉘우친다고 했다. 허공에 날리는 공허한 목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판단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3심제(三審制)를 두고 있다. 하지만 오심(誤審)이 빈번하다면 4심, 5심의 심급제도(審級制度)를 채택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단 한 사람의 무고한 시민을 억울하게 만들지 말라’는 법언(法諺)을 모르는 경찰과 법조인은 없을 것이다. 이를 잊은 우리 수사기관과 사법부인가. 재력과 권력을 지닌 열 명의 죄인은 놓아주면서 힘없는 선량한 시민을 억울하게 만든다면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의심스러운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서양의 법 격언이 있다면 동양에는 ‘죄가 의심스러울 때는 가벼이하라(罪疑惟輕)’라는 경구(警句)가 있다. 무죄추정주의의 원칙이 폐기된 우리 사회인가?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이 아닌 한, 누구보다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진력해야 하는 신분이 판사와 검사, 변호사들이다.
우리는 이들에 대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제103조), 검사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적법절차를 준수하며(검찰청법 제4조),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변호사법 제1조)라고 하여 각각의 임무와 사명을 헌법과 법률에 아로새기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법조삼륜(法曹三輪)이라 부른다. 이번 윤 씨의 무죄 선고와 관련, 국가 손해배상 문제가 제기되자 "100억 원, 1천억 원을 준다 한들 내 인생과 바꿀 수 있겠나! 당신이라면 20억 원을 주며 감옥에서 20년 살아라 하면 살 수 있겠나!"라는 윤 씨의 절규(絶叫)가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의 가슴을 저미어 온다.
기호일보
2020.12.21
댓글목록 0